답사 공부, 의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라

올바른 사찰답사를 위하여(5)... 답사 공부는 어떻게 할까?(2)

등록 2006.09.06 18:05수정 2006.09.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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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다양한 사물과 주제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그냥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하고 바라보고 또 의심을 하는 가운데 새로이 공부해야 할 내용이 생깁니다. 의심이 없으면 참된 공부도 없다고 단언을 하고 싶네요.


책이나 자료를 보고 공부한 내용과 실제 답사를 해보니 다른 것 같은데 감히 내 실력으로 책이나 자료가 틀린 것 같다고 말하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무작정 책이나 자료를 믿지도 말 것이며, 또 무조건 내 느낌이 옳다고 주장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의심의 눈길로 다시 쳐다보고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와 증거를 수집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객관성을 확보해야 할까요?

답사 공부에 있어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해석학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해석학이란 말이 나오니까 너무 어려운 것 같은데, 쉽게 말해서 답사의 대상은 특정한 시대에 만들어졌으니 그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15세기에 만들어진 문화재는 21세기를 사는 지금 나의 시각이 아니라 15세기의 시대상황을 최대한 고려하여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객관성을 확보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현상학이란 학문의 판단중지(Epoche)라는 개념을 인용할까 합니다. 우리가 지금의 자료와 증거로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판단을 중지하라는 말이죠. 문화재에 대한 자신의 지식이 얕고 부족한 부분, 그리고 뭔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이처럼 판단을 중지하고 좀 더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객관적인 입장을 확보하는 길입니다.

6)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

이 제목에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웃음을 짓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이쪽에서 한 이야기가 저쪽에서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니 세상의 일이란 게 다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이 말은 바로 자신의 무지(無知)를 알라는 뜻이죠. 모르면 당당하고 모른다고 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은 위선인 셈이죠.


독일의 종교학자 막스 뮐러는 "하나만 아는 것은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아는 하나가 전부인 양하는 것은 사실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죠. 자신이 아는 하나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도 충분히 수용하는 태도 즉,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7) 상상으로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자


여태까지 객관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면 마지막은 다시 주관적인 상상으로 나아갑니다. 답사의 대상인 문화재는 역사적인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단편적인 내용의 기록도 있고 객관성을 얻기 위해 신화나 전설을 제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문화재에 담긴 모든 내용을 종합하여 스스로 상상하고 과거를 재창조하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a 감은사지 전경

감은사지 전경 ⓒ 김성후

제가 좋아하는 답사의 상상은 감은사지와 대왕암에 관한 것입니다. 감은사는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건립된 절이라고 합니다. 문무왕은 동해로 침입하는 왜(倭)를 막기 위해 자신이 죽은 뒤 동해의 용왕이 되기로 합니다. 그래서 동해 감포 앞바다에 수중 무덤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대왕암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곳에 얽힌 지리적인 사실과 이야기 그리고 대왕암이 가진 역사를 바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까 합니다.

감은사와 대왕암이 있는 곳은 토함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대종천이 동해바다와 합류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종천의 모습이 아니라 당시 대종천의 모습을 그려봐야 합니다. 감은사 바로 앞에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 흔적이 있습니다.

a 감은사지 선착장 흔적

감은사지 선착장 흔적 ⓒ 김성후

이에 비추어볼 때 지금 논밭까지 포함하는 아주 넓은 곳에 대종천의 강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대종천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고 추정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고려시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몽고군이 황룡사의 대종을 바로 이 대종천을 따라 싣고 가다 빠뜨렸기 때문에 이 하천을 대종천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큰 종을 싣고 내려가려면 당연히 하천의 폭이나 깊이가 지금보다는 훨씬 넓고 깊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겁니다.

지리적인 요건을 볼 때 이곳이야말로 왜(倭, 지금의 일본)가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공격하는 가장 유리한 방법은 동해까지 배를 타고 와서 대종천을 거슬러 계속 토함산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점은 당시의 왜는 엄연한 국가로서 정규군대를 보내 신라를 공격한 것이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倭寇)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가 신라를 공격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앞선 문화를 전해주고 자신들의 천황과 친하게 지내며 동맹관계에 있던 백제의 멸망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왜를 막아내려면 동해와 대종천이 만나는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통치자라면 삼국을 통일한 막강한 국력을 가진 신라가 왜에 겁을 먹어 여기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킨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뭔가 다른 구실을 만들어 군대를 주둔시키면 좋을 것이라고 고민하던 중 아주 기발한 발상을 하게 됩니다.

바로 문무왕의 무덤을 동해 바다에 만드는 것이죠. 그것도 문무왕의 유언 형식을 빌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과연 대왕암에 문무왕의 시신이 안치되었을까 아닐까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실제 시신이 있든 없든 아주 거창하고 화려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군대를 주둔시켰을 겁니다. 왜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의 군대가 아니라 왕의 무덤을 지키기 위한 목적의 군대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문왕은 돌아가신 선왕 즉, 대왕암을 무덤으로 삼은 문무왕의 은혜야말로 너무나 크고 감사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근에 부왕의 명복을 빌어주는 감은사라는 절을 짓고 그곳에도 군대를 주둔하게 했을 겁니다. 앞서 말한 감은사 아래 선착장은 바로 군사들이 드나들던 곳이 아니었을까요?

이만큼만 상상하고 마무리하자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당시 이곳과 관련된 이견대(利見臺)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이야기를 더하여 상상을 추가합니다. 이견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그 위치를 볼 때 동해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습니다. 당연히 왜가 쳐들어오나 감시를 하는 곳이 되겠죠.

그리고 동해바다에서 건져 올린 대나무로 만든 피리인 만파식적이 울면 외적이 물러간다는 하나의 이야기 뒤에 감추어진 부분이 없나 싶어 이렇게 당시 상황을 재해석해 봤습니다.

이견대에서 동해바다를 살피던 군사들이 왜의 침입을 알리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자 감은사와 인근에 주둔하던 모든 군대가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경주에도 왜의 침입이 있으니 경계를 철저히 하고 전투 준비를 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저는 그 신호의 마지막이 경주에 있던 만파식적이 울리는 것이라 추측합니다.

감포 앞바다에서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왜는 패배하여 물러가고 없습니다. 왜가 물러간 사실이 다시 경주에 전해질 때는 하루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 될 것입니다. 경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감포 앞바다에서 펼쳐진 치열한 전투는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알 수 있던 것은 외적이 침입하여 만파식적이 울었다는 것과 외적이 물러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파식적이 울면 외적이 저절로 물러간다는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제 개인적인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자료와 현장의 흔적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당시에 사건이 이렇게 펼쳐졌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답사 공부의 마지막은 상상이며 그 상상의 객관화를 위해 또다시 공부를 하는 것이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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