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반대에 힘겨운 늙은 농부들의 한숨

나이 일흔의 농부들이 경찰과 군수와 업체와 싸워야 맞습니까?

등록 2006.09.08 10:19수정 2006.09.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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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뒤로 보이는 산에 골프장이 들어서려고 합니다.

뒤로 보이는 산에 골프장이 들어서려고 합니다. ⓒ 배만호

농민단체에서 일하다 보면 좋은 점도 있고, 마음 아픈 일도 많습니다. 내 부모님이 그랬듯이 평생 농사만을 지으며 살아온 농민들이 농사 아닌 다른 것들로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 농민단체에서 일하는 저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 마을 뒷산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문제로 농사를 뒷전에 둔 채 싸워야 하는 늙으신 농부들을 지난 3일 만나러 갔습니다. 물어 물어서 찾아 간 그 산은 골프장에 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제가 봐도 참 좋아 보였습니다.

해발 600m에 완만한 경사, 그리고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 그곳에 골프장이 생긴다면 돈 많은 사람들이 엄청 몰려 올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릴 수는 없겠지요. 이내 논과 밭이 시커먼 아스팔트로 덮일 것이고, 트랙터나 경운기 등의 농기계들은 다닐 길이 없어질 것입니다.

가만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늙은 농부들은 뙤약볕 아래 일하고 고급 승용차를 탄 도시민들이 몰려오는 모습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골프장 바로 아래 동네인 소로마을에 사시는 한 농부가 제게 이렇게 말을 하시더군요.

“젊은이, 한 번 생각혀 봐. 누구는 땀 흘려 일 허는디, 누구는 비싼 차 타고 댕기며 놀고 있어. 이런 걸 보고 뉘가 촌으로 올라고 하겄어?”
“골프장이 생기몬 젤로 걱정되는기 위화감이여. 우덜이야 괜찮은디, 젊은것들은 그런걸 우찌 참아?”

a 골프장 반대에 목숨까지 걸겠다고 하시는 농민입니다.

골프장 반대에 목숨까지 걸겠다고 하시는 농민입니다. ⓒ 배만호

동네에서 제일 젊은 분이 쉰셋입니다. 골프장 반대를 외치시는 분들의 대략적인 나이는 일흔 가량입니다. 나이 일흔에 고향을 지키기 위해 젊은 경찰과 군수와 업체 관계자들과 싸워야 할까요?

공자는 나이 일흔을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았으되 법도에 어긋나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농촌은 공자의 말처럼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았으되 법이 막고 있습니다.


함양군은 서상면 대남리 산 134번지 일대를 2005년부터 2009년까지의 장기적인 계획에 의하여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하였습니다. 개발이라는 논리와 세수 증대라는 이유로 수십 년을 살아온 주민들이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개발도 좋고, 세수 증대도 좋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원래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에서 농민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조용히 농사 지으며 세상을 잊은 채 살고 싶다며 농촌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세상의 시끄러움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계속 시끄럽게 하겠다’고 말했다지요.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입니다. 시끄럽게 흘러가는 강물을 본 적이 있으세요? 조용히 흘러가면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지요.


“아이고, 살기 힘들다!”

한 농민이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내뱉는 말입니다. 논 몇 마지기에 밭 몇 평, 그것만으로 행복했던 분들입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방에서, 여름이면 커다란 나무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낼 분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뒷산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내가 혼자만 잘 살 것다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내 아들, 내 손자에게 좋은 땅을 물려주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지. 내가 잘 살 것다고 할 것이몬 벌써 다 주고 나왔을낀디.”

a 골프장 건설 예정지. 고속도로와 국도가 지나가면서 개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왔습니다.

골프장 건설 예정지. 고속도로와 국도가 지나가면서 개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왔습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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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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