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국경 넘는 멕시코 사람들
나프타 후 그 곳엔 국민경제가 없다"

이강택 KBS PD, 최형익 교수 등 한미FTA 직설적으로 비판

등록 2006.09.12 10:16수정 2006.09.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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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택 KBS PD가 나프타이후의 멕시코의 생활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강택 KBS PD가 나프타이후의 멕시코의 생활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한미FTA저지범국본 정책단


"촬영 테잎을 편집하면서, '돈데보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어요."

이강택 KBS PD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그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돈데보이(Donde Voy)'는 우리말로 풀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는 뜻이예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3200㎞나 됩니다. 여기에는 거대한 장벽이 쳐져있고, 사막이 있어요. 이 노래는 이런 곳을 넘어서 미국으로 탈출하려는 멕시코인들의 애절한 이야깁니다. '나프타 (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국경을 넘다 죽은 멕시코인들이 매년 수백명이나 돼요."

이 PD는 지난 5월 멕시코 현지를 다녀왔다. 나프타에 관한 취재 때문이다. 그의 취재물은 6월 KBS 스페셜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방송이 나간후 많은 시청자들은 멕시코의 생생한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3층 스튜디오. 이 PD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단 주최로 열린 '한미FTA시민학교' 첫째날 두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이날 이 PD는 94년 나프타 체결 이후 멕시코 국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멕시코에 처음 갔을 때, 수도인 멕시코 시티의 도로마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노점상이 펼쳐져 있었어요. 끝이 보이질 않았어요. 한 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의문이 생겼죠. 이들은 왜, 어디서 왔을까 하는 것이죠."

"쉬는 시간 없이 10시간 이상 노동... 그 자리도 부족해"


이같은 의문을 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PD는 "나프타 체결 이후 미국 거대자본은 멕시코의 농촌과 기업을 완전히 장악했다"면서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은 도시의 노점상으로 전락하거나, 미국 국경 근처의 '마낄라도라'라는 공단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마낄라도라의 생활도 녹녹치 않다. 많은 멕시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인건비에, 쉬는 시간도 없는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마낄라도라 지역의 일자리가 늘었다고 하지만, 이 곳에서 사용되는 멕시코의 부품은 3%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이어졌다.

마낄라도라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미국으로의 탈출을 감행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PD는 "제가 취재했던 멕시코는 더이상 국민경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아니, 국민경제라는 말을 쓰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한미FTA 추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미FTA는 IMF(국제통화기금) 10개가 오는 것과 같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면서 "체결이 되면 한국사회의 많은 국민과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보수언론의 색깔공세 덕분에 책이 잘 팔린다"

최형익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 헌법부터 바꿔야할 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최형익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 헌법부터 바꿔야할 지 모른다고 주장했다.한미FTA저지범국본 정책단
이날 강연에는 최형익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와 남희섭 변리사도 참석했다.

첫번째 강연에 나선 최 교수는 "지난달 보수언론에서는 국민운동본부에서 낸 책에 일부 학자의 특정 단어만을 골라 색깔공세를 펼쳤다"면서 "덕분에 해당 책은 3쇄를 찍으면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지난 7월 31일 <조선일보>는 'FTA저지운동본부 <반미보고서> 파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범국본이 한미 FTA 저지를 남북한 민중을 위한 투쟁이라고 주장하는 등 반미·반제국주의적 표현을 담은 '한미FTA국민보고서'를 발간,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당시 최 교수의 논문을 꼽으면서, "보고서에서 '한국' '우리나라'라는 표현 대신 (북한에서 쓰는)'공화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며 "범국본이 반미운동의 입장에서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논조는 <한국경제> <동아일보> 등 다른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에도 그대로 배어 있었다.

이를 두고, 최 교수는 "공화국이라는 표현에 보수언론이 말도 안되는 사상공세를 펼쳤다"면서 "공화국은 주권의 문제이며, 제국화된 미국에 대한 우리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진보진영에서 이번 FTA 문제를 한국사회의 내재적인 방식을 통해 접근하고 나오니까, 보수 쪽의 위기의식이 언론을 통해 표출된 것이 아닌가"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 쪽에서 이번에 재벌의 독점적 지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면서 "그동안 (한미FTA) 체결을 지지했던 보수쪽과 기업들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는 헌법부터 바꿔야할 지 모른다"면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의 권리와 국가가 노동을 적극적으로 보장할 권리 등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지적재산권, 미국 요구대로 통과될 것... 사실상 버리는 카드"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남희섭 변리사는 한미FTA의 지적재산권 협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내비쳤다.

한 마디로 미국 쪽 요구대로 협상이 진행될 것이며, 한국 쪽에서도 사실상 버리는 카드로 지적재산권을 쓸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특히 미국은 각종 로얄티 등 자신들의 저작권 관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2002년 기준으로 미국 GDP(국내총생산)의 6%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로만 따져도 6266억달러. 2002년 한국 전체 GDP(5469억달러)보다 800억달러나 많다.

남희섭 변리사가 한미FTA의 지적재사권 협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남희섭 변리사가 한미FTA의 지적재사권 협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한미FTA저지범국본 정책단
남 변리사는 이어 세계은행의 통계를 들어, 지적재산권을 국제기준, 사실상 미국 기준으로 강화했을때 한국이 가장 손해보는 국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002년 세계은행에서 한국의 특허권 대여 순수익이 마이너스 153억달러로 나와, 적자 폭이 가장 컸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이런 통계를 절대로 발표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왜 그럴까.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면 이득을 보는 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특허청이다. 특허청은 정부 기구로 편성돼 있지만, 100% 자체 수입으로 운영되는 특수한 기관이다. 남 변리사는 "지재권이 강화되면 수수료 수입이 늘어나 특허청이 이익을 보기 때문에, 이를 홍보하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한미FTA의 지적재산권 협상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이었다. 남 변리사는 미국의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50년→70년), 기술적 보호조치 강화,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등 각종 요구 사항에 대해 대부분 수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미국의 공세에 한국 정부의 준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 변리사는 "미국의 통상법에는 FTA 목적이 '미국과 같은 지재권 규범을 상대국에 강요하는 것'이라고 씌여져 있다"면서 "사실상 협상의 여지가 별로 없고, 우리 정부도 (지재권을) 사실상 버리는 카드로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미FTA저지범국본과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한미FTA시민학교'는 오는 16일 서울 종로구 3층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2주째 강연을 가질 예정이다.

이날 강연에는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대표) 대표와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양기환(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 등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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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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