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여성 홀로서기에 엉성한 지원 '희망이 없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2년 뒤돌아보니...

등록 2006.09.12 18:20수정 2006.09.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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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권지희 기자] '성매매방지법'(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올해로 2주년을 맞았지만, 피해 여성들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4년 9월부터 실시된 직업훈련 지원제도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다른 직업으로 유도해 성 산업으로의 재유입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피해 여성에게 6개월에 걸쳐 총 210만 원의 훈련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원하는 사람에 한해 증액 없이 지급 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욕적으로 추진됐지만 결과는 아직 역부족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취업에 성공한 성매매 피해 여성은 창업(2명)과 대학 진학(26명)을 포함해 총 238명이다. (같은 기간 취업훈련 1167건) 숫자도 적지만 대부분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환경에 노출된 음식점·미용실 등 서비스업(86명)과 공장 등 생산직(43명)에 치중돼 있어 현장에서는 "생색내기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실시된 기술교육 및 취업훈련 내용을 살펴보면, 미용·컴퓨터·조리·비즈 공예 등 단기간 훈련으로도 비교적 취직이 용이한 단순직에 집중되어 있다.

지난 2003년부터 부산 완월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현장구조 활동을 벌여온 성매매피해 상담소 '살림'의 김혜정 사무국장은 "1∼2년도 아니고 10년, 20년 동안 성매매에 종사해온 피해 여성들이 1년 동안 직업훈련을 받아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운 좋게 취직을 하더라도 임금이 워낙 적어 겨우 생계만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 김 사무국장은 "다시 업소로 돌아가는 이유가 모두 경제적인 문제임을 감안할 때 대만처럼 7년간 지원해주는 등의 장기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맞춤형 지원'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성매매피해 지원시설 '휴먼케어센터'의 김양임 원장은 "비용과 시간이 1년 이상 소요되는 직종도 있는 만큼 소신에 따라 직종을 선택하고 배울 수 있도록 지원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구체적으로 공동작업장을 운영하는 시설도 늘고 있다. 살림의 경우 올해 초부터 학력이 낮거나 나이가 많아 취직이 어려운 여성들을 대상으로 공동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박현숙 여성가족부 권익기획팀장은 "법·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성매매 방지대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낮은 수준이어서 추가 예산을 편성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탈성매매 여성들의 카메라로 자아 찾기
'2006 여성인권 영상제-카메라를 타고 날자'

"이번 주말, 간디학교에 가서 창업의 꿈을 이룬 학생들을 촬영할 예정이에요." (수혜·가명·33)
"연예인을 꿈꾸는 10대들의 그리고 싶어요." (앨프·가명·19)

탈성매매 여성 자활기관인 여성성공센터 'W-ing'(옛 은성원) 영상워크숍 수업이 열리는 교실에선 일주일에 두 번씩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그 주인공은 '2006 여성인권 영상제-카메라를 타고 날자'에 참여하는 5명의 여성.

오는 21일 오후 7시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아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영상제에선 취재 대상에 머물렀던 탈성매매 여성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편집한 영상물이 상영된다. 바람처럼 날고 싶은 소망을 담은 '윈디'라는 팀명으로 모인 이들은 공동작품인 'CF 패러디', '인터뷰', 'W-ing 뉴스'의 편집을 마치고 요즘엔 개인 작품을 준비하기에 바쁘다.

올해로 2회를 맞는 영상제를 총괄하고 있는 장영숙 사무국장은 "비슷비슷한 사회복지기관의 프로그램들 속에서 탈성매매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고 싶었고 새로운 직업의 발굴로도 이어지기를 바랐다"며 기획 의도를 전했다.

19∼33세의 여성 5명이 준비 중인 개인 작품에는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다. 시골 간이역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살아온 힘들었던 세월을 그리고 싶다는 판다(28·가명)는 'W-ing'의 최고참. 세무사 사무실 인턴사원으로 일하며 바쁜 시간을 쪼개 '틴틴 그들이 온다'라는 작품을 준비 중인 '수혜'는 이번 영상제를 위해 일주일간의 휴가를 낼만큼 열성적이다.

앙뜨(20·가명)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는 주제로 자신의 20년 인생을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다. "카지노의 도박꾼이나 신창원 같은 살인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생각도 찍어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팀의 막내 앨프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며 벌써 다음 작품 주제까지 정했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이나 사물들에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엔 길거리를 지나가는 강아지 한 마리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지난해 영상제에 참여한 이후 영상물을 촬영·편집하는 새로운 직업과 영화감독의 꿈을 갖게 된 브라운 티(22·가명)의 사례는 영상이 가진 힘을 짐작케 한다.

영상제작 지도를 맡은 '여성영상집단 움'의 조석순애씨는 "이들이 추구하는 주제는 다양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면서 "과거와 현재의 고민들, 그리고 풀지 못한 인생의 숙제들을 되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도구가 바로 카메라"라고 전했다.

"세계모범... 이젠 피해자 안전장치 마련을"
성매매방지법 국제회의 참석차 방한 전문가 3인 인터뷰

▲ 왼쪽부터 시그마 후다, 돌첸 라이드홀트, 멜리사 팰리.
ⓒ여성가족부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고, 성 구매자를 처벌토록 한 한국의 성매매방지법은 전 세계적으로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정부가 할 일은 국민이 성매매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시그마 후다(60·방글라데시) 유엔 인신매매 특별보고관이 지난 6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2주년을 기념해 여성가족부와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가 공동 개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후다 특별보고관은 이날 "한국은 2004년 법 제정을 통해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인터넷 동영상이나 위성방송 등을 통한 콜 성매매 등 새로운 유형의 성산업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날 함께 방한한 돌첸 라이드홀트(53·미국) 여성인신매매반대운동연합(CATW) 공동집행위원장과 멜리사 팰리(63·미국) 성매매조사 및 교육연구소 소장도 "음성적 성매매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오히려 성매매 시장만 커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풍선효과' 논란을 일축했다.

다음은 이들 세 명과 공동으로 나눈 일문일답.

-국제적으로 한국의 성매매 대책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돌첸 라이드홀트: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해 성 구매자를 처벌토록 한 한국의 성매매방지법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좋은 역할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관건은 앞으로 이 법을 얼마나 강력하게 집행할 수 있느냐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재판부·검찰·경찰 등 사법기관 관계자들의 변화다. 특히 성 알선업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직접 성을 구매하는 등 성산업의 한 축을 형성해온 경찰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 최근 들어 성매매를 단속하고 축소할수록 음성적 성매매가 더 확대되는 '풍선효과'를 이유로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시그마 후: "합법화를 하더라도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다. 몇 개 국가를 대상으로 합법화 이후 개선된 점이 있는지에 대해 조사한 결과, 네덜란드는 의도했던 만큼의 효과가 없다고 답했고, 터키의 경우 정부가 성매매 여성들을 등록받아 관리했음에도 그들에 대한 처우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돌첸 라이드홀트: "성매매가 불법이었다가 합법화된 나라를 살펴보면, 불법 성매매 행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법과 불법 두 층으로 양분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합법적인 업소도 있지만, 지하에서 이뤄지는 성매매도 덩달아 번성하는 것이다. 단속보다 허용했을 때 풍선효과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 자신을 소위 '성노동자'로 부르며 성산업을 옹호하고 합법화를 주장하는 여성들도 있지 않나.
돌첸 라이드홀트: "상습적으로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자신을 때린 남성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맞을 짓을 했다거나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서 말이다. 성매매도 마찬가지다. 성산업 특성상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폐쇄적 구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서 한다'고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 일부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들은 여성의 지위가 높고 경제적으로도 성장한 선진국이라며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멜리사 팰리: "성 평등과 경제성장은 별도로 진행되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여성이 강간을 당하지 않고, 성 착취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지난 10년간 9개국을 대상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정신적 피해 정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이들 모두 전쟁 참가자, 가정폭력, 강간, 국가고문 피해자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매매로 인한 피해는 합법·불법, 경제 수준과 관계없이 세계 공통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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