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실에서 강의하는 김점구 대표김준희
- 독도수호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00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2000년 3월 1일에 만들어졌습니다. 상근 3명, 비상근 2명.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저 하고 지금 서울대 대학원의 해양학 전공하는 친구하고. 또 다른 한 친구는 독도에 묻혀있습니다. 지방에서 행사를 마치고 올라오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그 이전에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회사 다니고 있다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문화재 관련 일…, 여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었죠. 그러니까 일반 여행사가 아니고 역사탐방하는 전문여행사에요. 그걸 준비하는 중에 만나게 된거죠. 1999년도에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죠. 그때 12월에 밀레니엄 해맞이라고 해서 행사가 굉장했잖아요. 근데 그때 한국의 해뜨는 시각에서 독도가 빠진 겁니다. 그 밀레니엄 해맞이 준비위원회 홈페이지에. 그래서 네티즌들이 항의를 했죠. 그게 계기가 되서 해맞이를 독도에서 하자라는 제안이 나왔죠. 그래서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그리고 몇 개 단체들이 모인 겁니다.
그때 1999년 12월 29일에 제가 울릉도에 처음 왔어요. 제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거든요. 하지만 해맞이를 독도에서 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2000년 초에 다시 행사를 합니다. 독도해상에서. 그때 사람들을 만나고 시작하게 된 겁니다. 홈페이지도 없고 조직도 없고 회원도 없는 상태에서요. 완전히 맨 땅에 진짜 헤딩한거죠. 그리고 한해 두해 지나면서 올해까지 오게 된 거에요."
- 현재 회원수는 얼마나 됩니까?
"지금 2500명 등록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홈페이지가 제대로 운영이 안 되어서요. 올해 안에 다시 홈페이지를 개설하려고 합니다."
- 정기적인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선 독도탐방 행사가 있습니다. 매년 해왔던 거구요. 그리고 지금 '안용복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자는 것이 안용복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안용복은 조선에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독도문제를 가지고 일본에 직접 갔죠. 그게 독도운동의 핵심입니다. 우리 국내에서 우리끼리 '독도는 우리 땅' 백날 외치는 것 보다는 일본 사람 한사람이라도 변화시키는 게 독도운동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겁니다."
- 독도의용수비대의 처우는 어떻습니까?
"제가 2000년 3월에 시작해서 8월에 처음 의용수비대 어르신들을 만났습니다. 전 당연히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고 국가차원의 위로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국립묘지에도 못가고 연금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에서, 독도를 지켜낸 장본인들을 이렇게 대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도운동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부끄러운 거죠. 그래서 이 분들을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첫째라고 생각했고 2000년 8월부터 계속 이 분들을 만나왔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저희도 거부당했습니다.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당했겠어요? 뭐 해주겠다 뭐 해주겠다 그러다가 분위기 수그러들면 나 몰라라 그랬던 겁니다."
"국제재판소로 가는 것 자체가 지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