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망을 펼쳐놓은 것처럼 생긴 악양.조태용
화개를 지나면 악양이 나오고, 악양의 회남재를 넘으면 청학동이 나온다. 악양에 접어든 우리는 곧바로 회남재로 향했다. 회남재는 악양 초입부터 12km 정도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다.
악양은 고기 잡는 투망을 넓게 펼친 것 같은 모습이다. 투망이 펼쳐진 곳에 들이 넓게 펼쳐 있고, 투망을 쥔 손에 해당된는 곳에 회남재가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투망의 끝자락, 즉 봉추돌이 달린 곳에 해당된다.
우리는 8월 4일부터 며칠째 계속 걸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우리를 본 동네 할머니들은 쉬어가라며 말을 건넸다. 하지만 우리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수행자라도 되는 것처럼, 쉬어가라는 요청을 번번이 묵살했다.
"갈 길이 멀어서요." 사실 갈 길이 멀긴 했지만, 쉬지도 못할 만큼 바쁜 여정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아마 한여름의 열기를 뚫고 가는 도보여행자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순전히 객기였다.
그 분들의 선의를 무시하고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낮의 태양이 정중앙을 가리켰다. 더위는 마치 폭염을 담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악양면에는 식료품 가게 몇 군데와 버스 정류장,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이 있다. 면소재지에 없어서는 안 되는 3가지(정류장, 우체국, 농협)가 골고루 있으니 면소재지로서 위상은 지키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막걸리를 판매하는 주조장도 있다.
이 면소재지의 특이한 점은 부동산이 두 곳이라는 것. 조그마한 면에 부동산이 왜 두 곳이나 있을까?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이라는 경제상식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땅을 찾는 외지인이 많다는 이야기다.
투망의 한쪽 끝에서 시작한 길은 중간쯤 돌아서 다른 한 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어져 있다. 가운데에는 회남재로 향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을 사이에 두고 날줄로 연결된 마을길이 이어지고, 그 길옆엔 다랭이논이 투망의 그물코마냥 다닥다닥 걸려 있었다. 회남재로 향하는 길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삼촌, 회남재는 여기서 얼마나 걸려?" "아마 3~4시간 정도 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 빨리 걷자." 악양 초입부터 눈에 들어온 회남재를 향해 한 시간 동안 걸었지만 회남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얼마 전, 회남재 가는 길에 포장도로를 만들려고 했으나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반대해 중단됐다. 하지만 악양에서 회남재까지 가는 구간의 90% 이상은 이미 아스팔트로 덮인 상태였다. 아스팔트 밑에서 답답해하는 땅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스팔트의 퀴퀴한 기름내와 열기 때문에 땅은 여름에 더 힘들 것이다. 땅속 생물들의 외침은 그렇다쳐도, 등줄기에서 물처럼 흘러내리는 땀줄기는 몸속 수분을 다 배출해야만 멈출 것 같았다. 조카의 몸도 어느새 흠뻑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