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농업인'이 될 수 없다?

대부분 토지소유권 없어 법적 인정 못 받아... 농림부 '가족경영협정제도' 시범사업 추진

등록 2006.09.18 12:13수정 2006.09.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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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여성 농민은 아무리 오랜 기간 농사를 지어도 농업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며, 교통사고를 당해도 '가정주부'로 분류돼 가장 낮은 보험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이 토지 소유권을 갖고 있다면, 여성은 법적으로 '농업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림부가 내년부터 가족 구성원 모두를 '농업경영인'으로 인정해주는 '가족경영제도'를 시범 운용키로 했지만, 정식 제도로 도입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부산에서 15년간 홀로 3000평 규모로 대파 등 농사를 지어온 박정개(59)씨는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입원치료 중 농산물 출하 지시를 위해 신청한 외출을 보험사가 거절해 1년 동안 지어온 농사를 망쳤고, 이에 피해액 8000만 원을 배상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보험사 측이 박씨가 '농업인'이 아닌 '가정주부'이기 때문에 11일간 입원치료 비용인 34만 원만 보상해주겠다고 했기 때문. 보험사 측은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박씨는 법적으로 농업인이 아니므로 우리가 농산물 피해액을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선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총무국장은 "여성 농민이 교통사고를 당할 경우 '농민'이 아닌 '가정주부'로 보험금을 받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농업인의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가 토지 소유 여부인데, 대부분 남성 명의로 되어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성 농민에 대한 차별은 '보험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농촌 지역의 교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농 종사자 중 교사 경력이 있는 남녀 1인씩을 교사로 임용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남성은 '농지원부'가 있어서 영농 기간만큼 호봉을 부여받은 반면, 여성의 영농 경력은 인정받지 못했다.

김은미 국가인권위원회 차별개선팀장은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 증명해주는 '농지원부'는 대개 세대주 명의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농사지은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당시 차별 개선을 권고했고, 이번에 접수된 사례 역시 지난해와 유사한 사례로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농림부 여성정책과는 내년부터 전국 100가구를 대상으로 '가족경영협정제도'를 시범 운용하기로 했다. 몇 평 규모에 어떤 작물을 심고, 각자 어떤 역할을 담당하며, 소득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등에 대한 경영계획을 농업에 종사하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결정함으로써 모두 '농업경영인'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이성주 농림부 여성정책과 사무관은 "아직 외국에도 선례가 없는 제도여서 일단 시범사업으로 운영한 뒤 실효성이 있다는 검증이 이뤄지면 전체 농가구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여성 농민은 자동적으로 농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돼 차별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씨와 함께 보험사와 협의를 추진 중인 윤혁 소비자보험협의회 사무국장은 "지난 13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박씨의 농산물 피해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부산에 현장조사를 내려간 상황"이라고 전하고, "관련 농촌·농민단체에 질의서를 보내 공동 대응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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