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주말이면 그곳에 가는 이유

[서평] 이순우의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

등록 2006.09.18 21:17수정 2006.09.18 21:17
0
원고료로 응원
a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 나래실> 겉표지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 나래실> 겉표지 ⓒ 도솔오두막

예전에 어느 신문에서 본 설문 조사에서였다. 도시에 사는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시골 생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결과에 의하면 열명 중 예닐곱명 꼴로 시골에서의 생활을 한번쯤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들에게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욕구가 태어날 때부터 잠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욕구를 가슴속에 묻고 사느냐, 자기의 삶 속에서 실현하면서 사느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의 저자 이순우씨는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전형적인 도시인의 삶을 꿈꾸고 그렇게 살았던 이씨는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호주 캔버라의 한 농가에서 그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단다. 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씨는 강원도 영월의 나래실이라는 산촌마을에 농원을 마련했다. 국제개발연구소 이사이기도 한 저자가 주말이면 강원도의 나래실을 찾아 몸소 가꾸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이 생활이 자그마치 7년째다.

이 책은 그가 나래실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를 진솔하게 쓴 책이다. 7년이란 시간동안 나래실농원에 그가 쏟은 애정과 관심이 이 책 한권에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나래실 농원의 아름다운 사계의 풍경과 나래실 농원에 서식하고 있는 온갖 종류의 꽃과 화초, 나무, 풀 등의 정겨운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이건만 이 곳 나래실 농원에서는 더 이상 흔하디 흔한 아무 풀이나 나무가 아니다. 저자의 끊임없는 애정과 보살핌의 결과이다.

7년간 서울과 나래실을 오가며 쓴 기록

저자에게 꽃 한송이, 풀 한포기를 가꾸어나가는 과정은 곧 자연만이 지닌 현현한 아름다움을 깨닫는 과정이다. 저자는 잡초의 왕성한 번식력과 잡초 제거의 번거로움을 이야기하면서도 저자는 잡초가 지닌 미덕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 풀의 이로움이 아직 발견되지 않을 뿐이다'고 말한 에머슨의 말을 인용하며 사람들의 잣대에 의해 보잘 것 없는 풀로 취급되는 '잡초'대신 '들풀'이나 '야생초'로 부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열정과 인내심을 가지고 해를 향하는 해바라기의 속성을 이야기하면서 제 주관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해바라기'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해바라기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세심한 관찰없이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연의 위대함과 오묘한 섭리에 대해서 경외를 표하고 있다. 가지를 쳐주고 비료를 주고 열매를 따고 물을 주는 일련의 행동이 모두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두나무의 일화는 이러한 좋은 예다.

많은 열매를 맺은 자두를 일찌감치 솎아내지 못함으로 후에 장맛비에 가지가 잘리는 경험을 통해 저자는 '극히 자의자적인 사람이 관여함으로 인해 이들 스스로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던 당당한 풍요로움'을 꺾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는 무성한 풍요로움이야말로 '그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삶, 자람과 성장의 한 모습'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꾸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 어떤 방향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자연의 모든 것을 따뜻한 눈과 아름다운 마음으로 대하며 느껴 나갈 뿐이다.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기는 싫다. 언제 다시 미워지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나만이 선택받은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고 그들을 느껴 나갈 것이다."(94쪽)

위의 단락은 자연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급하지도, 지나치지도, 과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은이의 마음이야말로 바로 자연과 같은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아름다운 한편의 식물도감을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저자의 미려한 문장력도 한 몫 한다. 사물의 속살을 꿰뚫어보는 듯한 적확한 표현과 '나래실' 농원만큼이나 어여쁜 글귀와 표현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한 층 풍요롭게 한다. 또한 지은이가 직접 그린 소박한 그림들과 직접 찍은 갖가지 꽃들의 사진은 이 책을 한층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좋은 볼거리들이다.

덧붙이는 글 |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 이순우 지음/ 도서출판 도솔오두막/ 9,900원

덧붙이는 글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 이순우 지음/ 도서출판 도솔오두막/ 9,900원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 - 나래실

이순우 지음,
도솔,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