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엔 '강남맨', 주말엔 '시골 촌부'

[서평] 이순우씨의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

등록 2006.09.06 15:02수정 2006.09.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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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침범을 막기 위해 목책이나 철책을 세울 수는 있겠으나 이 농원을 그렇게 폐쇄적,배타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중략) 결국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들과의 공생을 받아들이고 내가 어느 만큼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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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오두막

주5일제가 어느덧 생활의 한부분이 되어버린 시점. TV 리모컨을 돌리는 일도 지겨워 질 때쯤, 누군들 도시탈출의 꿈을 꾸어보지 않을까. 실개천이 돌돌거리고 버드나무가 머리를 늘어뜨린 곳에서의 나른한 낮잠은 상상만으로도 달콤하다.


꼭 주5일제가 아니더라도 때로는 귀농과 자신만의 텃밭을 일구고 싶은 것이 도시인들의 보편적 감성일 터. 하지만 많은 현실적 여건은 발목을 놓아주지 않고 박약한 의지는 막연한 두려움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라는 책에는 그런 타성을 깨고 얻어낸 작은 기쁨이 실려있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주 5일제를 소중히 쓰고 싶은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저자 이순우(54. 한국개발전략연구소)씨는 두 개의 삶을 살고 있다.

주중엔 이른바 '강남맨'으로서 첨단의 환경을 접하는 그. 하지만 주말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촌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한줄한줄 땀 어린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주변은 녹색의 대지로 다가온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따라 온 곳, 강원도 영월

a 책에는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경도 함께 한다.

책에는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경도 함께 한다. ⓒ 도솔오두막

어린 시절을 강원도 횡성에서 자랐다는 그가 현재 자리 잡은 곳은 영월. 그 인연을 묻자 "이제는 어지간한 곳은 도시화가 진행되어 알맞은 곳을 찾는 것이 수월치 않았다"며 "스치듯 만난 곳이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의 순수를 간직한 곳"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그를 전원으로 이끈 힘은 무엇일까. 사춘기 시절, 두메산골이 고향인 것이 한때는 부끄럽기도 했다는 그. 하지만 늘 쫓기듯 숨이 턱에 차오르게 살아온 도시 생활이 반복되면서 이순우씨는 어느 사이엔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강하게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20여 년 전 호주에서 연수를 받을 때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가능하겠구나'란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현재 이순우씨가 주말을 보내고 있는 곳의 지명은 '나래실'. 이름이 주는 만큼의 포근함과 살가움이 묻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책은 그 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자연현상을 가감 없이 들려주고 있다.

각기 고유한 이름을 가진 자연 속으로…

a 저자가 사는 마을의 그림이 실려있다.

저자가 사는 마을의 그림이 실려있다. ⓒ 도솔오두막

그는 책에서 말한다.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자연 그자체인 것을 깨달았노라고. 그리고 어쩌면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단편적이고 치우치고. 때로는 인간 중심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집 앞 도랑가에 많은 가지를 드러낸 버드나무를 보며 저자는 처음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어느 마을길, 어떤 휴양림에서의 하루를 떠 올린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며 버드나무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게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식물도감을 펴보고서야 놀라운 흥분에 무릎을 친다. 긴잎자매버들, 매자잎버들, 쌍실버들, 여우버들, 배버들, 좀호랑버들…. 무렵 오십여 종의 버들이 이 땅에 자라고 있다는 것을. 그 이유 없는 대견스러움 속, 그는 단지 인간의 목가적 시선아래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던 것들 모두가 각각의 소중한 이름과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이틀은 자연인이 된 저자의 살아 숨 쉬는 고백은 책 장 사이사이에 겸손한 고백이 되어 나타난다. 잡초라 여겼던 것들을 야생초라 불러주며, 도랑에 통나무를 놓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땅이 주는 소중한 생명의 의미를 되새겨가며….

굵어지고 투박해진 손으로 써 내려간 담담한 이야기는 그래서 저자의 말대로 "자신의 것이 아닌 자연에게 돌아가고 바쳐져야 할 서사의 기록"이다. 깊어가는 가을 날, 도시의 유혹에서 잠시라도 자유롭고 싶어질 때면 그가 남긴 기록을 따라 책 속의 자연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주말엔 산촌으로 간다 - 나래실

이순우 지음,
도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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