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아베 장관에게 거는 희망

[이병선의 재팬 워치] 대북 금융제재 착수한 일본의 다음 행보는?

등록 2006.09.19 16:49수정 2006.09.19 18:15
0
원고료로 응원
일본 정부가 19일 각료회의 의결을 거쳐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에 들어갔다. 지난 7월15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해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695호에 따른 조치이다.

이로써 일본은 안보리 결의 1695호를 구체적 행동에 옮긴 최초의 나라가 됐다.

물론 이는 유엔 회원국으로서, 또 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 당연히 취할 수 있는 조치이다. 그러나 미국도 아직 안보리 결의에 따른 조치를 '검토 중'인 상황이고 보면 일본의 행보는 일단 돌출돼 보인다.

남북 금융거래도 못하는데, '추가' 금융제재하라고?

a 지난 7월 15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 미사일 관련 대북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사진은 지난 6월 30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

지난 7월 15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 미사일 관련 대북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사진은 지난 6월 30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 ⓒ 유엔 포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관련국들의 대응과 관련 한·일의 일부 언론은 몇 가지 '오해'를 조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일자 사설에서 "금융제재는 북한의 위조지폐와 마약밀매 등 국제 경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조차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데 한국만 소극적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도 같은 맥락에서 "미·일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라"며 한국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 전개에는 중대한 결함이 감춰져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달 23일 내외신기자 브리핑에서 안보리 결의 이행에 관한 질문을 받고 "한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를 위한 5개 국제기구 모두에 가입해 충실히 이행하고 있고, 북한과의 금융거래는 원래 불가능할 뿐 아니라 돈세탁 방지에 관한 국내법도 잘 실행되고 있으므로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국 기업과 국민은 국가보안법과 외환법 등에 의해 북한과의 금융거래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추가적 조치를 취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 언론들도 이같은 현실을 곧잘 망각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일본이 이날 꺼내 든 금융제재는 미국이 이미 취하고 있는 조치들을 겨우 따라가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기업이나 개인의 해외송금과 예금인출을 금지하는 것인데, 그 대상은 미국이 정한 15개 기업과 개인 1명이다. 일본으로서도 벌써 당연히 취했어야 할 조치들인데, 그 동안 책임을 방기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미국의 대북 제재, 압박과 협상이 공존한다

미국의 대북 추가 제재 움직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상당한 '오해'가 존재하는 것 같다.

14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미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혹은 정상회담과 관계없이 곧 대북 제재조치에 착수할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회담의 결과는 이런 관측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a 일본 정부가 19일 각료회의 의결을 거쳐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에 들어갔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 광명성1호의 모습.

일본 정부가 19일 각료회의 의결을 거쳐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에 들어갔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 광명성1호의 모습.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외교적·평화적 해결원칙'과 '6자회담에 대한 책임'을 천명했다고 해서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정상회담 전후 미 정부의 태도를 편견없이 들여다 보면 '압박'과 '협상'의 신호가 공존함을 알 수 있다.

안보리결의 1695호에 따른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서조차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는 신중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달 초 한·중·일 3국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차관보의 메시지도 언뜻 보면 북한에 대한 '강경 압박' 같지만, 중국방문 기간 동안 6자회담 북한측 수석대표 김계관과의 만남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양면성'을 갖고 있다.

정말 제재하고 싶다면 해상봉쇄하겠지만

현재 미국이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른바 '추가 제재'도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는 차원의 조치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2000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모라토리엄(발사유예) 선언에 호응해 취했던 경제제재 완화 조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것인데, 이는 안보리 결의 내용과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고 실행 여부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안보리결의 1695호에서 대북 제재조치의 근거는 "미사일과 미사일 관련 물품ㆍ재료ㆍ제품ㆍ기술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것을 금지하며 모든 회원국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이 검토하는 안은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파기, 북·미 양자합의를 먼저 위반했기에 자연히 따르는 대응조치이지, 안보리 결의와는 무관하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제재도 이미 1년 전부터 시행에 들어가있기 때문에 역시 안보리 결의 이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일본이 현재 미국이 하고 있는 수준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것은 당분간 추가 조치를 취할 여지가 없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작심하고 안보리결의를 실행에 옮길 생각이면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을 북한에 적용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PSI란 미국이 2003년부터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추진 중인 정책으로, 불법무기나 미사일 기술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 등을 공해 상에서 수색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는 곧 해상봉쇄를 의미하는데, 미국이 이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징후는 아직 없다.

대북제제, 그 자체가 목적인가

a 일본의 차기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

일본의 차기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 ⓒ 연합뉴스

이 시점에서 다시 원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북 제재와 협상, 압력과 회유, 이런 논쟁을 왜 벌이게 됐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다. 당면하게는 북한을 6자회담 체제에 복귀시켜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포기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압력과 제재,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일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강경론을 부추기는 세력도 있겠으나, 그것이 적어도 국제사회의, 혹은 관련 당사국들간 합의는 아니다.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 대해서는 당연히 벌칙을 가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놓고 있는 것 역시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서투른 대응에도 지적할 점이 많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제재도 압력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외교적 노력을 결여한 제재와 압박은 상대를 더욱 뾰족하게 웅크리게 해, 강경이 강경을 낳는 악순환만 부를 뿐이다.

아베의 비전은 무엇일까

일본이 19일 발동한 대북 금융제재, 그 자체는 탓할 것이 없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이를 지렛대로 얼마나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느냐 하는 점이다. 20일 자민당 총재에 선출될 것이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과연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재임 중 2차례 방북을 통해 보여줬던 것과 같은 '창조적 외교'를 기대해본다. 아베 장관이 비록 대북 강경론으로 일어선 정치인이지만, 세계사에서 국가간 극적인 화해는 오히려 강경파 정권 하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면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