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활 패턴 바꾸지 않으면
요도하열증은 아이들의 미래가 된다"

[인터뷰] SBS <환경호르몬의 습격> 제작한 유진규 PD

등록 2006.09.20 16:17수정 2006.09.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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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홈페이지

"시청자들께 불안감만 가중시킨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아직 요도하열증 같은 질병이 국내에 연간 5~6명 정도지만, 우리의 생활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외국 아이들에게 빈번한 질병이 곧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유진규(41·SBS프로덕션 제작3팀장) PD는 < SBS 스페셜 > '환경호르몬의 습격' 2부작이 연이어 주목받고 있어 기쁘지만, 동시에 시청자들의 반응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1부(우리 아이가 위험하다)와 2부(현재시각 11시 55분)가 각각 지난 10일과 17일 방영된 이후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경각심을 넘어 공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유 PD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플라스틱 용기, 합성세제 등에서 생기는 환경호르몬의 심각성을 일깨워주었다.

특히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에 "둘째 아이는 못 낳겠다", "무서워서 프로그램을 끝까지 시청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2~3세 여자 아이들의 가슴이 사춘기 소녀들처럼 봉긋하거나, 아홉살에 생리를 시작하는 증상을 보인 '성조숙증'이나 남자 아이들의 요도 끝이 음경 중간에서 열려 성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요도하열증' 문제를 접한 시청자들은 "충격 그 자체"이며 "선정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환경호르몬의 위험, 보고도 가만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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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홈페이지

유 PD는 '선정적이다'는 비판에도 애초 기획 취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19일 목동 SBS 사옥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공포심을 갖고 과민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 도중 만난 미국의 도리스 랩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도리스 박사는 취재진을 만나 눈물을 보였다. 30년 전 미국에서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소아과 질환을 경고하고 여성들의 '자궁환경'을 강조했지만, 당시 미국에서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 국내에는 극소수에 불과하더라도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안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유 PD는 "방송에서 사례를 찾다보면 극단적으로 가야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 역시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인류의 재앙이 눈앞에 보이는데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생활 패턴 혁명'을 일으키기에 앞서 그가 시청자들에게 강조하는 한 가지는 '먹는 그릇부터 바꾸라'는 것. 그는 "방송이 나간 이후 '화장실 슬리퍼는 신어도 되느냐', '지하철 손잡이는 잡아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먹는 것과 무관하지 않느냐"며 시청자들의 과민 반응에 부담스러워했다.

경력 11년차인 유 PD는 지금까지 <인생대역전>, <해결 돈이 보인다> 등 환경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연출 당시 환경 다큐멘터리에 손을 댄 것 말고는 이 방면에서 아직 '초보자'지만,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고 무작정 "아저씨만 믿어, 내가 고쳐줄게"라고 약속했다.

다음은 유진규 PD와의 일문일답.

a 유진규 PD. 유 PD는 지난 10일과 17일 각각 방영된 < SBS 스페셜 > '환경호르몬의 습격' 2부작을 제작했다.

유진규 PD. 유 PD는 지난 10일과 17일 각각 방영된 < SBS 스페셜 > '환경호르몬의 습격' 2부작을 제작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 프로그램 방영 이후 반향이 크다. 기분이 어떤가.
"시청자들에게 고맙다. 조연출 시절 환경 다큐멘터리를 해봤는데 시청률이 3%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제목에까지 '환경호르몬'이 들어가서 '누가 보겠나' 했는데 많이 놀랐다.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분들의 절절한 절규가 호소력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속편에도 관심이 컸고…."

- 시청자 게시판을 보니, 후속 프로그램 요구가 많더라.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 호르몬 이상 분비가 환경호르몬만의 문제일까.
"분명 아니다. 호르몬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체계로 움직인다.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한 감이 없지 않다."

"농약, 산업용품 등은 더 위험"

- 화학물질은 이미 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도대체 대안이 무엇이냐.
"마땅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겁만 줬다. 이걸 어떡하나. 참 문제다.(웃음) 그러나 산업 전반이 변해야 한다. 편리하고 싸니까 플라스틱 용기를 많이 썼고, 약간의 독성물질이 있어도 허투루 넘기고 무시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샴푸 대신 세수 비누를 썼다. 한두 달 머리가 가렵고 돌아버릴 지경이었는데 6개월이 지나니까 머릿결이 살면서 자생력이 생기더라. 비듬도 사라졌다. 우리가 (화학물질 사용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 왜 계속 쓰고 있나. 업계는 돈이 된다면 해롭지 않은 물질을 만들지 않겠나. 지금까지 화학물질을 만들어서 먹고산 업계가 이제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개발에 책임지고 앞장서야 한다."

- 우리가 모르는 환경호르몬의 악영향이 또 있을텐데.
"많이 있을 것이다. 가정용품만 취급했는데 염색제 같은 산업용품이나 농약 등에도 얼마든지 있다. 자료에서 봤는데 미국산 면화에 엄청난 병충해가 꼬여 독한 살충제를 쓰는데 이것이 세탁을 해도 남는다고 하더라.

'미국산 속옷이나 침구류에는 환경호르몬이 있으니 쓰지 말라'는 전문가도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 이야기를 (프로그램을 통해) 하지 못했다. 불안감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옷 입지 말고 실크만 입으라고 말할 수 있나, 아니면 잠자지 말라고 할 수 있겠나."

- '현재시각 11시 55분'이란 2부 제목에 따르면, 이제 인류에게 5분 남았다. 뭘 해야 할까.
"시계를 거꾸로 돌려야지. (화학물질을) 규제하고 없애기 시작하면 시계는 거꾸로 돈다. 이것은 일반 시계가 아닌 환경위기 시계다. 거꾸로 돌릴 수 있다. 지금 5분 전이지만 합성세제, 플라스틱을 안 쓰기 시작하면 15분 전, 한 시간 전으로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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