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포근했던 가을 들녘의 '하얀 추억'

[최성민의 자연주의 여행] 전남 곡성 겸면 목화밭

등록 2006.09.21 19:24수정 2006.09.2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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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곡성 목화밭.

곡성 목화밭. ⓒ 최성민

목화는 예전 이불 솜과 옷 솜, 그리고 무명베를 짜는 실을 내는 소재로 예전 우리 몸과 마음까지를 감싸주던 정겹기 그지없던 우리 풍물이다. 지금 적어도 40대 중반 이후 세대는 이런 목화(면)의 적당히 부드럽고 따스한 감쌈에 대한 감각이 살갗 깊숙이, 그리고 정서의 한 구석에 아련한 자투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음식도 고향에서 자랄 때 많이 먹었던 음식을 보면 침이 날 정도로 반가운 것은 우리의 위와 체질이 그것에 잘 적응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한 평생 또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어린 시절 목화와 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을 보낸 기억은 송편의 고명처럼 우리 정서에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a 목화꽃. 베이지색으로 피었다가 질 무렵엔 분홍색으로 변한다.

목화꽃. 베이지색으로 피었다가 질 무렵엔 분홍색으로 변한다. ⓒ 최성민

다른 섬유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목화를 이용해 베를 짜고 무명솜으로 이불을 만들고 겨울철 한복도 무명솜을 넣어 두툼하게 만들어 입었다. 무명솜을 넣은 이불과 겨울옷은 땔감이 넉넉하지 늘 추위가 문제였던 옛날 우리의 일상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고,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보배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솜을 잘 타서 뭉글뭉글하게 만든 무명솜 이불은 별로 무겁지도 않고 통풍을 적당히 시키면서 온기를 유지해줘 정말 친환경 겨울나기 동반자였다. 무명옷 또한 그 거부감없는 촉감으로 우리의 몸과 정서를 안온하게 감싸주었다.

나는 그 시절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속옷부터 양말에 이르기까지 가능하면 '순면'을 찾는다. 외국에서도 물론 질높은 순면 제품은 값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a 다래. 목화의 어린 열매로 면이 될 하얀 속살은 단 맛이 있어 시골 아이들 주전부리감이었다.

다래. 목화의 어린 열매로 면이 될 하얀 속살은 단 맛이 있어 시골 아이들 주전부리감이었다. ⓒ 최성민

목화로 만든 솜과 면이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옛날인지라 시골에서는 면 수확이 끝나면 겨울까지도 면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씨아(씨앗이)로 면의 씨앗을 골라내고 물레질을 하여 면에서 실을 빚어내는 일이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농가의 일상 일이었다.

a 다래가 익어 벌어져 다 피어난 목화. 이것이 솜이 무명 솜이 되고 실이 되어 천으로 짜인다.

다래가 익어 벌어져 다 피어난 목화. 이것이 솜이 무명 솜이 되고 실이 되어 천으로 짜인다. ⓒ 최성민

무명(목화)이 우리 생활에서 차지했던 자리가 그 만큼 컸던 탓에 가을철 '명따러 가는' 일은 한 해 농사의 큰 부분이었고 다른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에서 하얀 솜덩이가 주렁주렁 달린 목화밭은 우리 농촌의 또 다른 장식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목화밭에는 다래라는, 달콤한 국물을 출출 내주는 열매가 달려 있어서 학교갔다 돌아오는 길 시골 아이들의 주전부리가 되어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다래는 목화꽃이 진 뒤에 달리는 목화의 열매로서, 쪼개보면 안에 솜으로 피어나기 위한 하얀 조직체가 아직 연하디 연한 열매 속살로 들어있다. 다래 껍질을 벗겨내고 쫄깃하고 부드러은 그것을 씹으면 상큼한 향과 함께 단물이 쏟아져 나온다. 다래는 천식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하여 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a 목화나무.

목화나무. ⓒ 최성민

우리나라 목화는 고려시대 문익점이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익점의 고향인 경남 산청은 목화 시배지 기념관이 있다. 그러나 다른 섬유의 발달과 수입면의 범람으로 전국 어디에서도 그럴듯한 목화밭을 볼 수 없는 요즘, 전남 곡성군 겸면 일대에 본격적인 목화밭이 펼쳐지고 있다. 겸면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뜸 전국 유일의 군 단위 목화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겸면 목화밭은 들판 가운데도 있고 강변길도 목화밭으로 꾸며져 있다. 또 다른 야생화 및 토종 작물로 꾸며놓은 '목화공원'도 있다. 겸면 목화밭에 가면 다래와 목화꽃, 다래가 까맣게 익어 터져 토해내는 솜덩이가 한 나무에 모두 함께 달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a 조.

조. ⓒ 최성민

※ 가는 길

서울에서 대중교통은 기차(새마을호, 무궁화호)가 곡성역까지 4시간 걸린다. 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곡성나들목으로 들어가자 마자 좌회전하여 5분을 가면 겸면사무소와 함께 목화밭이 나온다.

곡성에서는 오는 29일부터 5일동안 심청축제가 열리고 이어서 석곡코스모스축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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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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