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결혼한다고 출산율 높아지나

황당한 '가족연령제' 도입 법안... 각계 비판 목소리 높아

등록 2006.09.22 17:24수정 2006.09.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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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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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희 기자] 어린 나이에 결혼할수록 지원금을 많이 줘서 출산율을 높인다는 내용의 '가족연령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인 미혼 남녀와 여성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황당하고 무책임한 법안"이라며 사실상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경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9일 여당 의원 20명과 함께 가족연령의 합계가 낮은 가족에 취업·주거·금융 등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가족연령은 '남편나이+아내나이-자녀나이'를 말한다. 부부의 나이가 어릴수록, 출산을 빨리할수록 가족연령이 낮아진다. 예를 들어 기준 연령을 60세로 정할 경우, 30세 남편과 25세 아내가 아이(1세)를 낳으면 가족연령이 54세(30+25-1)가 돼 향후 6년(60-54)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혜택 기간도 1년씩 연장된다.

모든 가족의 나이를 합하고 더하는 식이기 때문에, 아이가 없어도 부부의 나이만 어리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35세 남편과 30세 아내처럼 늦게 결혼한 경우에는 아이(1세)를 낳아도 가족연령이 64세가 되므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경숙 의원 측은 "결혼과 출산을 빨리 하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조혼을 유도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부부 나이만 어리면 자녀가 없거나 한 명밖에 없어도 두 자녀 이상의 가족이 받는 혜택을 똑같이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먹구구식 방법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하겠다니..."

그러나 미혼 남녀와 여성계 전문가들은 연령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제한하고, 조혼을 유도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제도인데다 기준 연령이나 예산 등 구체적인 계획도 없어 '졸속 입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혼 여성인 박선경(29)씨는 "보육시설이 미비해 일하는 여성들이 양육과 일을 병행하기 힘들고 과중한 교육비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것 아니냐"고 말한 뒤 "가족연령제 같은 주먹구구식 방법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니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미혼 남성인 노준형(30)씨도 "법안대로라면 이미 결혼적령기(?)를 넘겼으니 지금부터 결혼을 서둘러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밝히고 "나이를 기준으로 지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편협하다"고 비난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직 경제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에게 무조건 결혼을 빨리 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한 뒤 "특히 출산을 위해 여성들이 자신의 경력을 희생해야 하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지원만 늘리는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른바 '정상가족'만 배려한 제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정옥 한국여성민우회 지원팀장은 "가족연령엔 엄마와 아빠, 자녀의 나이가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가 부재한 한부모가족, 비혼모·부자가족 등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한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 오히려 역행하는 제도"라고 비난했다.

손봉숙 민주당 의원도 "결혼을 늦게 해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일찍 해도 못 낳을 수 있으며, 본인 의지에 따라 아예 안 낳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뒤 "독신에게는 자기가 낸 세금이 엉뚱한 곳에 들어간다는 역차별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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