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도시인 손에 호미를 쥐게 하는가

[일본도시농업연수기5] 도심 속 이색지대 - 지하농원

등록 2006.09.22 19:01수정 2006.09.2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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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이 농부 없이 살 수 없듯이, 농부는 도시인 없이 살 수 없다. 지금은 도시와 농촌의 능력과 지위가 대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시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우리의 농촌은 안간힘을 쓴다. 노인들만 사는 시골마을 이름 앞에 혀도 안 돌아가는 '팜 스테이'니 '그린 투어리즘'이니 '농촌 어매니티'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 도시인을 모으고 있다.

도시의 성당이나 사찰에서는 우리 농산물 장터가 열린다. 농협이 추진하는 1사1촌(一社一村)맺기 운동에서도 농촌 일손 돕기, 마을 발전기금 내기, 농촌체험, 농산물 직거래 등을 벌이지만, 도농 간의 대등한 교류라기보다 주로 도시인에게 손 벌리기 차원이다.

같은 날 심은 상치. 붉은 색 빛에 더 잘자란다.
같은 날 심은 상치. 붉은 색 빛에 더 잘자란다.전희식
우리가 주목하는 도시농업은 도농 교류의 폭을 확장하고, 농업·농촌의 가치를 전파하는 전초기지다. 일본도시농업 연수 마지막 날 방문했던 곳이 그런 곳이었다.

도쿄 중심부에 있는 '지하농원'이었다. 관람객이 한 달에도 수천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한국인은 이번 전국귀농운동본부 연수팀이 두 번째라 했다. 파소나(PASONA)라는 이 회사는 초고층 빌딩의 지하층에 수백 평 규모의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맨땅과 같은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저녁이 되면 조명을 줄이고, 밤이 되면 아예 불을 꺼 준다고 한다. 달이 뜨는 때면 달빛 정도의 조명을 준다고 하니, 여간 신경 쓰는 공간이 아니었다. 벼, 각종 채소, 콩과 류, 허브식물 등이 수십 종이나 자라고 있었다. 물과 영양과 온도도 정교하게 조절된다.

벼가 익었다.
벼가 익었다.전희식
빛은 최대한 가시광선에 가깝게 하기 위해 고압 나트륨 등이나 메탈 헬라이트 등을 쓰지만, 빛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등에서 원치 않는 열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곳에는 발광다이오드, 일명 엘이디(LED - light emitting diode) 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엘이디 전구 수명은 반영구적이며, 같은 밝기의 형광등에 비해 소비 전력은 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빛의 양과 파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서 빛의 파장이 작물의 성장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실험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파장이 짧은 붉은색 엘이디 등과 파장이 긴 파란색 엘이디 등을 같은 날 심은 상추에 쪼이고, 성장상태를 날짜별로 사진을 찍어 놓은 곳이 있었다. 어떤 색의 빛이 더 작물을 잘 키우겠는가. 붉은색이다.

붉은색 빛이 나오는 쪽이 두 세배 이상 더 자라있었다. 안내를 맡았던 파소나의 직원 '야구사끼'씨는 붉은빛은 열매에 파란빛은 줄기에 더 필요하므로 나누어 쬐기도 한다고 했다.

거실 천장 위로 넝쿨 채소가 주렁주렁.
거실 천장 위로 넝쿨 채소가 주렁주렁.전희식
3월 9일에 심었다는 토마토 밑동 굵기는 아이들 허벅지만 했다. 30여 평의 방 천장을 가득 채우고 수백 개의 빨간 토마토가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각급 도시학교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했다. 사시사철 잘 보살피고 있는 남산 식물원이 지하로 옮겨져 온갖 농산물로 가득 차 있다고 상상해 보면 된다.

물론 농사를 이렇게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농사라기보다 공업에 가까웠다. 그러나 도시인의 시선을 농업과 농촌으로 돌리고, 그들의 손에 자판과 테니스라켓 대신 호미와 괭이를 쥐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처럼 이번 일본도시농업 연수에서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도농교류의 다양화에 대해 느끼는 바가 컸다.

수경재배.
수경재배.전희식
2005년 집계, 도시 안에 천여 평이나 되는 도시농장이 3000개소 이상 만들어져 있는 일본에는 1990년 제정된 '시민농원정비촉진법'을 비롯하여 1998년 12월 농림수산성이 작성한 '농정개혁 개요', 그리고 1999년 제정된 '식료·농업·농촌기본법'으로 도시농업 관련 법령을 정비하였다.

2005년 3월 내각회의 결정으로 '식료·농업·농촌기본계획'을 정하고 같은 해 9월에는 '특정농지 대부법'을 제정하여 도시농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관련법은 시민농원 개설 조건을 완화하여 농지이용 기회를 확대했으며 세제 혜택(땅을 도시농장으로 쓰면 재산세와 소득세는 물론이고 상속세도 거의 면제 된다)을 넓혔다.

특히 '특정농지 대부법'은 행정단위인 기존의 시정촌 외에도 시정촌과 협정만 체결하면 기업이나 엔피오(NPO - Non Profit Organizations:비영리조직) 법인도 시민농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

귀농을 위한 문화·제도적 뒷받침 아쉬워

엊그제 9월 18일에 전주YMCA 강당에서 '전주생태농업학교' 개강식이 있었다. 필자는 전 동문회장이자 강사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학교의 교장인 이석영 전북대 교수는 민주화운동 초기 시절에 빗대어 격려를 했지만, 십여 명 수강생 규모는 우리 농업의 현실인 양 초라 해 보였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2년 전에 설립한 '도시농업위원회'에서는 '귀농학교'와 별도로 '도시농부학교'를 개설하여 매년 수십 명씩 도시농부를 육성하고 있지만, 이들은 자기 집 옥상이나 베란다에 흙을 날라 농사를 짓는 실정이다.

귀농운동본부에서 4년 전부터 하고 있는 안산과 일산 등지의 '도시텃밭'이 올해에는 일곱 개로 늘었다. 이 모든 것을 법적 뒷받침도 없이 자력으로 꾸려가 지니 벅차기만 하다.

생태학습장이자 도심 휴게 공간이며, 여가 선용 및 공동체 활성화의 마당이 되는 도시농장을 통해 도시를 개조하려는 시도가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활발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농촌에 대한 이해 증진과 도시민의 생태환경 자각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 주 5일 근무, 음식물쓰레기 매립금지 등의 환경 아래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관심을 끄는 '산촌유학', 도시건축 용적률 인센티브제, 아파트분양 시 텃밭 동시분양제 등에 거는 기대가 크다. TV이 장수프로그램이었던 <전원일기>도 이런 차원에서 소재 영역이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작가 다카하타 이사오의 <추억은 방울방울>이라는 작품이 일본 도시농업에 미친 영향이 컸다고 한다. 현재 미야자키 하야오는 농촌총각 도시처녀의 애틋한 사람이야기 <나쯔꼬노 사케(夏子の酒)>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농주(農住 또는 濃酒)

덧붙이는 글 | <전북일보> '특별기획' 난에 전면에 걸쳐 연재되고 있는 일본도시농업연수기 입니다. 이 기사는 <전북일보> 9월 20일자에 실린 5회째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일보> '특별기획' 난에 전면에 걸쳐 연재되고 있는 일본도시농업연수기 입니다. 이 기사는 <전북일보> 9월 20일자에 실린 5회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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