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 2년, 국가는 다시 나를 감시하고 있다"

[창살 없는 감옥, 보안관찰 ③] 전 피보안관찰자,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의 황대권

등록 2006.09.27 14:33수정 2006.09.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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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창살 없는 감옥, 보안 관찰

국가보안법, 형법, 군형법 반란죄 등으로 실형을 언도받은 뒤 재범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된 자들에게 내려지는 보안관찰처분. 1987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하위 지침으로 1989년 대체 제정되어 지금에 이른다.

출소 후에도 자신의 사생활에 관한 일거수일투족을 경찰에 신고해야 하며, 검찰과 사법경찰에 의해 사찰과 감시를 받아야 하는 보안관찰대상자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보안관찰대상자들은 신체의 자유를 비롯해 거주이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인권 침해는 심각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보안관찰. 보안관찰대상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들과 보안관찰의 문제점, 그 대안에 관해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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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찰 승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감시받기 시작했다는 황대권씨.“이건 주홍글씨야. 한번 국가에 찍히면 죽을 때 까지 그 굴레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거야. 자기의 인권을 박탈당하면서…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 거지.” ⓒ 김진아

"한번만 더 나를 감시하고 다니는 걸 포착하면, 이젠 가만히 있지 않을 거여."

황대권(51)씨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노기어린 표정으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는 다소 낯설었다. 이름없는 들풀 한 포기에서 삶을 성찰하고 시골에 은거하며 농사에 전념하는, 온화하기만 한 황대권은 잠시 잊어야 했다.

보안관찰처분에 대한 그의 분노는 그렇게 마음깊은 곳에서 치받고 있었다.

작은 감옥에서 넓은 감옥으로 나왔을 뿐

80년대 이른바 '구미 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 2개월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한 황대권씨. 지난 98년 8월 광복절특사로 출소한 그는 출소와 동시에 보안관찰대상자가 됐다.

"석방돼서 나가는데 종이 한 장을 주더라고. 보니까 보안관찰동의서야. 선택의 여지가 없어. 서명 안 하면 안 내보내주니까. 또 법이기도 하고. 서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내가 감옥에서는 교도관의 감시를 받고 살았는데 나가서는 동네 관할경찰서 형사들의 감시를 받고 살아야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작은 감옥에서 넓은 감옥으로 나온 셈이지."

피보안관찰자가 된 이후 그는 수차례 '기분나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심심하면 전화를 해 "뭐 하냐"고 묻는 것을 비롯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찾아오거나 근황을 묻는 일은 일상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수화기에서 담당형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이, 황대권씨, 어제 집에 안 들어가셨구먼."

보안관찰의 무게는 이사를 가도 여전했다. 관할경찰서에 이전 신고도 하지 않은 채 버티던 그가 제 발로 경찰서에 걸어가게 한 일이 있었다.

"자리잡고 농사짓는 데 도움준 후배가 하나 있었어. 그런데 이 친구가 어느 날 머뭇머뭇하다가 어렵게 얘기를 꺼내. 뭔가 했더니 아, 글쎄 이 친구한테 경찰이 그렇게 수 차례 전화를 했다는 거야. 신고도 안 했는데 이미 알고 있던 게지. 자꾸만 내 동태를 묻고 하니 이 친구도 참 난처하고 답답했던 거야. 경찰이 그렇게 그 친구를 괴롭히는데 어떻게 해. 할 수 없이 관할경찰서로 가서 신고를 했지."

일거수일투족 자신의 일상이 낱낱이 누군가에게 알려지고 보고된다는 것, 심지어는 자신의 주변까지 탐문하며 일상을 옥죄는 보안관찰처분을 견디기 힘들었던 황씨는 보안관찰갱신처분취소 행정 소송을 냈다. 그리고 법원으로부터 "거듭되는 보안관찰처분 갱신은 부당하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2004년 1월 30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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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의라는 게 유명한 사람은 안 되고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깔아 뭉게도 괜찮다는 거여. 출소해서 자유로워진 사람이 어떤 정치적 집회에 참가하던 무슨 상관이냐고.” ⓒ 김진아

"나의 승소는 유명세 때문... 힘없으면 짓밟히는 나라"

승소 판결 받았던 때를 생각하면 황씨는 지금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지긋지긋한 감시의 눈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이제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 하는 마음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기쁨만 있던 건 아니다. 세계최연소장기수이기도 했던 강용주씨 역시 보안관찰갱신처분 취소 소송을 했지만 이미 패소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으로 복역하고 보안관찰처분에 항거한 두개의 소송,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황대권씨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소송을 제기했을 때가 <야생초편지>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신문지상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고 그럴 때였지. 소송하면서 이렇게 변론했어. 나는 앞으로 이런 범죄를 다시 지을 가능성이 없고 생태사회운동하면서 살고 있다고. 그런데 이런 사람을 감시하는 게 말이 되냐고.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지.

강용주씨는 안 그랬을까. 나랑 상황은 달랐지만 강용주씨 역시 다르지 않지. 자신의 입장, 재범의 위험성으로 보안관찰 대상이 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지.

하지만 결과는 달랐어. 나는 승소했고 강용주씨는 패소했어. 그렇다면 우리 둘의 차이가 뭘까. 그건 단지 내가 당시에 언론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사람이고 강용주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여."

황대권씨는 자신이 승소한 이유는 자신의 '유명세' 덕분이라고 말했다. 보안관찰의 부당함을 인식한 국가의 현명한 처사도 아니고 단지 자신에게 다시 한번 갱신처분을 내린다면 "여론으로부터 크게 두들겨 맞을 게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황대권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대한민국 정의라는 게 유명한 사람은 안 되고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깔아뭉개도 괜찮다는 거여. 강용주 패소 이유에 보니까 '출소 장기수 만나고 통일 문제 회합에 참여했고' 어쩌고 써있는데. 그게 말이 돼? 출소해서 자유로워진 사람이 어떤 정치적 집회에 참가하던 무슨 상관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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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더 나를 탐문하고 다니는 걸 포착하면, 이젠 가만히 있지 않을 거여.”황대권씨는 승소했음에도 감시를 계속한다면 소송이건 뭐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진아

한번 국가에 찍히면 죽을 때까지

승소 후 2년. 하지만 황대권씨는 얼마 전 예기치 못한 일을 당했다. 가까운 후배로부터 "경찰이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 형님의 동태를 묻더라"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황당했지. 난 지금 보안관찰대상자가 아니라고. 보안관찰처분취소 소송을 했고 승소를 해서 뉴스에도 나가고 그랬는데…. 아니, 왜 경찰에서 나를 다시 탐문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지. 한번 보안관찰 리스트에 올려놓고서는 습관적으로 연락하는 건가 싶고. 그 일 때문에 아주 화가 많이 났어."

황대권씨는 마음을 다스리려는 듯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처럼 긴 시간을 감옥에서 산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 정신이상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해. 감옥에서 면벽하며 보낸 시간도 고통이지만 대개 고문과 압박의 경험들이 있거든. 내가 고문을 받은 게 60일이야. 그게 벌써 21년 전일인데. 나는 지금도 고문당하는 꿈을 꿔. 그러면 소스라치게 놀라 깨고 그런다고. 그런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하기는커녕 국가가 감시를 한다고? 보상도 치료도 안 할 거면 괴롭히지나 말아야지."

황대권씨는 보안관찰처분 취소 처분에도 불구하고 감시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법원의 승소 판결도 무시하고 "계속적으로 인권 침해를 하겠다는 경찰의 태도"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거였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어쩌면 벼르고 있는 듯도 했다. 그는 또 보안관찰처분은 단지 국가보안법의 하위법 개념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보안관찰처분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야 돼. 그냥 국가보안법 하위법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생긴 거지만 별개로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니까. 소수이긴 해도 구체적으로 인권 침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장 그만둬야 할 법 아니겠어? 하루빨리 폐지운동이 일어나야 해."

법원의 승소 판결의 근거가 있는 황대권씨 마저도 벗어나기 힘든 보안관찰의 굴레. 보안관찰처분의 끝이 있을까. 혹은 황씨가 보안관찰의 굴레를 벗어난 적이 있기는 한 걸까. 꼬리에 꼬리를 잇는 의문들이 머리에 가득 찰 무렵, 황대권씨는 이런 말을 던졌다.

"이건 주홍글씨야. 한번 국가에 찍히면 죽을 때까지 그 굴레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거야. 자기의 인권을 박탈당하면서….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 거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독교인터넷웹진 <에큐메니안>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독교인터넷웹진 <에큐메니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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