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묻는다, 왜 나를 관찰하는가?"

[창살 없는 감옥, 보안관찰 ①] 피보안관찰자,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의 황인욱

등록 2006.09.19 14:00수정 2006.09.1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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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 없는 감옥, 보안관찰

국가보안법상, 형법, 군형법상 반란죄 등으로 실형을 언도받은 뒤 재범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된 자들에게 내려지는 보안관찰처분. 1987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하위 지침으로 1989년 대체 제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소 후에도 자신의 사생활에 관한 일거수일투족을 경찰에 신고해야만하며, 검찰과 사법경찰에 의해 여러 사찰과 감시를 받아야 하는 보안관찰대상자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보안관찰대상자들은 신체의 자유를 비롯해 거주이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인권 침해는 심각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보안관찰. 모두 7차례에 걸쳐 보안관찰대상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들과 보안관찰의 문제점, 그 대안에 관해서 짚어본다.

황인욱씨는 며칠 전 검찰에 출두했다. 벌써 네 번째, 햇수로는 8년째 반복되는 일이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검찰 출두는 매번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검찰 출두 때 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질문들. “옛날 그 사건이 어떻게 된 거지요? 그때 무슨 일을 했죠?”라는 검사의 질문에 앵무새처럼 대답을 되풀이해야 하는 시간은 고문과 다르지 않다.

징역을 살았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국가의 감시대상이 돼 살아온 황인욱씨. 하지만 그는 이번 검찰 출두에선 다른 때처럼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참담하고 억울한 심정을 담은 진술서만 제출하고 돌아왔다. 인터뷰 자리에서 황인욱씨는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를 내밀었다. 유독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국가는 무엇을 더 알고 싶기에 나를 관찰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빨갱이’ 낙인찍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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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힘든 건 2년에 한번씩 보안관찰 갱신 조사 과정에서 나를 ‘그때 그 사람’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저도 역시 그런 시기를 지나 앞으로의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은데, 자꾸만 나를 한발 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어요.” ⓒ 김진아

“어제 검찰에서 조서를 받으려던 형사가 그러더군요. ‘보안관찰은 낙인이에요, 낙인’이라고. 그 말이 맞아요. 보안관찰은 끊임없이 대상자를 빨갱이로 낙인찍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요.”

황인욱, 마흔한 살. 이른바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수감된 그는 6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지난 98년 광복절특사로 가석방 됐다. 그리고 보안관찰에 응하는 것을 조건으로 가석방된 그는 출소와 동시에 피보안관찰자가 됐다. ‘혹시 모르니 2년 동안 감시관찰하겠다’는 검찰의 말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가석방자로서 그 정도의 제약은 감수할 수 있다는 게 처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3개월마다 한 번씩 ‘관할경찰서에 주요활동사항과 자신이 만났던 다른 보안관찰대상자들의 인적상황과 장소, 내용 보고’하는 것을 비롯해, ‘10일 이상 주거지를 이탈하거나 여행을 한 내용, 주거지 이전 등의 보고’ 의무도 충실히 따랐다.

또 피보안관찰자의 재범을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집회나 시위장소의 출입을 금한다는 원칙도 지켰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2년의 시간이 흘렀고 황인욱씨는 자신이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으니 당연히 피보안관찰자의 지위가 해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제 생각과 다르더군요. 2년간 보안관찰에 충실히 응했는데도 검찰은 피보안관찰자의 지위를 해제시켜주지 않았어요. 2년간 다시 갱신됐다는 통보를 받았죠. 그리고 또 다시 2년… 그러다보니 벌써 8년이 흐른 거지요.”

워낙 충실하게 보안관찰에 응해 온 그이기에 지금 느끼는 참담함은 크다. 보안관찰대상자들 중에 저항하는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그보다도 못한 결과인 것 같아 속상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피보안관찰자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일들을 읊조리는 황인욱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보안관찰대상자가 돼 겪는 일은 겉으로 보기엔 작지만 엄청난 스트레스고 가혹해요. 우리 아이만 있는데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경찰’이라고 하면서 공포에 떨게 만들고 예전에 살던 전셋집 주인을 몰래 찾아가 제 근황에 대해 묻고 가기도 했다더군요. 집으로 불쑥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 일도 종종 있던 일이고… 피보안관찰대상자인 제 선배는 선배가 다니는 성당으로 찾아와 사람들에게 선배의 근황에 대해 묻고간 일도 있고요.”

보안관찰법은 길들이고 감시하는 제도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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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찰대상자가 돼 겪는 일은 겉으로 보기엔 작지만 엄청난 스트레스고 가혹해요. 우리 아이만 있는데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경찰’이라고 하면서 공포에 떨게 만들고 예전에 살던 전셋집 주인을 몰래 찾아가 제 근황에 대해 묻고 가기도 했다더군요.” ⓒ 김진아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황인욱씨에게 보안관찰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조장한 셈이 됐다. 보안관찰에 따랐던 그에게 이유 없이 계속 연장되고 있는 보안관찰법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치졸한 감시제도”일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황인욱씨는 “보안관찰법은 시대와 걸맞지 않게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적인 법률”이라고 강조한다.

“보안관찰의 문제는 사상이나 이념의 문제를 떠나 기본적 인권침해로 이해해야 합니다. 보안관찰 당사자나 심지어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이 법을 단지 국가보안법의 하위 법률이니, 국보법 폐지만 되면 자연스레 없어질 법 정도로 생각하는데 국가보안법 폐지와 보안관찰법의 문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가보안법 역시 인권침해의 요소가 크지만 거기엔 이념적 경계의 문제가 있죠. 하지만 보안관찰법은 국보법으로 인해 이미 형을 살고나온 사람을 행정적인 법률을 통해 인신을 제약하는 법이에요. 어쩌면 국보법보다 더욱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몰라요.”

따라서 멀게는 국가보안법 폐지, 보안관찰법이 폐지돼야 하겠지만 당장 실현될 수 없다면 보안관찰법 자체의 맹점을 보완하는 게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선 2년마다 있는 피보안관찰자 갱신을 어떤 근거로 하는지 이유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갱신됐다는 통보만 있을 뿐, 어떤 사상적 문제로 보안관찰대상에서 해지될 수 없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기본적인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게 황인욱씨의 말이다.

또 2년 갱신을 할 때 소집되는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에 어떤 방식으로건 피보안관찰자들의 항변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진술서나 출석, 그 어떤 형태로도 현재는 당사자의 입장을 항변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그래서 당사자가 충분히 자기 진술을 통해 적극적으로 제도를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황인욱씨의 주장이다. 또 지금처럼 모든 정보가 공개돼 있는 상황에서 3개월에 한 번씩 피보안관찰자가 자신의 행적과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 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일 힘든 건 2년에 한 번씩 보안관찰 갱신 조사 과정에서 나를 ‘그때 그 사람’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사람은 지난 과거의 세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잖아요.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저도 역시 그런 시기를 지나 앞으로의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은데, 자꾸만 나를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어요. 옛날 얘기를 끊임없이 들춰내고 나를 감시하고 여전히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저도 당해봤어요. 하지만 그것만이 고문이 아니에요. 힘겨운 이야기들을 억지로 끌어내고 가족들을 협박하고 정신적으로 시달리게 하는 거, 그것도 고문이에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 이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국민에게 해당된다. 하지만 국가가 정한 보안관찰대상이란 근거로 수년간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왔던 황인욱씨. 그는 이번에도 보안관찰 갱신 처분을 받을지 모른다.

수차례 충실히 보안관찰에 따라 온 그가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혹은 이런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 갱신의 주요한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열흘 후면 받게 된다는 갱신 처분, 황인욱씨는 어떤 통보를 받게 될까. 국가는 또 다시 그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둘 것인가.

한 보안관찰대상자의 항변

왜 나를 이렇게 함부로 다루는가?

1998년 8월 대구교도소를 나올 때, '혹시 모르니까' 최소한 2년 동안은 국가가 나를 감시해야 한다기에, 가석방자로서 그 정도의 제약은 감수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보안관찰에 응했다. 그 2년 동안 나는, 홀로 아이를 키워온 아내와 늦은 결혼식을 올리고 그 동안 너무 많이 변해 버린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눈코 뜰 새 없이 생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컴퓨터 디자인을 배워 인터넷 벤처회사를 창업했고, 그것을 운영하느라 정신없이 몇 년이 지나갔다.

그러나 보안관찰법이 정한 모든 절차와 규율을 준수했을 뿐더러 사회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생업에 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돌아 온 것은 어이없게도 세 차례의 관찰기간 연장, 도합 8년 간의 보안관찰 처분이었다. 나에게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아무런 변론권도 주지 않은 채 세 번씩이나 연장된 보안관찰 처분. 도대체 왜 나는 이유도 모르고 8년 동안이나 형사의 감시 관찰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가?

결국 나는 이 나라가 약자에 대해서는 더 멸시하고 조롱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나에게서 반성문도 받아내고 전향서도 받아내고 준법서약서도 받아내고 각서도 받아내고 몇 번이나 나를 무릎 꿇렸다. 이제는 보안관찰법을 들이대 나에게 또 다시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 나는 묻는다. "국가는 왜 나를 이렇게 함부로 다루는가?"

정치적 반대자의 인권을 다루는 방식

웬일인지 나는 '보도연맹원'으로 죽어간 내 외삼촌의 운명이 떠오른다. 내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일단 유사시에는 처분대상 1순위일 수밖에 없는…. 해방 직후 이 땅의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나처럼 국가에 의해 전향자가 되었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를 향한 애정을 증명하도록 강요당했던 그들. 누구보다도 순진했던 사람들이기에 국가가 시키는 대로 했던 그들.

그러나 국가는 전쟁이 나자마자 군대를 보내 그들을 학살했다. 바로 이것이 이 국가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굴종시키고 이용하고 '처분한' 방식이다. 그리고 50년이 더 지났다. 이 국가가 정치적 반대자의 인권을 다루는 방식은 과연 달라졌는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인권은 짓밟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국가라면 그것은 단언하건대 내가 되돌아갈 곳이 아니다. 보안관찰제도의 문제는 이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인권 차원의 문제다. 단 한 사람의 인권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우월한 가치 아닌가? 그것이 바로 진보의 척도가 아닌가?

나에게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조국을 달라

이런 나의 주장을 들으면 어떤가? 보안관찰처분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토록 순종적이던 한 대상자가 보안 관찰 8년이 흐른 지금 어떻게 변해 있는가? 이것만 보아도 이 보안관찰법이 사상범의 관리도구로서 그 효용을 상실한 제도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때 국가의 통치방식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다루는 올바른 방식은, 그들 스스로 국가의 우월성과 정당성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현재의 보안관찰제도는 국가의 우월성은 커녕 치졸함만을 느끼게 하는 한심한 제도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가 아닌가? 나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 굴종과 끝없는 굴종을 강요하고 내 머리 속까지 지배하려는 국가가 아니라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하도록 격려해 주는 나의 조국은 어디에 있는가?

제발 부탁한다. 나에게서 희망을 빼앗지 마라. 나에게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조국을 달라.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조국은, 우리의 조국은 나를 감싸 안아 준 고마운 어버이와 같다"고. / 황인욱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인터넷웹진 <에큐메니안>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독교인터넷웹진 <에큐메니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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