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을 내서 시골길 한 번 걸어보세요

달내일기(65)-달내마을에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등록 2006.09.25 17:48수정 2006.09.2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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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른쪽 계곡 사이에 흐르는 하얀 물길을 따라 가면 명대리에 이릅니다.

오른쪽 계곡 사이에 흐르는 하얀 물길을 따라 가면 명대리에 이릅니다. ⓒ 정판수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가을에는 9월이든 10월이든, 또 어느 곳이든 다 아름답지만 특히 이즈음의 시골길을 걸어보라고 권합니다. 단풍이 들기 살짝 전의 모습이 오히려 화장하지 않은 자연미인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발길 닫는 대로 걸으면 그냥 눈과 귀와 코로 가을이 마구 들어옵니다.


짬이 나지 않는 사람들은 도시 가까운 곳을, 좀 짬이 나면 먼 곳을 걸어보세요. 가능한 차 없이 가라고 하고 싶지만 차를 몰고 가더라도 적당한 곳에 멈춘 다음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걸으면 됩니다. 보이는 게 다 가을이요, 그러면 들리는 게 가을이요, 다 코로 들어오는 내음도 다 가을입니다.

이번엔 우리 마을(경북 경주시 양남면 동구 효동리)에서 명대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다만 쉼 없이 걷기만 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휴일이니 만큼 시간을 넉넉히 잡았습니다. 주변의 것을 마음껏 보자는 뜻에서.

a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물봉선화, 취나물, 찔레열매, 나팔꽃입니다. 모두 아침에 만난 꽃들이지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물봉선화, 취나물, 찔레열매, 나팔꽃입니다. 모두 아침에 만난 꽃들이지요. ⓒ 정판수

마을 아랫길로 내려서자 꽃들이 반깁니다.

a 비에 흙이 씻겨 알몸을 드러낸 나무 뿌리.

비에 흙이 씻겨 알몸을 드러낸 나무 뿌리. ⓒ 정판수

전경린이 그녀의 소설에서 '여성의 질을 얇게 떠놓은 모습'이라고 표현한 '물봉선화'가 밭을 이뤄 나타나고, 시인 도종환이 '떠도는 넋처럼 가으내 / 자늑자늑 흔들리는'이라 표현한 '억새'도 보입니다. 또 시인 고은의 '지난 여름내 /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놀아 / 여기 새빨간 찔레 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에 나오는 '찔레열매'도 보이고, 봄에 가장 각광받은 나물의 대명사 취나물이 꽃으로 피어 있고, 이제는 일부러 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나팔꽃도 보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산비탈에 이상하게 생긴 나무뿌리가 나타났습니다. 마치 감추어야 할 치부가 비에 흙이 씻겨 보이지 않고 싶은 모습을 드러낸 듯합니다. 그래선지 잎조차 아래로 늘어뜨리나 감추기엔 역부족인 듯.


감추어야 할 치부를 감추지 못하고 드러낼 수밖에 없을 때의 심정을 겪어보지 않은 이라면 그저 모양 있게 생긴 나무뿌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반대의 입장에 서 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다른 느낌이 들을지 모릅니다. 저만큼의 아픔을 지니고 산다는 게 또 얼마나 큰 아픔인지….

a 시멘트도로 위에 죽은 두더지. 아직도 무슨 이유로 하여 죽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멘트도로 위에 죽은 두더지. 아직도 무슨 이유로 하여 죽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 정판수

시멘트포장도로가 끝나가는 즈음 만난 건 두더지였습니다. 두더지는 전에 쓴 글 '만병통치약 <두더지 소금>을 아시나요?'에서 언급한 적 있지만 그때는 제대로 두더지를 본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반듯한 자세로 나를 반기듯이(?) 떡 하니 길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반가움보다 더 큰 의문에 살펴보았더니 죽어 있었습니다. 두더지가 죽어 있다니…. 까닭이 궁금했습니다. 땅속에서 살고 있어야 할 게 땡볕이 내리비치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었습니다. 차에 치인 흔적이 없다. 그럼 농약 때문일까요?

a 대부분 아직 덜 익었는데 잘 익은 으름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 아직 덜 익었는데 잘 익은 으름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 정판수

명대리로 가려면 비포장도로로 500m는 더 걸어야 합니다. 걷는 거야 상관없지만 이 때문에 일반 승용차는 갈 수 없는 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가을이 익어가는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온갖 열매로 하여.

으름덩굴에 달린 으름은 아직 덜 익었습니다. 그래도 주렁주렁 매달렸다는 표현을 쓰기에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달렸지요. 발길에 뭔가 차이는 게 있어 아래로 눈을 돌리니 쥐밤이 보입니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쥐밤은 산에서 야생하는 밤이라 하여 '산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크기는 일반 밤의 1/4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먹을 게 없습니다. 그래도 구워 먹으면 일반 밤보다 맛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데….

a 갈에 떨어진 쥐밤과 다래라 흙이 묻어 씻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소쿠리에 담아놓으니 모양이 나는 것 같지요.

갈에 떨어진 쥐밤과 다래라 흙이 묻어 씻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소쿠리에 담아놓으니 모양이 나는 것 같지요. ⓒ 정판수

쥐밤나무에 눈을 주다가 옆으로 돌리니 다래 덩굴이 보입니다. 그러나 다래는 몇 개밖에 달렸지 않습니다.

누가 따갔는가 싶어하다가 풀숲을 살펴보니 거기에 가득 떨어져 있습니다. 주워 호주머니에 담았지요. 군것질감으로는 그저 그만이니까요.

아직도 명대리에 도착하려면 한참이 남았습니다. 무엇이 나를, 우리를 반길까요?

가을 길, 시골길, 그냥 한 번 걸어보세요.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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