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파나마에 불발탄 10만여개 남겼다

[은폐된 진실, 반환미군기지 오염⑥] 존 린드세이 폴란드 기고

등록 2006.10.04 09:33수정 2006.10.16 18:13
0
원고료로 응원
파나마는 파나마 운하 조약에 따라 1999년 12월31일 미군이 사용하던 시설을 반환받았으나 불발탄 제거 등 환경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상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이미 반환되었다는 이유로 정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글은 미국의 시민단체인 'FOR'에서 남아메리카 프로그램를 담당하면서 파나마 미군기지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밀림의 제국주의자들(Emperors in the jungle)>(2003)의 저자인 존 린드세이 폴란드가 '반환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에 보내온 글입니다. '긴급행동'과 심층 공동기획을 진행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는 이 기고문을 전재합니다. <편집자주>
사람들은 종종 군대가 전쟁을 준비하면서 취하는 극단적인 조치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기 싫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전쟁 자체보다 더 심한 환경 파괴를 불러오기도 한다.

파나마에 남겨진 불발탄들.
파나마에 남겨진 불발탄들.
미국, 파나마에서 무슨 일을?

미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파나마의 열대우림 지역은 미군의 훈련과 군사 무기 실험장소로 이용되었다. 미 육군 TTC(Tropic Test Center) 등에 의해 주도된 이 실험은 파나마 운하 지역 50여 군데에 걸쳐 실시됐다. 미군은 특히 1만 5000헥타르(4500만 평)에 달하는 사격장에서 고폭탄을 터트리기도 했는데 여기에 남은 불발탄은 500파운드 포탄부터 40밀리미터 수류탄까지 다양하다.

TTC 등 군부대가 이곳에서 벌인 실험은 대부분 대인지뢰 설치 및 헬기장 파괴 등이었다. 미군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열대지방에서 미사일 저장 조건을 시험하기 위해 파나마에 여러 종류의 미사일 시스템을 들여왔다. 이 중에는 생화학 공격을 가정한 미사일 저장조건 시험도 포함돼 있었다.

"위험"
"위험"
미군 자료에 따르면, 미군은 파나마에 10만 5천 개의 불발탄을 남겼다. 1999년 기지 반환 후 현재까지 미군이 남긴 불발탄에 의해 사망한 사람은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명확한 자료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불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피해자는 어떤 보상이나 의료지원도 받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불발탄 집중 지역이 최근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과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파나마에서 "폭탄 쓰레기를 가져가라"는 반 부시 시위가 열리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불발탄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미군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1964년 7월에 열대 기후 실험을 위해 파나마 운하 지역에 VX 3톤을 들여왔다. 독성이 매우 강한 화합물인 VX는 5mm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엄청난 살상무기다. 미국은 VX 또는 사린(신경가스) 같은 발사체와 로켓과 함께 각각 10.5톤의 VX 지뢰 24개를 파나마에 들여왔다.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중 일부는 파나마에서 사용됐다. 1968년 미군 내부보고서에는 남겨진 지뢰들이 바다 속에 버려졌다고 기록돼 있다.


남겨진 의문

미군 내부 보고서는 파나마에 들여온 VX 3톤 중 576파운드에 대한 기록만 남아 있다. 나머지 2.5톤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TTC 사령부는 파나마 운하 지역에 화학물 폐기 지역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나머지 VX가 그곳에 묻혀 있을까?


파나마 미군기지 환경오염의 역사

미국은 1903년 당시 콜롬비아공화국이었던 파나마 지역의 독립을 지원하고 운하를 건설하는 조건으로 미군의 주둔과 함께 운하관리권을 넘겨받았다. 그 후 1960년대부터 파나마에서는 운하 관리권 반환 요구가 거세셨다.

결국, 1977년 미국과 파나마는 파나마 운하 조약을 맺고 1999년에 파나마 운하 관리권과 함께 운하 보호를 위해 주둔해 온 미군기지와 시설 등을 파나마 정부에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파나마 조약은 '생명과 건강, 안전에 해를 끼치는 모든 위험에 대해 제거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방법을 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1999년 미군이 주둔했던 기지를 반환하기 전 2년 동안 지표면의 불발탄만을 제거하였고, 그나마도 제한된 시간과 비용을 이유로 모든 지역의 불발탄 제거는 실행 가능하지 않다며 정화 조치를 축소했다.

또한, 미군이 파나마에 화학무기를 저장하고 실험했다는 사실이 미국의 시민단체 FOR에 의해 밝혀졌지만 이에 대한 조치 역시 전혀 시행되지 않았다. 파나마 정부는 1999년 반환받은 후 환경정화에 관한 협상을 하려 했으나 현재까지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남아 있는 불발탄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VX 가스는 피부, 폐를 통해 흡수되는 치명적인 신경가스로 갈색을 띠고 있으나 냄새는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독 화학물질 중 독성이 가장 강해 극소량만 흡입해도 목숨을 잃는다. 미국은 1961년 4월 VX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나 성분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VX는 그것을 담았던 용기나 장비, 그리고 VX가 있었던 지역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다. -편집자 주)

파나마에서 화학무기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부속 도서인 산호세(San Jose)섬이다. 미국은 1943년부터 1947년까지 산호세 섬에서 화학 무기 실험을 했고,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 기지를 더 확대하려는 협상이 실패한 후 이 섬을 떠났다. 그러나 이 섬에는 여전히 불발탄이 남아 있어 위험이 계속되고 있다.

2002년 이 섬을 조사한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조사단은 겨자탄을 발견, 여전히 위험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은 미국이 방치된 화학무기를 제대로 처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부시 정권은 이라크전을 일으키면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1980년대 개발된 VX를 아직도 폐기하지 않은 것을 하나의 이유로 삼은 바 있다. 파나마에서 일어난 일은 대량살상무기 탐색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동기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1998년과 1999년, 미국은 파나마 미군기지를 폐쇄할 때 재래식 무기와 화학 무기의 위험을 고스란히 남겨놓았다. 파나마 언론과 정부기관, 국민은 미군시설 환경오염을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파나마는 지금 한국 상황과 비슷하게 완벽한 정화를 요구하는 데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군이 떠난 뒤 남겨놓은 '쓰레기'... 파나마와 한국은 닮은꼴?

파나마 운하 조약(1977년)은 미국이 기지를 폐쇄할 때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인간 건강과 안전에 위험한 것을 제거하도록' 했지만 이 역시 모호하다. 무엇이 '실행 가능한' 것인지 양국 정부 사이의 논란거리였고, 수용 가능한 정화 기준 합의는 지연되었다.

폭격 연습장의 오염제거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미군이 철수한 뒤에도 지속될 수 있는 두 나라의 협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미군은 군사기지와 부지를 계속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정화의무를 거부하고 있다.

미군은 또 기지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파나마 정부가 반환 전에 효과적인 정화 조치를 요구하는데 필요한 환경에 대한 연구결과와 기지 사용 대한 정보를 숨겼다. 파나마 반환을 불과 며칠 앞두고 공동 환경오염조사가 진행된 적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녹색연합 등이 하는 것처럼 환경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는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미군이 사용하던 군사기지와 부지를 받게 될 지방자치 단체는 그 자체의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파나마 정부는 1999년 반환 이후 미군이 사용하던 부지를 매각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정화를 원하면서도 투자자들이 꺼릴 것을 염려해 오염 문제를 알리기 원치 않았다. 시민사회단체가 반환 기지의 완전한 정화를 압박하고 문제를 노출시킨다며 긴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파나마가 한국에 주는 교훈

미군 주둔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환경적 위험보다는 군대를 철수시키는데 주력했다. 정화를 지지하더라도 환경적 위험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잊기도 하는데 이것이 필리핀, 파나마, 비에케스, 푸에르토리코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미국의 시민단체인 'FOR' 활동가이자 <밀림의 제국주의자들 : 파나마 주둔 미군의 숨겨진 역사>(2003)를 펴낸 존 린드세이 폴란드.
미국의 시민단체인 'FOR' 활동가이자 <밀림의 제국주의자들 : 파나마 주둔 미군의 숨겨진 역사>(2003)를 펴낸 존 린드세이 폴란드.
기지가 폐쇄된 후, 정화를 요구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미군 기지의 반환은 이루어져야 하지만 한 번 미군이 철수하면 정화에 대한 관심을 얻는 정치적 수단을 잃는 것이다.

미군 기지의 환경정화를 원하는 한국 국민에게 주는 파나마의 교훈은 무엇일까? 더 많은 반환이 이루어지기 전에 환경정화에 대한 공평한 기준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준은 미국법이 적용되는 미국 내 군기지 정화에 적용되는 기준 정도가 되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어떤 오염이 어디에, 어느 정도까지 존재하는지 보여주는 자료를 한국에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목표를 위해 한국 정부에는 한국과 국제 시민사회의 참여와 지원이 필요하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미군기지 정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함께 토론하고 노력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