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다 많은 포탄의 녹슨 파편들...
환경오염 치유? 주한미군의 거짓말

[은폐된 진실, 반환 미군기지 오염③] 다시 매향리를 가다

등록 2006.09.18 03:15수정 2006.09.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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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만규 위원장이 농섬 북쪽 언덕에 박힌 포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전만규 위원장이 농섬 북쪽 언덕에 박힌 포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 선대식

a 농섬에는 포탄의 파편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농섬에는 포탄의 파편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 선대식

아름드리 나무들로 항상 푸르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농(濃, 짙을 농)섬을 아십니까? 우리에게는 농섬이라는 이름보다는 매향리 사격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주한미군이 지난 50여 년 동안 해상 표적으로 삼아 포탄을 쏟아 부은 곳, 바로 매향리 사격장.

미군이 매향리 앞 해안에서 1.6km 가량 떨어진 농섬을 해상표적으로 삼아 사격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51년. 미군이 폭격훈련을 그만둔 것은 무려 54년이 흐른 2005년 8월의 일입니다.

지난 7월 14일 주한미군은 매향리 사격장을 비롯한 미군기지 15군데를 한국정부에 반환하면서 SOFA 및 관련 협정을 충분히 고려해 환경오염을 치유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군이 주장하는 환경오염 치유란 지하유류저장탱크 제거, 사격장 표변의 불발탄 제거 등의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지난 17일 저는 매향리로 향했습니다. 태풍 '산산'의 영향 때문인지 일요일 오전 9시 매향리의 하늘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 30분, 드디어 농섬으로 가는 물길이 열렸습니다. 전만규(50) 매향리 공군폭격장 주민대책위원장과 함께 펄밭을 20여 분 동안 걸어가니, 검붉은 속살을 훤히 드러낸 농섬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54년 만에 돌아온 농섬은 녹슨 파편들의 무덤

a 2006년 9월 17일 매향리 농섬의 모습.

2006년 9월 17일 매향리 농섬의 모습. ⓒ 선대식

"여기 보이는 것들이 다 폭탄 파편들이에요."

농섬에 올라서자 전만규 위원장이 땅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짙은 검붉은 색의 물체들이 땅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녹슨 파편들의 무덤인 셈입니다. 돌보다 폭탄 파편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땅속에 반쯤 파묻힌 녹슨 포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농섬 북쪽 언덕은 수십 개의 포탄이 박힌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포탄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주변 바위에 녹아들어가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형체를 잃어버리고 땅에 눌러 붙은 것도 있었습니다. 전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모두 땅에 스며들었다"고 합니다.

언덕 옆에는 표적으로 사용된 컨테이너 박스를 비롯한 철골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켠에는 쓰레기 더미와 버려진 낙하산이 쌓여 있었습니다.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불발탄도 꽤 보였습니다. 주한미군이 했다는 환경오염 처리 조치. 대체 무엇을 처리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환경을 오염시킨 장본인인 미군이 환경오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미군을 국제범죄로 제소하겠다." - 전만규 위원장

"미군이 매향리 사격장을 다 오염시켜 놓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한다. 매우 괘씸한 일이다." - 마을 주민 이성호씨


a 금속 물질이 오랜 시간 녹슬어 토양에 스며든 모습.

금속 물질이 오랜 시간 녹슬어 토양에 스며든 모습. ⓒ 선대식

a 농섬 지표면에서 발견된 불발탄의 모습.

농섬 지표면에서 발견된 불발탄의 모습. ⓒ 선대식


환경조사 이틀 만에 환경오염 치유? 정부는 뭐하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도리어 주한미군이 쓰레기 더미를 남겨둔 채 조용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왔지요.

지난 7월 12일 국방부는 소수의 미향리 주민만을 불러, 환경오염 조사에 협조를 부탁한다며 설명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국방부는 환경오염 치유가 완료된 15군데 미군기지를 반환 받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는 매향리 사격장도 포함됐습니다.

"시료 채취 후 이틀 만에 반환이 됐다. 이건 요식 행위다. 말도 안 된다. 정부가 미군에 환경오염 문제를 당당하게 제기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미군이 오염 시킨 땅을 국민의 세금으로 치유해선 안 된다."

이날 만난 추영배(60) 대책위 고문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 5일 주민 1290명은 환경오염 치유와 관련한 국방부의 공식 입장을 바라는 서한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습니다.

주한미군이 SOFA 및 관련 협정을 충분히 고려해 환경오염을 치유했다는 농섬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요.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8월 발표한 농섬 토양 오염 조사에 따르면, 농섬의 해양 쪽 언덕 토양에서 4886mg/kg의 납 성분이 검출됐다고 합니다. 이는 토양오염 우려기준(100mg/kg)을 48배나 초과하는 수치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수십 년간의 폭격으로 땅 밑에는 많은 불발탄이 남아 있으며 그 오염도는 지상의 오염도보다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주한미군과 국방부, 환경운동연합, 그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누가 거짓말을 했던 농섬을 우리 국민의 '혈세'로 복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만규 위원장은 "50여 년간 오염된 환경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그 비용 역시 어머어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추영배 고문도 "지하 수십 미터의 포탄을 제거하는 데만도 700억 원이 들 거라는 미군 내부 보고서도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혈세 쏟아부으면 황금어장 농섬 돌아올까

a 농섬에 남아 있는 철골 구조물. 표적으로 사용된 차량, 컨테이너 등의 모습이다.

농섬에 남아 있는 철골 구조물. 표적으로 사용된 차량, 컨테이너 등의 모습이다. ⓒ 선대식

우리 일행은 오후 5시가 넘어 농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전만규 위원장은 펄밭을 걷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2, 제3의 매향리가 나와선 안 된다. 54년간의 미군 폭격으로 매향리 농섬은 불모지가 되고 주변 어장은 황폐화됐다. 농섬은 우리가 살면서 잠시 이용하는 것이다. 농섬을 다음 세대에 완벽하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그리고 환경 문제는 매향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폭격을 통해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인간이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은 땅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살기 위해 환경오염문제는 어서 빨리 해결돼야 한다."

매향리에서 만난 정연순(72) 할머니의 말은 지금의 매향리와 너무나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옛날 농섬 주변은 '황금어장'이라고 그랬어. 조개, 굴, 낙지가 맛있기로 전국에서 알아줬어. 지금은 조개가 다 사라졌어. 양식을 하려 해도 조개가 못 살아. 54년 동안 포탄이 파묻혀 섬이랑 바다가 오염됐으니, 당연하지."

평생 매향리에서만 살았다는 최병섭(90) 할아버지 역시 "환경오염으로 농섬에는 아무 것도 나지 않는 죽은 섬이 됐다"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한때 풍요로운 어촌이었던 매향리에서 이제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주한미군이 쓰레기를 그대로 둔 채 떠나도록 사실상 묵인한 국방부가 국민들의 혈세를 동원해 농섬을 치유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다시 고기를 낚지 못할 겁니다.

한때는 황금어장으로 불리웠던 농섬, 그 농섬이 지금 54년 만에 포탄더미가 되어 우리 앞에 돌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클릭! 서명운동] 반환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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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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