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끄는 것은 머리가 아닌 '열정'이다"

아이들과 '꿈의 수업'을 했습니다

등록 2006.09.30 14:08수정 2006.09.3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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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꿈의 수업-나는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작가가 되고 싶어요.

꿈의 수업-나는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작가가 되고 싶어요. ⓒ 안준철

'꿈의 수업'을 했습니다. '봄 수업'이나 '가을 수업' 등 계절수업은 여러 차례 해봤지만 '꿈의 수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꿈의 수업이라고 별다른 것은 아닙니다. 마침 지금 배우는 단원의 제목이 '당신의 미래 설계(Shaping Your Future)'여서 교과서 본문에 나오는 단어나 문장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격과 그 성격에 알맞은 직업을 각각 다섯 개씩 영어로 써보게 했을 뿐입니다.

다만 평소 노트 정리를 하는 것과는 달리 제가 나누어준 하얀 종이 위에 예쁜 그림이나 낙서도 곁들여 즐겁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모처럼 자기 자신과 꿈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해준 것이지요.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딱딱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조금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딱딱하고 재미없는 수업을 당연시 해온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몰래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다가 혼나기 일쑤인 아이들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반성의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먼저 두 아이가 작성한 '꿈의 수업' 내용을 소개합니다.

♥ 1학년 3반 23번 전희진

'I am curious (나는 호기심이 많고), imaginative(상상력이 풍부하고), expressive(표현력이 있고), persuasive (설득력이 있고), understanding(이해심이 있다)

I hope to be a writer(나는 작가), musician(음악가), teacher(교사), social worker(사회사업가), painter(화가), singer(가수가 되고 싶다)

About My Dream(나의 꿈에 대하여)


나를 이끄는 것은 머리가 아닌 '열정'이다. 나의 꿈은 작가다. 주위 사람들은 항상 걱정을 한다. 어려운 일이라고. 전망이 흐리다고. 하지만 나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나도 항상 느낀다. 내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꼭 이루고 싶다. 열정으로 꿈을 이루고 싶다. 나는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a 댄싱동아리 '유토피아'-방과후 교육활동 시간에 춤 기술을 익히고 있다.

댄싱동아리 '유토피아'-방과후 교육활동 시간에 춤 기술을 익히고 있다. ⓒ 안준철

♥ 1학년 3반 5번 김슬기

'I am hardworking(나는 부지런하고), simple(단순하고), curious(호기심이 많고), imaginative(상상력이 풍부하고), outgoing(사교적)이다.

I hope to be a dancer(댄서), cook(요리사), sports player(운동선수), designer(디자이너), teacher(교사)가 되고 싶다.


나의 꿈 이야기

나는 부지런하고(슬기생각) 단순하고, 호기심이 무지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사교성이 무지 좋아요. 그래서 저는 스포츠댄스 강사가 되고 싶어요. 사교성이 좋은 편이라 파트너랑 잘 친해지고, 호기심이 많아 스텝을 꼭 알아보려고 하고, 단순해서 나쁜 일도 쉽게 잊어버리고, 그래서 꼭 스포츠댄스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실력도 쌓아서 꼭 다음에 좋은 선생님이 될 것입니다.'


a 스포츠댄스 강사가 꿈인 아이는 누굴까?

스포츠댄스 강사가 꿈인 아이는 누굴까? ⓒ 안준철

두 아이의 글을 읽는 동안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차고 예쁜 꿈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참 대견스럽기만 했습니다. 작가가 꿈인 희진이는 작가 지망생답게 문예반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고, 스포츠댄스 강사가 되는 것이 꿈인 슬기는 역시 스포츠댄스 동아리에서 열정적으로 춤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에는 아직 꿈이 없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없는데요" 하고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꿈을 갖지 못한 것은 어릴 적부터 "네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는 어른들이 주변에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최고가 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인 양 잘못 말해준 탓도 있겠지요.

a 그룹사운드 '레인보우'

그룹사운드 '레인보우' ⓒ 안준철

생각해보면 최고 숭배자들만큼 어리석은 사람들도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들 중에 불과 몇 사람에게만 성공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고 나머지는 실패자가 되게 하는 그런 식이니 말입니다.

개인이 처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 개인이 선택한 고유한 가치와 다양한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과도한 경쟁도 그런 착각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은 고만고만한 세 아이가 쓴 글입니다.

'나의 성격은 말이 적고,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운 내성적인 성격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꿈꾸는 직업은 택시 운전사다. 이런 성격으로 과연 택시운전사를 할 수 있을까? 집에서도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택시 운전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

'나는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많이 있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멋있게 꾸며주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도 싶고, 또 상상력을 선사하는 판타지 소설가가 되고 싶고, 컴퓨터 프로그래머, 기계공도 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중에서 하나 골라야겠는데 약간 두려움이 생긴다. 만약에 잘못 골랐다가는 큰 일 나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금 더 생각해본 다음에 확실하게 골라야 할 것 같다.'

a 그룹사운드 연습실에서

그룹사운드 연습실에서 ⓒ 안준철

'내 꿈은 무엇인가? 난 불안하다. 커서 뭐가 될까? 내 꿈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릴 땐 정말 많았다. 경찰관, 판사 등등. 커갈수록 꿈이 사라진다. 내가 잘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꿈이 생겨도 그 꿈은 먼 하늘이다. 그 꿈에 다가가기 전에 주저앉고 만다. 이렇게 대충 살아도 되는 건가. 점점 철이 드는 것 같다. 언제나 불안하고 울적하고 가을하늘을 바라볼 때면 모든 생각이 멍해진다. 가을하늘은 참 맑다.'


꿈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소박하거나, 아직은 세상을 향한 날갯짓이 불안하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아이들. 그들을 긍정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줌으로써 자기 삶을 가꾸고 사랑할 수 있도록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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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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