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하면서 친미·반북 할 수 있나?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의 논리적 모순

등록 2006.10.02 13:01수정 2006.10.0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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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반일운동단체들은 다른 분야 운동가들에 비해 비교적 열정적이고 애국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반일운동단체들에서는 흥미로운 논리적 모순이 발견된다. 그 모순이란 바로 ‘반일과 친미·반북의 공존’이다. 종군위안부·교과서·야스쿠니 관련 반일단체 등을 제외한 일부 보수적 반일운동단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예컨대, 반일운동단체 회원들이 집단적 혹은 개별적으로 반북 캠페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핵문제나 김정일 정권에 대한 태도에서 이 단체들은 명확하게 반북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명확히 친미를 표방하지는 않더라도, 반북을 표명함으로써 사실상 친미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단체들은 ‘명확한 반일’에 ‘암묵적인 친미’와 ‘명확한 반북’의 태도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반일과 친미·반북의 공존을 어떻게 논리적 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친미와 반북의 공존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다. 양자의 공존은 논리적 정합(整合)의 범주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북한과 미국은 상호 대립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일-친미 혹은 반일-반북은 분명 논리적 모순의 범주에 속한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반일과 친미·반북을 동시에 견지하고 있는 일부 보수적 반일운동가들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미국의 원폭 투하에 의해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근거로 일본과 미국을 상호 별개로 파악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드러내는 것이다.

원폭 투하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고 일본을 자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삼았다. 아시아의 일본은 유럽의 영국 그리고 중동의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역내 대리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일본은 ‘아시아 속의 미국’(USA In Asia)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다.

그리고 9월 24~27일에 실린 ‘제1공화국 당시 한·일 배상 문제’ 시리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대일 배상 청구를 방해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한국이 전승국의 지위를 잃고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에서 배제된 것은 바로 미국·일본 때문이었다.

또한 그 무엇보다도 미·일 양국은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침해한 나라들이다. 1945년 이전에는 일본이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침해했고, 1945년 이후에는 미국이 일본의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므로 원폭 투하 사실에 깊이 사로잡혀 미·일 양국을 상호 별개로 파악하는 것은 분명 인식상의 오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원폭 투하는 미·일 사이를 갈라놓은 게 아니었다. 원폭이라는 마약을 흡입한 일본은 그 다음부터 미국을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미국의 핵우산이 동북아를 지배하는 한 그 마약은 계속해서 약효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원폭은 마약 소비자(일본)와 마약 밀매상(미국)을 붙여 주는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과 미국은 사실상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서는 반(反)의 태도를 보이고 미국에 대해서는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친(親)의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분명 논리적 모순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도발적 행동을 가할 때마다 일본대사관 같은 곳에서 열렬히 반일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북·미 간의 핵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반핵·반김의 태도를 보임으로써 친미적 성향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논리적 모순이 되는 것이다.

일부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이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단체들이 유리한 운동 여건에도 불구하고 크게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를 웅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재정립되지 않는 한 반일운동은 언제든지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은 운동 국면을 제대로 주도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 대중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의 운동 역량이 몇 십 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논리적 모순 때문이다. 내부 모순을 안고 있는 조직은 내부적 역량을 강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새로운 인적·물적 자원을 끌어들이기도 힘들 것이다.

이 같은 모순이 벌써 수십 년이 넘게 존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적 운동단체들이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이 단체들이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성에 젖은 상태에서 그날그날의 반일운동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의 활로는 무엇인가? 여기서, 보수를 지킬 것인가 진보를 취할 것인가는 문제의 관건이 아니다. 어느 시대건 간에 보수와 진보는 공존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단체들이 보수를 고수하느냐 진보로 전향하느냐 하는 것은 이 글의 논의와 아무 관계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수를 하든지 진보를 하든지 간에 내부적 모순만큼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모순이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상호 공존해서는 안 되는 것들’ 즉 반일과 친미·반북의 상호 공존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려면, 이 단체들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그중 한 가지는 반일이라는 기조에 맞게 반미 노선을 지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일-반미 세트를 취하는 것이다. 반미라고 하여 미국을 원수처럼 여기라는 것은 아니다. 불합리한 한미관계를 합리적인 한미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반미일 것이다.

만약 반일-반미 세트를 선택한다면, 반일운동단체들은 지금처럼 반일운동에 열성을 보이되 반핵·반김 운동 등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핵문제가 걱정된다면, 북·미 양국이 타협을 이룸으로써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운동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 단체들이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반일이라는 기조를 버리고 친미·반북 노선에 일치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친일-친미 세트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드러내놓고 친일 노선을 표방할 수는 없으므로, 친미주의자들이 취하는 방법처럼 소극적·암묵적 방법으로 친일을 견지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논리적 정합성 때문에 보수 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반일운동단체들이 보수적 태도를 취하든 진보적 태도를 취하든 간에 그것은 모순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간의 적절한 대결은 역사 발전에도 긍정적 기능을 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진보 어느 쪽에 속하든 간에, 최소한 논리적 모순만큼은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과 미국이 같은 편인데, 반일을 하면서 친미를 한다는 것은 분명 논리적 모순일 것이다. 그리고 일본과 북한이 서로 원수지간인데, 일본도 반대하고 북한도 반대한다면 이는 ‘적의 적은 동지’라는 승부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태도가 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적 반일운동단체들이 진정으로 역사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반일과 친미·반북의 공존이라는 모순을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보수적 반일운동가의 열정과 애국심에 걸 맞는 성과를 내려면, 일단 내적 모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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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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