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에서 보낸 사흘 (3)

금강산 기행

등록 2006.10.05 14:29수정 2006.10.1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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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전(고성)항의 아침

장전(고성)항의 아침 ⓒ 박도


호수처럼 잔잔한 장전항 포구

둘째 날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며 즐겨 부르는 노래 제1위가 ‘눈물 젖은 두만강’이요, 제2위가 ‘그리운 금강산’이라고 했다. 이 두 노래는 모두 북녘 산하를 노래한 것으로,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들이 향수를 달래거나, 통일을 비원하는 이들이 갈 수 없는 내 조국 산하를 그리는 소망으로 즐겨 불렀기에 상위에 올랐던 것 같다.

1992년, 한중수교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 두만강을 찾아 거기서나마 내 조국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금강산은 고작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나 깨나 그리던 금강산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언젠가는 외금강 해금강만 아니라, 장안사 명경대 만폭동 등 내금강도 속속들이 완상할 날이 오리라.

a 해금강호텔에서 바라본 일출봉의 아침

해금강호텔에서 바라본 일출봉의 아침 ⓒ 박도


05:00, 잠이 깼다. 커튼을 젖히자 눈앞에 장전항이 펼쳐지고 외금강 산들이 새배 빛을 받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으로만 듣던 비로봉 바리봉 일출봉 천불산 촛대바위들이 한 걸음씩 다가서며 인사하는 듯했다. 나는 그 봉우리들을 향해 경배했다.

장전(고성)항 포구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포구의 지형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모양이라서 ‘장전(長箭)’이라고 이름 지어졌다는데, 지난날에는 고래잡이배들로 붐볐다고 한다. 천연적으로도 옴폭 파인 포구에다가 방파제로 바다를 막아서 더욱 안온하고 잔잔해 보였다.

내 보기에는 이 장전항은 지형적으로 이탈리아 나폴리나 소렌토보다 훨씬 더 좋은 천혜의 포구로 개발만 잘 하면 세계적인 미항(美港)에, 언저리 배경이 아름다운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발돋움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a 구룡연 앙지다리에서 바라본 계곡

구룡연 앙지다리에서 바라본 계곡 ⓒ 박도


눈이 시리도록 산과 바다를 바라보다가 일기예보나 들을까 하여 객실의 텔레비전을 켰다. 여기가 관광특구인 탓인지 서울의 공중파 방송을 모두 볼 수 있었다.

KBS 제1 TV 채널을 맞추자 방송시작을 알리는 듯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북녘 땅에서 듣는 애국가는 그 느낌이 달랐다. 더욱 세상 참 많이 변한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북녘 땅에서 공공연히 애국가를 듣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이렇게 달라진 세상을 못 보고, 두고 온 고향이 그리워 눈물짓다가 끝내 저 세상에 가신 실향민들이 무척 안쓰럽다.


06:00, 선상 호텔 갑판에서 아침밥을 먹고 카메라를 들고서 산책길에 나섰다. 일출봉 상봉은 구름에 싸여 전모를 볼 수 없었고, 장전항 뒷산 바리봉과 천불산 촛대바위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멀리 가물가물 연무에 싸인 고성읍을 바라보면서 오늘 여정에 따라 온정리 행 셔틀버스에 올랐다.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a 1950. 8. 18. 나이 어른 북한 소년병 포로(왼쪽), 가운데는 통역비서, 오른쪽은 유엔군 포로심문관

1950. 8. 18. 나이 어른 북한 소년병 포로(왼쪽), 가운데는 통역비서, 오른쪽은 유엔군 포로심문관 ⓒ NARA

온정리로 가는 길섶 울타리 너머로 띄엄띄엄 북녘 주민들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오갔다. 아직도 소달구지가 중요 운반수단으로, 그 달구지를 보자 내 소년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온정리로 오가는 길 중간중간 초소의 북녘병사들도 10대 후반의 청소년들로 보였다. 그들은 수업시간에 만난 제자들 모습으로 무척 앳돼 보였다.

안내를 맡은 조장은 북한의 학제는 유치원 1년 인민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 과정으로 여기까지는 의무교육인데, 대학진학률은 20퍼센트 미만이라 고등중학교를 마친 청소년들이 대부분 군에 입대해서 나이가 어리다고 했다.

내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서 찾은 한국전쟁 사진에서도 10대 어린 소년 병들이 포로로 잡혀 심문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a 만물상 계곡의 7층암

만물상 계곡의 7층암 ⓒ 박도

어렸을 때 어른들 말은 어떤 인민군 병사는 어찌나 어린지 소련제 소총을 어깨에 메면 땅에 닿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직도 젖내가 날 듯한 그들이 초소를 지키는 것을 보니 어딘지 모르게 연민의 정이 갔다.

이동 중에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초소나 군인 촬영은 절대 불가하기에 마음의 눈으로만 담았다.

둘째 날 여정은 오전이 구룡연 코스이고, 오후는 선택 코스로 삼일포 또는 온천 쇼핑인데, 우리 내외는 삼일포 코스를 택했다.

온정리의 온정각은 외금강 해금강 관광의 출발점이자 중심지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온정리 마당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금강산의 멧부리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수정봉, 세존봉, 관음봉, 채화봉, 집선봉, 일출봉….

외금강을 찾은 모든 관광객은 아침마다 이곳 온정각 마당에 모여 08:10분에 각 코스별로 출발하였다.

우리를 태운 셔틀버스가 막 온정각 마당에 닿자 스피커에서는 귀에 익은 윤극영의 '반달'이 울려 퍼졌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북녘 땅 온정각 마당에서 듣는 반달은 어딘지 더 구성지고 가슴을 옥죄면서 내 마음을 울렸다.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윤극영이 그 노래를 만들 때는 그 ‘샛별’은 조국해방이었을 테지만, 이제는 조국통일이 아니겠는가. 온정각 마당에 주저앉아 한바탕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우리는 왜 휴전선의 저 철조망을 걷어내지 못할까?

a 온정각 마당에서 바라본 외금강 멧부리

온정각 마당에서 바라본 외금강 멧부리 ⓒ 박도


a 구룡연 계곡의 옥류, 어찌나 물이 맑은지 쪽을 풀어놓은 듯 파랗다

구룡연 계곡의 옥류, 어찌나 물이 맑은지 쪽을 풀어놓은 듯 파랗다 ⓒ 박도


a 풍악산의 전령사인 단풍이 물들고 있다

풍악산의 전령사인 단풍이 물들고 있다 ⓒ 박도


a 네 신선이 절경에 취해 사흘을 머물렀다는 삼일포

네 신선이 절경에 취해 사흘을 머물렀다는 삼일포 ⓒ 박도


a 만물상 계곡의 기암괴석들

만물상 계곡의 기암괴석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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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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