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에서 보낸 사흘 (4)

금강산 기행

등록 2006.10.06 14:42수정 2006.10.0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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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구룡연 옥류동 무대바위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구룡연 옥류동 무대바위 ⓒ 박도

미인송(금강송) 군락지

둘째날 오전 8시 10분, 온정각 마당에서 현대아산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마침내 외금강 구룡연 탐승 길에 올랐다. 도착 후 금강산의 외모만 본 셈인데 이제는 금강산의 진수인 속살의 비경을 완상하리라. 금강의 숲도 보고 나무도 볼 참이다.


a 미인(금강)송

미인(금강)송 ⓒ 박도

온정각을 떠난 버스는 곧 소나무 숲길을 헤집고 올랐다. 여기부터 신계사까지는 6킬로미터나 되는 미인송 군락지로, ‘창터 솔밭’이라고 했다. 길잡이(조장)는 옛날에 곡식을 갈무리하던 창고가 이곳에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하늘을 향하여 쭉쭉 곧게 뻗은 품이 예사 소나무와는 그 기품이 달랐다. 수령이 200년이 넘으며 높이가 20~30미터는 된다고 했다. 여기의 소나무는 ‘미인송(美人松)’ 외에 ‘금강송(金剛松)’, ‘홍송(紅松)’으로도 불린다는데, 줄기의 껍질이 붉으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하나같이 용마루나 들보로 쓰일 동량(棟樑)감이었다. 이런 나무를 베다가 대궐(나라)을 지어야 하는데, 서까래감도 안 될 재목들이 대궐의 용마루가 되고 들보가 됐다. 그러니 백성은 안중에 없고, 처자식을 동원하여 제 배 채우기에 바쁘거나, 천재지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채를 휘두르거나, 허울 좋은 해외연수라는 이름으로 국고를 탕진하는 수준 이하의 재목들로 몇 차례나 나라가 기우뚱거렸다.

우리 백성들이 두 팔을 걷고 성능 좋은 불도저로 낡은 집을, 휴전선 철조망을 동해바다로 밀어내고 그 허허벌판에다 이곳 금강송을 베어다가 천년대궐을 지을 수는 없을까? 달리는 차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이런저런 망상을 하는 사이, 셔틀버스는 신계사를 지나 어느새 구룡연 들머리 주차장에 멎었다.

a 구룡계곡 들머리 목란관

구룡계곡 들머리 목란관 ⓒ 박도

쾌적한 자연을 즐기자면 대가는 치러야


아직 단풍철이 아니기에 등산객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난 일부러 꽁무니를 따랐다. 조장은 무리한 산행으로 탈이 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어디까지나 자율등산으로 등산객이 머무는 곳이 정상”이라고 명쾌하게 얘기했다. 맨 뒤에서 사방과 하늘을 쳐다보며 쉬엄쉬엄 올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는 금강의 속살을 마음껏 즐기면서 마음의 눈과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신계사 앞을 흐른다하여 ‘신계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맑은 개울을 건너자 휴게소 ‘목란관’이 나왔다. 휴게소 쉼터에서 북녘 아가씨가 음료수와 사탕을 늘어놓고 손님을 불렀다. 그 아가씨는 “오가피 한 봉지 쭉 들이키면 목도 마르지 않고, 원기가 돋아 구룡폭포까지 다녀올 수 있다”고 말했다. 동포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한 봉지 따서 그 자리에 마시고 3달러를 주었다.


거기서부터는 옥류동으로 물빛이 맑다 못해 쪽빛이었다. 마치 상류 어디엔가 쪽을 짓이겨 자루에 담아 개울에 던져둔 듯했다. 이태 전 아내가 우리 집 뒤꼍에 쪽을 심은 뒤 가을에 그 쪽을 베어 천연염색을 지켜본 적이 있다. 금강의 계곡 물빛이 그와 흡사했다.

a 구룡계곡의 물빛

구룡계곡의 물빛 ⓒ 박도

a 쪽을 우려낸 쪽 물감

쪽을 우려낸 쪽 물감 ⓒ 박도

앞서 가는 등산객이 구룡연 계곡물이 맑음에 경탄하면서 “개울물에 발이라도 담가봤으면…”하고 소망을 밝혔다. 그러나 여기서는 발은커녕 손도 닦을 수 없다. 내가 삼녹수에서 북측 관리인에게 개울물에 입을 대고 마셔도 되느냐고 묻자 관리인은 물병을 주면 자기가 담아주겠다고 했다.

이곳 등산길의 화장실(위생실)마저도 수질오염을 막고자 수세식이 아니라 일일이 사람들이 수거하는 재래식으로 지어졌고 사용료도 무척 비쌌다(작은 것 1달러, 큰 것 2달러). 금강산 물이 맑은 것은 북녘사람들이 보호했기 때문이다.

남녘 지리산 계곡물도, 설악산 시냇물도 금강산 못지않게 맑다. 그런데 남녘사람들은 그 맑은 물을 흐렸다. 어느 해 지리산 뱀사골에 갔더니 계곡이 온통 풀장이었다. 더욱이 사람들은 거기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 남녘에서는 사람들이 이제 개울물을 그대로 마실 수 없게 오염시켰다. 맑고 쾌적한 자연을 즐기자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하나 보다.

a 금강문

금강문 ⓒ 박도


a 옥류담

옥류담 ⓒ 박도

옥류동 무대바위

a 비봉폭포

비봉폭포 ⓒ 박도

구룡연 계곡 하늘에는 세존봉, 관음연봉 등 기암절벽들이 전후좌우를 가로막는데 모퉁이를 지나면 새로운 기암괴석들이 다시 반겼다.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는 삼녹수(蔘鹿水)를 지나자 만경다리에 이어 곧 자연 돌문인 금강문이 나왔다.

거기서 조금 오르자 선녀들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옥류동 무대(舞臺)바위가 나왔다. 그 바위에서 바라본 세존봉 줄기 천화대(天花臺)가 장관이었다. 천화대는 매화, 목련 장미 백합뿐 아니라 지상에 없는 천만 가지 꽃 모양이 다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무대바위에서 엎어지면 무릎 닿을 곳이 옥류담(玉流潭)이요, 구슬을 잇달아 꿰어놓은 듯하다는 연주담(連珠潭)이었다. 무대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오르자 봉황이 춤추듯 하다는 무봉(舞鳳)폭포가 나오고 곧 험준한 바위벽에서 폭포가 쏟아졌다.

금강산 4대 폭포의 하나인 비봉(飛鳳)폭포였다. 봉황이 긴 꼬리를 휘저으며 날아가는 모양이라 해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폭포의 길이가 166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서 조금 더 오르자 두 계곡이 만나는 곳의 물줄기가 실 같다. 은실처럼 곱게 흐른다 하여 ‘은사류(銀絲流)’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거기부터는 옥류동이 아닌 구룡동이라고 한다. 금강 산신에게 홀려 두리번거리며 산길을 걷다가 돌계단 10여 개를 오르자 관폭정이 나오고 마침내 구룡폭포가 펼쳐졌다.

a 관폭정

관폭정 ⓒ 박도

구룡폭포

신라 최치원은 이 구룡폭포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고 한다.

천 길 흰 비단이 드리운 듯하고
만 섬 진주알이 쏟아지는 듯하여라
(千丈白練 萬斛眞珠)


a 구룡폭포

구룡폭포 ⓒ 박도

또 방랑시인 김삿갓은 “폭포수는 은으로 만든 절구공이가 되어 절벽을 연신 내리찍고,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되어 청산을 재면서 간다(水作銀杆春絶壁 雲爲玉尺度靑山)”고 노래하였다고 한다.

천하 절경 구룡폭포 앞에서 둔한 서생이 무슨 말을 늘어놓겠는가. 그저 말문이 막힌 채 감복하고 찬탄할 수밖에.

이 구룡폭포는 설악산 장수대의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아울러 우리나라 3대 폭포로 불린다. 절벽의 높이가 100여 미터에 달하고 폭포는 높이 74미터, 폭 4미터다. 그곳에서는 새하얀 비단 폭을 드리운 듯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엄한 대자연의 절경 앞에 말없이 두 손 모아 합장배례하고는 발길을 되돌렸다.

조금 내려오자 상팔담과 연결되는 연담교가 있었지만 그 다리를 건너기에는 다리가 팍팍했다. 오후 여정뿐 아니라 내일 만물상 여정도 있기에 난코스라는 상팔담은 기약 없이 다음으로 미루었다. 미련을 두어야 다음에 또 오게 될 테지.

그동안 살아보니까 조금 부족할 때 만족하면서 그만 두는 게 뒤탈이 없었다. 다른 이는 굶주리는데 내 임기라고 우기다가, 심지어는 임기를 강제로 연장하면서 눌러앉다가 제 명에 못살고 저승에 간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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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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