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루에서 바라본 그 유명한 부석사의 앞마당.이희동
다시 발길을 돌려 삼층석탑을 지나 호젓한 오솔길에 올라선다.
보통 다른 사찰에 들르면 시간에 쫓기어 본전 뒷산 중턱에 있는 전각들은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지만 부석사는 다르다. 그 아름다운 산길에 묻은 개인적인 추억도 추억이거니와 무량수전까지만 보고 부석사를 내려가기에는 못내 아쉬움이 크기 때문에 난 꼭 이곳까지 오른다.
산길의 오른쪽 끝에는 조사당이 있었다. 그곳에는 부석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의상대사가 모셔져 있었으며, 전각 앞 흉물스러운 철장 속에는 의상대사의 지팡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선비화가 피어 있었다. 그 잎을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아늑한 산사에 무식하니 서 있는 철장에 기분 좋을 리 없다.
어차피 그 시작부터 기복을 흡수한 불교라면 차라리 그 철장을 없애고 전설을 이어나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선비화가 수난을 당하겠지만 전설을 전설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성불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몫인 터.
산길 끝의 자인당, 웅진전을 둘러본 뒤 산에서 내려온다. 다른 일행들은 무량수전까지만 보고 난 뒤 부석사의 모든 것을 본 양, 내게 빨리 서둘러 내려오라고 재촉 전화를 해댄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구구단 외우듯이 외운 우리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추슬러 부석사를 나온다. 안양루를 지나 범종루를 지나 다시 들어서는 그 길. 하지만 이젠 속세로 향한 길이다. 비록 같은 길일지라도 그 방향에 따라 속세의 길과 극락의 길은 엄연히 다르다. 극락의 길에서는 모든 걸 훌훌 털어 버리지만, 속세의 길에서는 다가오는 현실에 무언가 채우기에 급급하다고나 할까.
결국 나는 또다시 미련만을 한껏 안은 채 부석사를 나선다. 꼭 다시 찾아오리라는 못난 기약과 함께.
덧붙이는 글 | 유포터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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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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