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구미' 갯벌, 고향 어머니를 닮다

[섬이야기 48] 전남 신안군 신의도

등록 2006.10.07 15:59수정 2006.10.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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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면 갯벌은 더욱 분주해진다. 제수용감은 물론 고향을 찾는 자식들이나 싱싱한 활어나 백합, 고막, 바지락 등 패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갯 일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모처럼 보는 자식들, 손자들을 위해 갯벌을 찾는 마을 주민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전남 신안군 신의면 원성리 마을 뒤 고개 너머 기동리로 가는 길에 '바람기미'라는 작고 아담한 갯벌이 있다. 물이 빠진 이른 아침부터 바람기미에는 굴을 까는 네 명의 할머니와 갯벌에서 낙지를 잡는 젊은 아줌마가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물이 빠지지 않는 갯가 그물에서도 '물'을 보고 있는 아저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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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명절에 더욱 바쁜 넉넉한 갯벌

심심했던지 굴을 까는 할머니들 둘은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조새질을 한다. 한발을 내디딜 때마다 무릎까지 빠지는 그 뒤 갯벌에서는 60을 갓 넘긴 듯한 젊은 할머니가 굴을 까고 있다.

할머니는 쪼그려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드신 할머니들은 자갈과 모래가 섞인 혼합갯벌에서 작업을 한다. 장화를 신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신에 알이 잘다. 굵은 알을 원하면 장화를 싣고 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노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할머니는 왼손에 면장갑을 끼고, 장갑을 끼지 않는 오른손으로 조새를 잡고 있다. 굴을 까는 조새는 방아쇠, 갈구리, 몸통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른손으로 굴의 몸통을 쥐고 돌에 붙은 굴 껍질을 쫀다.


껍질을 들어내면 작고 토실한 알갱이들이 얼굴을 내민다. 짭쪼름한 저놈을 보기만 해도 입안에 갯내음이 가득하다. 능숙하게 갈구리로 굴을 꺼내 연두색 바구니에 담는다. 아침 일찍 나와서 시작한 작업인데 바구니 바닥을 채우고 이제 좀 묵직해졌다.

“염전일 언제하고 나왔어요?”
“아들한테 맡기고 왔어요.”
“벌어서 뭐하려고(나왔어?).”



예쁜 햇빛가리개 모자를 쓰고 양손에 면장갑을 낀 할머니가 옆으로 돌아서며 말을 건넨다. 장화를 싣고 어깨에 작은 배낭을 멨다. 손에는 작업용 토시를 끼었다. 두 할머니 모두 몸뻬 바지를 입으셨다.

노란 수건을 쓴 할머니 슬하에는 자식이 5남매다. 염전 두 판을 운영하다 한 판은 새우양식장으로 바꾸었다. 영감님이 직접 염전 일을 하였지만, 이제는 작은아들이 물려받아 운영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며칠 뒤 들여 닥칠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갯벌에 나왔다.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쓴 할머니는 노란 수건 할머니가 알부자라는 것을 잘 아는 듯했다. 몇 푼 주고 사먹지, 염전 일도 고단할 텐데 나왔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어디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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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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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할머니는 자식 다섯을 결혼시키고 집도 사주는데, 모두 5~6천만원씩 들었다고 한다. 모두 소금밭에서 나온 돈이다. 작년에 마지막으로 소금밭에서 번 돈으로 막내를 결혼시켰다. 이제부터 벌어서 영감과 할멈이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줄 것도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마도 자식들이 큰 속을 썩이지 않고, 그대로 먹고 살만한 모양이다. 광주에서 왔다는 말에 그곳에 사는 자식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넉넉함과 편안함이 가득하다. 보름달처럼. 함께 동무하며 조새질을 하려는 할머니가 손놀림이 바쁘다.

a 낙지구멍 '부럿'에 손가락을 넣고, 소식을 기다린다.

낙지구멍 '부럿'에 손가락을 넣고, 소식을 기다린다. ⓒ 김준

두 할머니 사이로 젊은 아주머니가 헤엄치듯 갯벌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한동안 얼굴이 갯벌에 닿을 듯 팔을 집어넣고 있다. 낙지가 더 깊이 들어간 모양이다. 다시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었다.

“할머니 저 아줌마 뭐하시는 거에요?”
“낙지 잡아. 선수여!”


낙지는 신안, 무안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낙지주낙'을 비롯하여 홰낙지, 손(팔)낙지, 묻음낙지, 통발낙지, 가래낙지 등 잡는 방법에 이름을 붙인다. 이중 손낙지와 가래낙지, 묻음 낙지는 낙지구멍을 찾아 잡는다. 낙지구멍을 볼 줄 아는 눈과 재빠른 손기술이 있어야 한다.

낙지가 뻘 속에 숨을 쉬면서 뱉어낸 물이 구멍을 통해 뽀얗게 솟아오르는데, 이것이 '부럿'이라는 낙지구멍이다. 낙지 구멍은 두 개의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구멍의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갯벌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잡는 낙지는 '손낙지'였다.

a 눈치 빠른 낙지 구멍속으로 들어가자, 엉덩이에 힘을 주고 팔뚝을 갯벌에 쑤욱 집어 넣어 동물적인 감각으로 낙지를 찾아낸다.

눈치 빠른 낙지 구멍속으로 들어가자, 엉덩이에 힘을 주고 팔뚝을 갯벌에 쑤욱 집어 넣어 동물적인 감각으로 낙지를 찾아낸다. ⓒ 김준

a 40여 분 동안 네 마리의 낙지를 잡았다.

40여 분 동안 네 마리의 낙지를 잡았다. ⓒ 김준

멀리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낙지구멍을 발견했는지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을 가만히 뻘 속에 집어넣는다. 무려 5~6분을 낙지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낙지가 발을 내밀며 손가락을 자극하며 올라오면 재빨리 손을 집어넣어 잡아 올린다. 말이 쉽지 이렇게 해서 잡는 낙지는 그리 많지 않다.

구멍 찾기와 기다림, 그리고 한바탕 구멍 쑤심질이 끝났다. 아줌마가 들어올린 것은 어른 손 한 뼘쯤 되는 낙지발이었다. 아직도 꿈틀거린다. 제법 컸을 낙지는 다리를 끊고 뻘 속 깊이 숨어 버린 모양이다.

한동안 구멍을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함지박을 끌고 장소를 옮긴다. 허리에 질끈 묵은 함지박 안에는 낙지를 담는 그릇이 실려 있다. 40여 분을 지켜보는 동안 네 마리의 낙지를 잡아 그릇에 집어넣었다.

먹을 것이 없던 보릿고개에 갯것을 내주던 갯벌은 아이가 자라자 돈보다 귀한 소금을 보냈다. 어머니는 그 덕에 자식을 키우고 가르쳐 결혼을 시켰다.

며칠 후면 다 큰 자식들은 자식을 낳아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갯벌을 찾을 것이다. 그 부모는 오랜만에 만난 자식에게 갯벌에서 캐낸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못다 준 사랑을 가득 담아 뭍으로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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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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