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86회

그 곳

등록 2006.10.10 17:06수정 2006.10.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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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새벽녘에야 잠깐 얕은 잠이 든 남현수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멍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날 바비큐와 함께 서너 잔을 먹은 와인이 흥분제가 되어 밤에 잠을 더욱 못 이루게 한 탓도 있었지만, 역시 시차적응에 실패해 낮에 잠을 자 둔 것이 남현수의 큰 실책이었다. 호텔 앞에서는 김건욱이 운전사 무와이와 함께 일찌감치 남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푹 쉬셨습니까?”


그나마 전날의 불쾌한 기분이 약간 가신 남현수는 피곤한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지은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힘든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이 차는 나이로비의 서쪽 지대를 향해 5시간 정도를 달릴 겁니다.”

무와이가 운전하는 사파리 차량이 굉음을 내며 출발하자 남현수는 멍한 상태에서도 5시간을 달려야 한다는 말에 당혹스러워 했다. 차는 러시아워가 한창인 나이로비 시내를 힘겹게 빠져나가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반나절, 푸른 수풀이 우거진 길이 점점 나무가 듬성듬성한 지대로 바뀌는가 싶더니 차는 황무지와도 같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기름을 넣기 위해 잠시 머문 마을에서 미리 준비한 빵과 음료로 점심을 때운 뒤에 차는 또 다시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김건욱이 애초 말한 5시간을 훌쩍 넘긴데다가 길도 점점 험해지기 시작하자 남현수는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가야 하는 겁니까? 마르둑은 하필이면 왜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한 겁니까?”


남현수는 마침내 불만을 터트리며 김건욱에게 짜증을 내었다.

“저도 모릅니다. 그저 마르둑씨가 원하는 데로 남박사님을 모셔다 드릴 뿐이지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전에 뭔가 있는 것처럼 국익을 운운한 것은 뭡니까? 대체 아는 게 뭐요?”

상대방의 자존심을 긁는 남현수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김건욱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검건욱은 남현수의 항의가 거듭되자 숫제 입을 다물어 버렸고 남현수는 점점 더 불안에 휩싸여 갔다. 지평선이 보이는 황무지에서 차는 멈추어 섰고 김건욱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무엇인가를 눌러 확인해 보더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저희가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군요. 남박사님 곧 마르둑씨가 올 겁니다.”

남현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누군가 오고 있다는 표식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보면 보이지 않을 겁니다.”

김건욱은 빙긋이 웃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남현수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밝은 빛 하나가 점점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빛은 남현수의 눈앞에서 놀라운 속도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어!”

남현수는 저도 모르게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며 점점 뒤로 물러섰고 밝은 빛은 순식간에 그 실체를 드러내며 남현수의 눈앞에 우뚝 실체를 드러내었다. 그것은 익히 TV에서 낯이 익은 마르둑의 우주선이었다.

“마르둑님 기다렸습니다. 남박사님을 모셔왔습니다.”

김건욱의 말과 함께 우주선에서는 작은 상자와도 같은 착륙선이 튀어나와 기름에 미끄러지듯이 허공을 가르고 순식간에 남현수의 앞에 먼지 한 점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내려앉았다. 남현수는 순간 놀라 도움을 청하는 심정으로 김건욱과 무와이를 돌아보았으나 그 둘은 마치 그런 광경을 익히 보아 왔다는 것처럼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착륙선의 앞부분이 스윽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거기에서는 마르둑이 웃는 표정으로 남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박사님이 여기까지 꼭 오실 줄 알았습니다. 드디어 우리의 얘기가 완성되어 가는 군요,”

남현수는 김건욱을 한번 돌아 본 뒤 마르둑에게 기가 죽지 않았음을 보일 요량으로 마음에도 없는 격한 감정을 담아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이런 결례가 어디 있습니까? 차라리 우주선으로 여기까지 날 데리고 올 것이지요! 지구를 떠났다면서 이게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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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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