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웃고, 일어서면 '해뜰날' 온다

경주마 '하루우라라', 바다사자 '방울이', 낙타 '청애'의 인생역전을 보며

등록 2006.10.14 21:31수정 2006.10.1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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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고도 이기는 '하루우라라'

지고도 이기는 '하루우라라' ⓒ JRA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이즈미 정권이 더 탈이 많을 아베 정권을 남기고 물러났다. 10월 1일 한 경주마도 은퇴를 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고이즈미 총리보다 이 말을 더 그리워할 것이다.


경마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에서 열광하는 팬들을 몰고 다녔던 이 경주마의 이름은 '하루우라라'. 화려한 무대에서 높은 승률을 자랑했던가? 아니다. 지방 레이스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한 결과 113연패,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말이 바로 하루우라라였다.

'화창한 봄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루우라라'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암컷이다. 몸집이 작아 폐활량이 떨어지고 발목이 작아 치고 나가는 힘도 딸려 해외 명마의 혈통을 이어받은 경주마들에겐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1988년 데뷔전에서 꼴찌를 기록한 이래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지만 너무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에 하나 둘씩 하루우라라 팬들이 생겨났다.

하루우라라의 재발견은 고이즈미 정권과 맞물렸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장기불황을 걷어내고 경제를 살려내면서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강한 외교를 구사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양극화'에 해당하는 '격차사회'를 만들어냈다. 격차사회에서 무너져 가는 중산층들, 특히 중·장년 층 남성들이 지더라도 다시 달리고 또 달리는 하루우라라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본 것이다.

2003년 12월 하루우라라가 100연패를 달성하는(?) 날에는 멀리 고치현 경마장까지 5000명이 넘는 관중이 응원하러 몰려왔고, 2004년 3월 유명 기수가 하루우라라를 타는 이벤트에는 전국에서 5억엔에 이르는 마권이 팔려 나갔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하루우라라 캐릭터를 2004년 히트상품으로 뽑았다.

사람들은 질 것을 알면서도 하루우라라의 마권을 산다. 그것을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격차사회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자신을 격려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이제 새로운 무엇이 올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달리고 달리겠다는 얘기다. 양극화 시대나 격차사회가 달릴 기회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연전연패하는 경주마 '하루우라라'와 왕따였던 바다사자 '방울이'

a 살인 미소의 재발견 '방울이'

살인 미소의 재발견 '방울이' ⓒ 서울대공원

서울대공원에는 바다사자 '방울이'가 있다. 돌고래쇼 입구에서 바람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는 방울이는 무료로 만날 수 있는데 오직 방울이를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 폭발이다. 방울이는 하루 네 번 모습을 선보이는데 한 번 보고 나면 기다렸다 두 번, 세 번 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원래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는 영리해서 여러 가지 쇼를 선보이지만 방울이는 몸도 둔하고 운동신경도 약해 사람 나이로 치면 서른이 넘도록 데뷔를 하지 못했다. 그런 방울이가 지난 2005년 늦깎이 데뷔를 한 뒤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비결은? '욘사마'도 울고 간다는 '살인 미소'다.

훈련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야생에서 온 다른 바다사자들과 어울리지도 못해 천덕꾸러기를 면치 못하던 방울이를 인생 역전시킨 것은 박창희 조련사. 어느 날 훈련을 시키다가 방울이에게서 표정을 발견한 것. 동물들은 표정이 없는데 방울이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이것을 집중 관리한 결과 살인 미소, 썩은 미소, 비굴한 미소 등 방울이의 주특기를 끌어냈다.

하루우라라가 그랬듯 방울이 역시 시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나라에선 별 일 없다고 하지만 국민들 체감 경기가 바닥이고 청년이고 중·장년이고 일자리가 없다 하고, 중산층이 무너지며 일을 할수록 가난해진다는 말이 도는 요즘 사람들은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자신감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방울이가 살인 미소를 찾아냈듯이 인생 역전의 기회는 로또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나만의 무기가 될 새로운 가치를 찾는 데 있지 않을까?

하반신 마비된 낙타 '청애'가 일어섰듯이 우리도...

a '청애'와 손홍태 사육사

'청애'와 손홍태 사육사 ⓒ 서울대공원

방울이에게 박창희 조련사가 있었다면 '청애'에겐 손홍태 사육사가 있었다. 2003년 서울대공원으로 온 낙타 청애는 쇠약한 몸으로 환경 적응에 실패해서 하반신이 마비되어 일어서질 못했다. 몸무게 700kg에 이르는 낙타가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곧 끝을 의미하는 것.

손홍태 사육사는 다리를 주물러 주고, 손수 도구를 만들어 청애를 일으켜 세우면서 재활 훈련을 시켰고, 2년 4개월의 노력 끝에 청애는 다시 일어나 걷게 되었다.

최근 무슨 영화 포스터를 보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 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는 문구 앞에서 한동안 멈춰선 적이 있다. 어느 영화에서 인생 잘 안 풀리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전화 걸어 "엄마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이놈아 넌 지금이 시작이야"하던 시큰둥한 한 마디에 가슴이 싸한 기억이 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 미소 좋은데 한 번 개발해 보라고 격려해 주는 그 사람이 그립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나 살펴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아래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만 국가와 사회를 받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그 아래에서 삶을 가꾸고 있다. 높은 자리에선 양극화든 격차든 숫자 몇 %로 재단되겠지만 그 몇 % 차이로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어머니들이 죽고 사는 문제일 수 있다. 팍팍한 시대, 결국 우리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를 응원하며 자기 힘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돈 없을 땐 아프지 말아야 한다. 청애처럼 운동하고 노력해서 건강부터 지키자. 세상사 안 풀려도 방울이처럼 웃고 살자. 억지로 웃어도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과학자 어르신들이 밝혀내지 않았나. 하루우라라에게 그랬듯 서로를 응원하자.

너는 그 미소를 개발해봐 격려해 주고, 주저앉았을 때 일으켜 주며 나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히트치는 날이, 적어도 원 없이 달리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지난 주에 서울대공원에 다녀왔는데 그날 방울이만 세 번 보고 왔습니다. 아직도 우리 딸아이는 방울이 놀이라며 살인 미소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앞이 답답한데 방울이 놀이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네요. 밖에서 치이고 집에 와서 가족 보고 마음 다잡는 사정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주에 서울대공원에 다녀왔는데 그날 방울이만 세 번 보고 왔습니다. 아직도 우리 딸아이는 방울이 놀이라며 살인 미소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앞이 답답한데 방울이 놀이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네요. 밖에서 치이고 집에 와서 가족 보고 마음 다잡는 사정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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