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껍질을 벗고 해금으로 날다.

김준희씨, 백암아트홀에서 해금독주회 열어

등록 2006.10.13 13:37수정 2006.10.13 13:37
0
원고료로 응원
a

영상과 함께 연주를 하는 김준희 ⓒ 김영조

깡깡이라고도 불리는 해금을 아는가?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금은 그저 경박스런 소리를 내는 국악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감히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해금을 지독히도 좋아하는 팬으로 살아남는다. 그건 어쩌면 나비 김준희의 ‘하루애’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해금 수석단원이다. 얼마 전 발매한 그녀의 음반 ‘사계’는 내가 비발디의 ‘사계’를 잊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움을 우리식으로 표현해냈다.

분명 흔히 말하는 퓨전음악이었지만 버터 냄새가 아닌 된장 냄새가 날만큼 그녀의 정체성은 확고했다. 피아노와 같이 하고, 기타와 바이올린이 같이 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서양악기의 소리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이끌어주고 있었다. 동서양의 악기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다.

a

25현 가아금, 로그드럼과 공연하는 김준희 ⓒ 김영조


a

연주에는 춤을 같이 보여주어 무지개빛을 완성하려 한다. ⓒ 김영조

이런 김준희가 가을을 맞아 독주회를 한다고 해서 10월 11일 밤 8시 삼성동의 ‘백암아트홀’로 찾아갔다. 1, 2층을 합해 424석을 모두 채운 청중들은 나비의 진한 날갯짓에 반하고 있었다. 공연은 종합예술을 지향한다. 그저 해금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춤을 곁들이고, 연극 요소를 덧붙이며, 영상의 아름다움을 가미한다. 그런 연주회 방식은 청중들을 충분히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연주의 중간에 한 연극인은 나와서 나비를 말하고 있다. “나비는 무엇인가?, 나비는 껍질을 벗고 나와서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그것은…” 나비 김준희의 속살을 보여주려 애쓴다. 이 짧은 1인극은 연주회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그런 다양한 구조 속에서 나비는 해금을 통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노래한다.

해금은 가끔 격정적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서정적인 매력을 듬뿍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나비의 해금을 듣기 위해 캐나다에서 날아왔단다. 그런 원정에 나비의 해금은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았을까?

a

연주 삼매경에 빠진 김준희 ⓒ 김영조


a

연극 중간에 한 연극인이 나와 '나비' 1인극으로 나비가 무엇인지 얘기하고 있다. ⓒ 김영조


a

꽃보라 속에 연주하는 김준희 ⓒ 김영조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해금에 심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국악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해금과 삶을 같이 하리라는 결심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국립국악원에 들어온 뒤 그녀는 진한 갈등 속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해금을 각자의 특성과 생각에 맞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수없이 고민한 것이다. 이런 애벌레의 과정을 거친 다음 허물을 벗고 나비는 태어난 것이다.

다만 연주회의 옥에 티를 잡는다면 청중을 배려하는 매끄러운 운영이 모자란 점이다. 조금 늦은 청중들에게 한곡의 연주가 끝난 뒤 들여보낸다는 약속을 했지만 무대감독과의 연락이 잘 되지 않아 한참을 밖에 머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때 대기실에 대형화면으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다면 그래도 위안이 될 수 있을텐데 문 연지 오래되지 않은 백암아트홀에게는 무리일까?

또 작은 지적이지만 한국인을 주 대상으로 한 연주회의 팸플릿에 영어를 많이 섞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하루애’란 아름다운 곡 이름에 ‘Sunlight', '먼훗날’에 ‘Moonlight'를 붙인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하루애(Sunlight)'라고 했더라면 더 바람직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a

서양 현악기들을 이끌며 공연하는 김준희 ⓒ 김영조


a

김준희의 음반 '사계'의 표지 ⓒ 김영조

연주회가 열린 ‘백암아트홀(www.baekamhall.or.kr)’은 ‘생각이 열린 공연장, 마음이 통하는 공연장’이란 목표를 내걸고 2년 전에 문을 연 작은 공연장이다. 또 ‘백암아트홀’은 연극 ,뮤지칼, 연주회, 무용 따위를 다양하게 펼칠 수 있는 공연장으로 관객들에게 완성도 높은 좋은 공연물을 접하게 할 것이라고 김경래 하우스매니저는 말한다.

연주에서 그녀는 껍질을 벗고 탄생한 자신의 내력을 애써 보여주려는 듯했다. 무엇이 애벌레이고 무엇이 나비일까?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힘들여 보여주는 날갯짓은 무엇일까?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그리고 있음이었다. 연주를 보지 못한 사람은 그녀의 음반 ‘사계(다다앤브레이든 발매)’를 통해 그 무지개를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대자보, 참말로, 다음에도 보냄

덧붙이는 글 대자보, 참말로, 다음에도 보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5. 5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