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부산에서 경남 고성으로 농촌체험을 하러 온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모습입니다.배만호
늦은 가을밤에 제게 메일을 하나 보냈습니다. 제자를, 후배를, 동료를 아끼는 마음에서 쓴 편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십여 년을 넘게 농민회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떠나는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일을 시작하는 어린 제게 부탁과 충고하는 마음도 함께 느껴졌습니다.
사람의 아픔과 고통은
부모형제도 스승도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동무들도
어느 누구도 대신 지고 갈 수 없다네.
모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야 하니까.
그래서 인생은 늘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 않던가.
→ 편지 내용 가운데 부분입니다.
저는 혼자 살아도, 늦은 가을밤에도, 겨울비 내리는 밤에도 외로움을, 쓸쓸함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늦은 밤이면 가끔 제게 전화를 하셔서 묻습니다.
"외롭지 않냐?"
"아니요.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
"선생님, 저는 어떤 게 외로움인지를 모릅니다."
"이런... 외로움도 모르고 여태 살았단 말이가?"
그렇게 이어지는 전화는 며칠이 되지 않아 술자리로 이어집니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는 만큼 정도 드는 것일까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늦은 밤 기분 좋게 취할 만큼 술을 마시고, 작은 방에서 함께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그런 순간은 어쩌면 내 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일 것입니다.
노자는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러나 물처럼 한 세상 사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는 까닭은,
우리네 삶이 늘 잘못과 실수투성이 때문이겠지.
물은 흐르면서 꼭 자기 길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네.
흐르면서 스스로 제 길을 만들어가는 거지.
만호 마음이 물처럼 흘러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가을처럼 쓸쓸하게 앉아서 기도하는 일 말고는……
→ 편지 내용 가운데 부분입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치원은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적다"며 머나먼 타국땅에서 가을밤의 쓸쓸함을 달랬습니다. 그러면 저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저녁밥을 먹고 김치 냄새를 풍기며 달려가도 반갑게 맞아줄 동무 같은 스승이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시니까요.
덧붙이는 글 | 제게 편지를 보내 주신분은 서정홍 시인입니다. 서정홍 시인은 10년 넘게 농민회 일을 하다가 합천군 가회면으로 돌아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농촌을 떠나면서 버려둔 땅을 새롭게 일구면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분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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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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