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에서 찾은 평정심

중산리-천왕봉-백무동계곡을 찾아

등록 2006.10.16 11:14수정 2006.10.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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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산리야영장을 찾은 지리산 단풍산행객들

중산리야영장을 찾은 지리산 단풍산행객들 ⓒ 최향동

지리산 상봉에 단풍이 물들 무렵인 지난 14일, 광주의 여명을 뚫고 경남 산청 중산리를 찾았다. 광주미래산악회 회원들과 동행한 이번 산행은 이른바 '지리산 단풍산행'이어서 마음이 다소 들뜨기도 했다. 산(山)의 진객인 단풍은 '산꽃'으로 비유된다. 유달리 가을산행객이 많은 까닭도 이 산꽃 때문이다.


a 천왕봉까지 5.4km에 이르는 중산리 산자락

천왕봉까지 5.4km에 이르는 중산리 산자락 ⓒ 최향동

a 산의 진객인 산꽃, 가을단풍

산의 진객인 산꽃, 가을단풍 ⓒ 최향동

중산리 계곡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산행코스는 난이도가 꽤 높은 편. 등선을 타고 가는 것보다 계속 수직상승이다. 초보자들이 매우 힘들어하는 산행이다. 숨이 헐떡이고 다리는 천근만근, '왜 왔나?'하고 돌아보면 돌아가는 길이 엄두에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를 수밖에 없는 산, 천혜의 명산인 반도남단의 본토 최고봉을 지닌 어머니 같은 넓은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a 가을하늘에 단청을 올린 나무들

가을하늘에 단청을 올린 나무들 ⓒ 최향동

산행길에서 만난 그 산꽃님들은 아직 절정이 아닌 듯 싶었다. 가을 가뭄이 깊어서인지 곱게 물들고 있어야할 산꽃님은 그 잎들이 많이 말라 있다. 가을비가 와야 단풍도 그 빛깔이 고운 모양이다. 그래도 산자락을 타고 올라오는 단풍파도는 제법 한 폭의 그림들을 선사한다.

a 천왕봉 정상비에 모인 가을산행객들

천왕봉 정상비에 모인 가을산행객들 ⓒ 최향동

하늘과 더 가까이 하고픈 인간의 마음 때문인지 정상 천왕봉(1915m)에는 가을산행객들이 전국에서 남녀노소가 다 모여 있는 듯 사투리가 산정상을 휘감아 돈다. 그 옛날 장이 섰다는 장터목이 잠시 천왕봉에 와 있는 느낌이다.

오름이 있었으니 이젠 내림이다. 천왕봉에서 줄기줄기 뻗어내린 산자락을 보며 삶의 굴곡과 평정심(平正心)을 생각한다. '저 산을 언제 오를까'에서 '이젠 어찌 내려가나'이다. 어쩌면 평정심은 오름과 내림 속에 깃든 초발심(初發心)일까? 산행매니아와 왕초보가 뒤섞인 이 산악회의 평정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처음과 끝을 모두가 함께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평정심일 것이다.

a 하늘과 구름, 산과 나무가 함께 그린 그림

하늘과 구름, 산과 나무가 함께 그린 그림 ⓒ 최향동

그렇듯 이제 하산(下山)을 걱정해야 한다. 산은 평지보다 일찍 어둠이 스며들기에 만반의 준비가 덜 될 수밖에 없는 당일산행은 하산을 서둘러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럿이 움직이다 보면 늘 변수가 생기는 법. 일행 중에 한 명이 낙오의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를 두고 갈 수 있는 산이 아니다. 10시에 중산리계곡을 탄 산행은 왕초보 때문에 후미그룹이 오후3시에 천왕봉에 이르렀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인지 지리산은 더욱 태산(太山)같다.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산장을 거쳐 백무동계곡을 타야 하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야간산행을 할 수밖에 없다.


a 멀리 반야봉이 보이는 제석봉 고사목 지대

멀리 반야봉이 보이는 제석봉 고사목 지대 ⓒ 최향동

'살아서 백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제석봉 고사목지대를 지날 때면 버려야 할 인간의 욕심과 명리를 생각한다. 오후 4시무렵 장터목산장에 왔다. 반야봉 짝궁뎅이로 떨어지는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반야낙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게눈 감추듯 점심을 후딱 치우고 백무동을 탄다. 선발대는 이미 하산중이다.

1주일 전 야밤에 백무동계곡을 타고 오르다 멧돼지소리를 들었던 그 계곡을 오늘은 하산한다. 다행히도 백무동은 평지능선이 절반, 후발대는 어쩔 수 없지만 잘 하면 선발대는 일몰 전에 하산을 마칠 수 있다. 산은 매우 정직해서인지 후미그룹은 1.5㎞를 야간산행 해야 했다.


a 게눈 감추듯 먹어도 맛있는 산밥

게눈 감추듯 먹어도 맛있는 산밥 ⓒ 최향동

중산리에 천왕봉까지 5.4㎞ 오름, 천왕봉에서 장터목까지 1.7㎞ 내림과 오름 반복, 장터목에서 백무동야영지 5.8㎞ 내림을 거친 12.9㎞의 산행은 말 그대로 평정심의 코스였다. 인사를 나누며 오간 수많은 산행객들 역시 '만인의 자유를 위한' 평정심을 저마다 가슴에 새기듯 천왕봉에는 지금도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의 정상비가 우뚝 서 있다.

a 정직한 산처럼 일찍 찾아든 백무동계곡의 어둠

정직한 산처럼 일찍 찾아든 백무동계곡의 어둠 ⓒ 최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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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없음도 대답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다. 더 좋은 민주주의와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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