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야 외곽의 이라체 수도원. 왼쪽에서는 포도주가, 오른쪽에서는 물이 나온다.정민호
산티아고를 향해 걷다보면 몇 시간 동안 마을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노상방뇨는 필수(?)다. 그래서인지 걷다보면 숲에서 누군가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길이 아닌 곳으로 뛰어가는 사람도 많다.
당연히 우리도 마찬가지. 우리는 서로 당황하지 않기 위해 암호를 정했다. 바로 "삐삐!"라고. 그냥 사라져서 서로 찾느라 몇 번 우스꽝스러운 경험을 해서다.
오전 7시에 알베르게에서 나와 한참을 걷다가 "삐삐"를 외치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 먼 곳에서 쓸 만한 나무 막대기가 보였다. 양쪽 끝이 뾰족해 불편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물집 때문에 걷는 게 힘들었던 나로선 그야말로 보물을 얻은 셈이다.
내 지팡이(?)를 소개하자 친구들이 감탄했다. 여행 전문가 매튜는, 자연의 지팡이는 길이가 안 맞거나 무거워서 불편한데 내가 구한 건 아주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메이징!" 타령이다.
길을 걸으며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말하면서도 준비부족을 탓해야 했다. 여행을 급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가고 싶어만 하던 난 비행기 티켓을 상당히 급하게 구했고 그 때문에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구한 티켓은 유효기간이 한 달이었다.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서 이동하는 것까지 계산해보면, 산티아고 걷는 길은 최대 26일 정도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로그로뇨에서 레온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어차피 완주라는 것이 한 순간이 아니라 평생을 거쳐 이뤄지는 만큼, 걷지 못한 길은 다음에 다시 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드림팀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겨우 며칠 같이 지낸 건데, 왜 그렇게 아쉬운 걸까? 가뜩이나 마음이 아련해지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걷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정, 파스타를 가르쳐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