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거리정민호
저녁 시간, 바에 갔던 매튜가 오더니 당장 나가자고 외친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티아고 가는 길에 운이 좋으면 스페인 축제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 내게 그런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슈퍼 가던 길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술 마시고 있는 걸 봤던 터였다. 호기심으로 따라 나섰더니 웬 스페인 젊은이들이 알베르게 앞에 서 있다.
매튜가 새로 사귄 친구라고 하는 이들, 그중에 파올라라는 여자가 나를 향해 벌어지는 축제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러나 대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나는 바디랭귀지 위주인데 파올라는 술이 잔뜩 취한 터라 꼬부랑 언어가 더 꼬부라져 들려온다.
그런 탓에 엄청난 대화량(?)과 바디랭귀지에도 불구하고 알아들은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 동네는 큰 축제가 일년에 네 번 있는데 이 날 있는 축제는 포도 따는 것을 기념하는 대단히 큰 축제란다.
굳이 그녀가 강조하지 않아도 축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거리로 나가는 순간, '도시가 취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바 앞에서는 사람들이 술잔을 들고 춤을 추고 있고 큰 거리에서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들 뜬 얼굴이 가득했기 때문. 사방에서 술 냄새가 풍겨오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다들 풀려있으며 헤헤 웃고 있다. 취해도 단단히 취한 셈.
두 번째로 알아들은 것은, "아 유 레디?"였다. 파올라가 바 앞에서 내 어깨를 짚으며 그 말을 하기에 "뭘 레디해?"했는데, 아아, 맙소사! 파올라가 날 밀었고 난 그대로 바로 끌려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음악 소리, 흥청망청 노는 사람들, 바삐 움직이는 술병들, 춤추느라 바쁜 몸들… 그곳에는 이미 낯익은 순례자들이 한 자리 잡고 있었고 어느 틈엔가 그들 속에 있는 내 손에도 맥주병이 들려 있었다. 서리하던 포도들을 위해 춤추고 마셔야 하는 날이었다. 알베르게가 밤10시에 닫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던 시간들 덕분에 무모한 여행은 그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가는 길은 '순례자의 길'로 유명하다. 야곱 성인이 스페인 서북지방인 갈리시아 지방에 묻혀있어서 종교인들은 이곳까지 걸어서 가곤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종교적 이유가 아닐지라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걷기'의 즐거움을 가득 누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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