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전남대 강연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광주드림 안현주
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희생양'을 찾는 보수세력의 비난의 화살은 DJ의 '햇볕정책'에 집중되었다. 햇볕정책을 승계해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해온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대북포용정책의 변화를 예고했다.
대북포용정책의 지속을 강조하며 노 대통령의 'U턴'에 누구보다도 먼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DJ 자신이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DJ가 직접 햇볕정책 지키기에 나섰다'고 묘사했다.
그는 11일 전남대 강연에서는 노 대통령이 포용정책 수정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 "요새 해괴한 이론이 돌아다니고 있다"면서 "만만한 것이 햇볕정책이냐"고 말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특히 "북한이 핵 개발한 것은 미국이 못살게 굴고 살길을 안 열어주기 때문이라고 (북한) 스스로 말하고 있다"면서 "북의 핵실험은 (햇볕정책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핵 정책이 실패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미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14일 로이터 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선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함으로써 많은 것을 잃었다"며 북핵 실험에 대한 미국 책임론을 거론하며 "미국 정부는 평양이 바라는 안전 보장과 금융 제재의 해제를 제공해야 하고, 북한은 핵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한다"고 거듭 양자 대화를 촉구했다.
또 16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선 "미국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워싱턴과 평양간 협상의 시동을 걸기 위해 (미국의) 고위급 대북특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대북특사는 미국 정부가 가장 신임하는 미국의 지도자가 가는 것이 좋다"며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간의 특사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베이커 전 국무장관을 지목한 것이다. DJ는 94년 1차 북핵 위기 때도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하면서 북핵 문제 해법으로 '포괄적 타결 방안'을 제시하며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특사로 파견할 것을 제안해 결국 카터의 방북 및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위기를 해소한 바 있다.
DJ "악마와도 대화해야 한다"
그는 18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서는 심지어 "악마와도 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해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IAEA(국제원자력기구) 요원 추방,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강행으로 이어졌다고 전제하고, "대화는 친구를 사귈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국가 이익이나 세계평화에 필요하면, 악마와도 대화를 해야 한다"고 거듭 직접 대화를 호소했다.
그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사례를 들어가며 "미국은 악을 행한 자와 대화할 수 없다고 한다"면서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북한과 전쟁 중에 대화했고, 닉슨은 중국과 레이건은 소련과 대화해 개혁과 개방으로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부시에게 북한(김정일)과 대화해 개혁개방으로 이끌라는 충고이자 압박이다.
19일 서울대 강연에서도 그는 냉전시대 아이젠하워, 닉슨, 레이건 전 대통령 등 공화당 출신 전직 미국 대통령들의 공산국가와의 대화 노력을 언급하면서 "왜 같은 공화당 출신인 부시 대통령만 북한과 대화를 못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하면서 "도대체 핵 문제 당사자간에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사업 중단 논란과 관련해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우리가 북측으로 각기 5km, 10km까지 진출한 것이고 휴전선이 그만큼 북쪽으로 올라간 것이며 이는 우리 안보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대북) 경제진출은 남북이 이익을 보는 '윈-윈'의 협력관계"라고 말해 사업 중단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한 달간의 강연·회견 정치에서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은 제재보다는 대화, 전쟁이 아닌 평화적 해결이 북핵 위기를 푸는 열쇠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이번 북핵 위기를 막는 데 실패하면 제2차 한국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공동책임'을 들어 양자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DJ의 적극적인 행보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
그러나 이러한 김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보에 대한 평가는 현재의 북핵 위기를 바라보는 두 시각만큼이나 양극단이다. 한쪽에서는 남북한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에 대한 DJ의 마지막 열정과 헌신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노벨평화상을 안긴 '햇볕정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폄하한다.
더구나 정계개편을 앞둔 현실정치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마구 끌어다 쓴다. DJ의 햇볕정책과 노선을 계승한 적통자임을 두고 다투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한나라당까지도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이 햇볕정책을 망쳤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DJ가 오는 29일 정치적 고향인 목포를 방문하는 것을 두고서도 정치적 근거지 방문을 통한 햇볕정책 적극 옹호라는 시각에서부터 다음 대선을 겨냥한 정계개편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라는 시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이 중첩되고 있다.
DJ는 정치를 떠났지만 오히려 정치가 그를 가만히 놔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에게는 이래저래 '시련의 10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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