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91회

제노사이드

등록 2006.10.19 17:52수정 2006.10.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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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은 '하쉬'들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그들의 대화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의미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더라도 그들의 대화는 솟에게 좋은 정보가 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자신들의 대화를 솟이 알아듣고 있으리라는 건 전혀 눈치 채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저놈들이 탐사선이 있는 곳으로 가기는 하는 건가?


-신기할 정도로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네. 저놈들은 특별한 기기가 없어도 가이다의 자기장에 이미 익숙한 모양이야.

익숙지 않은 의미가 연이어 계속되자 솟은 그들이 좀 더 쉬운 말로 의미를 전달했으면 하고 바라기 시작했다.

-저 우두머리 사이도는 자꾸 우리 주위를 돌아다니는군. 뭔가 의사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

-아누 자네는 저런 생물들에 많은 것을 바라는군. 자칭 가이다라는 생물에 너무 현혹되었어.

그 말을 들은 솟은 문득 자신의 말이 ‘하쉬’들에게 전달이 되는지 궁금했다.


-내 말이 들리는가?

솟이 중얼거렸지만 ‘하쉬’들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 말이 들리는가!

좀 더 큰 소리로 솟은 외쳤지만 ‘하쉬’들은 대꾸도 하지 않고 엉뚱한 의미를 전달했다.

-저놈이 새로운 노래를 부르려는 건가?

솟은 내심 ‘키’가 자신에게 전해준 능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하쉬’들이 알 수 없는 의미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늑대의 울음소리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사람들의 노랫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솟은 귓가에 울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수풀이 우거진 어두운 곳으로 나갔다.

-수이는 무사해

-수이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바람이 조용히 불어오자 수풀들이 일렁이며 솟에게 수이의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때 솟은 키가 수이의 안부를 바람이 전해준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솟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소리를 듣고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솟은 처음에는 놀라워했지만 금방 차분해져 갔다. 그 의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리고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여러 의미 속에서 자신이 골라 들어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놈들을 몰아내야 해.

-저기도 두 마리가 있어.

-그놈들은 오래가지 못할 거야. 그들의 몸이 우리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거든.

솟이 듣는 소리는 주위에 있는 생물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솟은 이제 막 그 의미를 알아듣고 있지만 그러한 대화들은 평소에 나누는 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이상하게도 이미 알고 있었다. 평범한 시기였다면 그들이 내는 소리의 의미는 먹이와 번식이 거의 전부였을 터였다.

-너희들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나?

솟이 중얼거리자 속삭이던 의미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적막만이 감돌았다. 솟은 자신의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에 약간은 실망했지만 수이가 무사하다는 의미를 전해들은 것만으로도 속으로 흡족해했다.

-아름다운 별 아래의 수많은 생물이여. 이제 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간다네. 눈앞에 불벼락이 떨어지고 땅이 갈라져도 굴하지 않으리.

솟은 자신의 말에 가락을 넣어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그제야 조용하던 생물들은 그 노랫소리에 화담하여 의미 있는 선율을 남겼다.

-우리도 그러기를 바래. 이 땅에 살지 않던 생물들을 몰아내고 만물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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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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