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를 선인으로 만든 사랑의 힘

[서평]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록 2006.10.20 14:27수정 2006.10.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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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쯤의 일이다. 여러 작가의 작품 모음집에서 내가 처음 만났던 톨스토이 작품이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었다. 독후감이 아주 인상 깊이 나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작품 중 하나다. 자연 이것이 나에게는 더욱 잊을 수 없는 톨스토이 작품인 된 셈이다.

시간이 흘렀다. <사람은…>가 당당히 단행본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창비 아동문고 43이라는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호기심을 갖고 열어보았다. 모두 11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제목으로 내세운 작품 <사람은…>을 빼면 10편의 작품이 더 있는 셈이다. 11편의 세계 명작을 한 권의 책으로 다 읽을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인 것만은 확실하다. 말끔한 번역서로, 그것도 러시아문학작품을.

톨스토이는 복음서의 이야기와, 러시아 민중이 오랫동안 지녀왔던 여러 민화와 유익하고 인류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모았다. 모은 것을 자신의 손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읽게 하려는 욕구에서 집필한 책이라는 사실을 직접 밝히고 있다.

제목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세 가지 물음에 관련해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전체내용의 줄거리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기 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힘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대자>와 <작은 악마와 농부>라는 두 작품을 꼭 소개하고 싶다. 특별히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대자>는 인간이 인간을 심판해서는 안 됨을 말하고 있다.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존재는 하느님이란 절대자 이외에는 없다는 뜻이다.

어떤 착한 대자가 도둑을 죽인다. 도둑이 자기 어머니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정당방위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도둑은 이미 사람을 아홉이나 죽인 경력이 있는 악랄한 살인자였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는 착한 대자에게 도둑을 죽인 살인죄를 갚기 위해서는 도둑의 죄까지 떠안게 한다.

이에 대자에게 30년 동안 속죄하는데 전념하게 한다. 30년이란 도둑이 지었던 죄까지 대자가 모두 갚는데 걸리는 기간이다. 가만히 두었으면 도둑 자신의 죄로 남을 것을 대자가 죽였다는 것이다. 속죄하지 않으면 대자가 다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도둑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대자는 속죄하는 과정에 어떤 악명 높은 살인강도를 만난다. 대자는 20년 만에 살인강도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은 세상을 떠난다. 살인강도를 개과천선시킴으로써 속죄한 것이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 있더라도 인간인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를 심판해서는 안 됨을 대자의 행동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이리라. 죄인에게 육체적인 질병을 주거나 마음의 질병인 걱정을 주거나 해서 심판하는 일은 오직 절대자에게만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작은 악마와 농부>는 아무리 착한 사람도 악마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어떤 가난한 농부를 유혹하기 위해 마왕은 작은 악마를 시켜 음모를 꾸민다. 가난한 농부를 사악한 농부가 되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는다.

작은 악마는 가난한 농부를 매우 부유하게 만들어준다. 다음 순간 부유해진 농부에게 욕심을 불어넣는다. 엄청난 곡식이 쌓인 농부에게 작은 악마는 곡식으로 술을 만들어 마시게 한다. 결국 농부는 술을 마시고 욕심쟁이가 되어 처음엔 여우처럼 남에게 아양을 떨고, 다음은 늑대처럼 사나와지며, 끝으로는 돼지처럼 추한 존재로 전락함을 보여준다.

마왕은 작은 악마에게 묻는다. 술에다 처음엔 여우피를, 다음은 늑대피를, 끝에는 돼지피를 섞은 것이로군? 반면 작은 악마는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여우, 늑대, 돼지 등의 피는 농부에게 이미 있던 피이며, 자신은 곡식의 풍요를 통해 욕심을 자극해서 여우, 늑대, 돼지의 피가 농부의 몸에서 밖으로 드러나도록 한 것뿐이라고 대답한다. 결국 작은 악마는 마왕에게 잘 했다는 칭찬과 함께 승진한다.

사람은 가난할 때보다 넉넉할 때 욕심이 더 커진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다. 가난한 사람이 넉넉해질 때, 넉넉해지는 도중에 악마의 유혹이 숨어드는 경우를 우리는 가끔씩 보게 된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패망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처럼 과욕이 화를 불러들이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우리 인간의 몸속에는 여우, 늑대, 돼지의 피가 모두 들어있다는 말도 단지 흘려버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더욱 경계해야할 것은 욕심이지만.

전편에는 종교사상이 잔잔하게 깔려있다. 가톨릭 사상이다. 자연히 사랑이 주요소가 되고 있다. 한편 지나칠 정도로 종교적이진 않다. 생활 속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재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뚜렷하다. 이야기마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반면 이것이 동화라는 데 약간의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어린이가 이해하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무리가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동화라면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어야 좋을 동화일 것이다.

조용한 농가의 풍경이 떠오른다. 가난한 농부의 부지런한 모습도 보인다. 이들 정경의 중심에 두 손을 모은 성모 마리아상도 그려진다. 급기야는 조금 먼 곳에서 은은히 펴져오는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이 <사람은…>이란 책의 전문을 읽고 느껴지는 전부라고 말하고 싶다.

첫영성체를 하기 직전의 어린 자식이 있다면, 그의 손을 잡고 의식에 참가하려고 성당문을 들어서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읽는다면.

덧붙이는 글 |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종진 옮김, 창비, 2006)
리더스기이드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종진 옮김, 창비, 2006)
리더스기이드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단편선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문예출판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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