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던 보석주머니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66] 석류

등록 2006.10.21 08:49수정 2006.10.2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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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석류나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사람들과 가까이 있었던 나무다. 석류모양을 나타낸 토기가 예루살렘에서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이집트의 피라밋 벽화에도 석류그림이 등장한다고 한다.


석류의 다른 이름으로는 안석류, 산석류, 감석류가 있는데 안석류라는 이름은 중국이 페르시아를 안석국(安石國)이라 불렀는데 안석국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산석류는 신맛, 감석류는 단맛을 많이 간직한 석류로 우리나라에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류는 씨가 많아서 연밥과 더불어 자손번영과 다산을 뜻하는 과일로 알려져 있다.

석류꽃의 꽃말은 '원숙한 아름다움'이요, 열매는 '바보, 어리숙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익은 열매가 벌어지면서 그 속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에서 바보나 어리숙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김민수
꽃은 피는 대로 다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비바람에 떨어지는 꽃들이 있어 남은 꽃들이 실한 열매를 맺어갈 수 있는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비바람이 지나간 후 석류나무 아래에 가보면 떨어진 석류꽃들이 뒹굴고 있다. 꽃잎이 진 후에도 꽃술은 그대로 꽃받침에 남아있고, 그것 역시도 꽃처럼 보인다. 그래서 열매가 되지 못하고 떨어진 것조차도 꽃처럼 보인다.

떨어진 것들, 그들이 있어 남은 것들이 실한 열매를 맺어갈 수 있는 것이니 떨어진 것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이다. 비록 그들은 땅에 기대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들 역시도 실한 열매를 잉태하는데 일조를 하는 것이니 그것이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석류의 꽃받침은 두텁고 단단한데 신기한 것은 꼭지부분이 점점 자라면서 실한 열매가 된다는 것이다. 점점 둥글게 자라나는 석류를 보면 마치 임신한 아낙의 배처럼 보인다. 그리고 자랄 것 같지 않은 딱딱한 껍질이 자라고 자라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껍질이 터지고 속내에 담고 있었던 붉은 보석들을 세상에 선보인다. 마치 보석주머니를 보는 듯하다.


그 붉은 보석들은 다름 아닌 씨앗인데 씨앗을 감싸고 있는 과육의 맛,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일품이다.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가 즐겨먹었다는 과일이 석류라고 하니, 그 여인들은 붉은 보석 혹은 보석주머니를 먹으며 자신들의 미를 가꿔갔던 것이다.

김민수
제주에 살 때 뜰에 석류나무가 있었다. 바람이 많은 곳이다 보니 남아있는 꽃보다 떨어진 꽃들이 더 많고, 어떤 해에는 단 하나의 열매도 맺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마지막 가을을 맞이하던 때 이별선물을 준비한 듯 주렁주렁 석류열매를 맺었다. 바람에 시달린 석류의 껍질은 그야말로 별 볼일 없었고,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가을이 무르익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더 이상 입을 다물수 없어 터지는 석류를 수확해서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이전에도 석류가 미용에 좋고, 여성들에게 좋은 과일이라고 하여 외국에서 들여온 석류를 사서 먹어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정도의 맛이려니 생각하며 신맛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고 했다. 그러나 뜰 안에 있던 석류가 감석류였는지 단맛이 가득했고 아이들은 그날 이후 아직 터지지 않아 나무에 남아있던 석류가 터지기만을 기다렸다.

김민수
석류는 열매보다는 껍질에 더 많은 약효가 들어있다. 북한에서 펴낸 <동의학사전>을 보면 석류껍질에 어떤 약효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가을에 열매가 익은 다음 따서 쪼개어 씨와 속을 버리고 햇볕에 말린다. 맛은 시고 떫으며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있다. 대장경, 신경에 작용한다. 장을 수렴하고 설사와 출혈을 멈춘다. 설사, 이질, 자궁부정출혈, 장출혈, 대하, 유정, 탈항 등에 쓴다. 외용약으로 쓸 때는 가루를 내어 뿌리거나 가루를 기초제에 개어 바른다."

석류껍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석류의 나무뿌리껍질과 석류이파리와 석류꽃에 들어있는 약효도 대단하다. 뿌리껍질에는 구충작용성분이 들어있어 억균작용을 하여 조충증, 회충증, 설사, 이질 등에 사용된다. 석류꽃은 잘 말려서 1-2개씩 물에 삶아 마시면 토혈과 비출혈에 좋고, 석류꽃을 구워 말린 다음 가루로 만들어 콧구멍에 넣으면 피가 멎는다. 이파리는 타박상에 물로 달여서 환부에 바른다고 하니 열매의 맛은 맛대로, 나머지는 그 약효대로 사용된다. 석류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과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민수
석류에 대해 전해지는 인도전설이 있다. 아이들에게 전해주듯 그 이야기를 옮겨본다.

"히말라야 산기슭에 어린 아이만 잡아먹는 못된 마귀할멈이 있었단다. 부처님은 마귀할멈의 버릇을 고쳐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몰래 마귀할멈의 딸 한 명을 감추었어. 마귀할멈에게는 아이들이 많았거든. 혹시나 딸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마귀할멈이 딸을 찾느라 난리가 난거야.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며 배고픈 것도 잊고 딸을 찾아 다녔지.

그러자 부처님이 "그까짓 딸 하나 없다고 야단법석 할 것 없지 않니?" 하셨지. 그러자 마귀할멈이 "딸을 잃고 슬퍼하는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했지. 그러자 부처님은 "많은 자식 중 하나를 잃어도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그렇게 슬픈 일인데 한두 명밖에 없는 자식을 잃은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오늘부터는 아이를 잡아먹지 말고 이것을 먹어라"하시며 석류를 주었데. 그 후로 마귀할멈은 못된 버릇을 고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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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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