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의 지시 "구체적 대안을 가져와 봐"

[내 젊음을 바친 군대18] 마음을 사로잡아야 천하를 휘어잡는다

등록 2006.10.22 09:45수정 2006.10.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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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전력 강화(군대개혁)’는 내 군대생활의 꿈이요, 비전이며, 군인으로서의 나의 존재 이유였다. 그 중점 내용은 민족의 군대, 민주적 군대로 군을 개혁함으로써 장병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는 한국군 독자적 심리작전 교리와 체제를 정립함이었다.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월남 참전 귀국 이듬해인 1967년 2월 대위 시절 정훈 병과로 전과했다. 1972년 5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대만 정치심리전학교 정규반(고군반)에 유학 다녀온 후 군에서 실시하는 모든 '정신전력강화' 연구에 참여했다. 국방부에 '정신전력 연구위원회'를 구성 연구를 주도하여 1977년 '국군정신전력학교'를 창설했다.

정신전력을 강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무형전력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기획, 관리하는 조직체를 구성하는 문제가 핵심적인 과제였다. 아무리 정신전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더라도 이의 추진을 주관하는 참모 조직이 없으면 한갓 구호에 그칠 뿐 그 분야의 업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미군의 입장과 다르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는 동족 간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동족 간의 전쟁에서는 물리적 역량보다 더 중요한 분야가 정신전력, 즉 ‘심리전력’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자가 세상을 휘어잡는다.

문화와 의식구조, 그리고 심리전의 수단인 언어와 문자가 동일하기 때문에 적과 직접 접적하고 있는 모든 장병이 대적 선전요원이며, 민사심리전 요원이고, 심리전 방어요원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적 심리전 개념을 우리 실정에 맞도록 새롭게 설정하여 이 분야의 업무를 통합 추진하는 일반참모 체제를 만들고자 하는 내용이다.

정신전력 강화의 필요성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있다. 2군 정훈 참모 시절 나는 매일 점심시간 후 영관급 이상 장교들을 대상으로 10분 정신교육을 했었는데, 내 강의를 흡족하게 생각한 사령관께서 자주 나를 불러 격려해 주곤 했다.

CPX(지휘소 연습)가 끝난 어느 날도 사령관께서 나를 찾았다. 여러 이야기 중에 "이번 지휘소 연습 어때? 잘했지?" 하고 물어왔다. 나는 "모두들 열심히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아주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나의 이런 의외의 반응에 대해 "그게 뭔데! 한 번 말해봐!" 했다.


나는 ‘바로 이때다!’ 싶어, 평소 내가 생각해 왔던 한국군 참모체제 개혁에 관한 내용을 열을 올려 설명했다.

"군사령관 님! 저는 이번 훈련을 보면서 저런 참모판단들을 들으시고 과연 사령관님께서 어떤 판단을 하시고 무슨 지휘결심을 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사령관님! 우리 2군의 주 임무는 1, 3군과는 달리 '동원'입니다. 따라서 ‘동원이 원활히 이루어지겠는가? 동원의 저해요소와 문제가 무엇인가?’ 판단하고 결심 조치하는 업무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6·25 때는 전방에서만 전투가 전개되고 후방인 2군은 적과의 접촉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심리적인 혼란이나 동요 없이 동원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적은 전쟁 초기에 심리적 공항 상태를 조성하여 동원의지를 말살하고자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 2군 지역 여기저기에 특수 8군단을 AN-2기로 투하시켜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하고 방화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려 아수라장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일반참모의 참모판단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음을 보고 너무나 놀랬습니다. 죄송하지만 사령관님은 심리전에 있어서는 속수무책 장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령관님! 초전에 우리 2군에 침투하는 적의 임무는 1, 3군 지역과는 다릅니다. 그런데도 모든 참모 계획과 판단은 1, 3군처럼 특정지역을 방어하고 공격하여 적을 격퇴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군사령관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민심의 동향과 장병들의 전쟁 의지(意志)일 것입니다."

이런 식의 내용이었다. 사령관께서는 큰 관심을 두고 들으면서 "그래, 계속해 봐!" 하였다. 나는 다시 열을 올려 말했다.

"그것은 바로 심리전 관련의 참모 조직과 제도 및 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군은 미군의 교리 그대로를 적용한 까닭에 심리전이 특수 전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문화가 다르고 심리전의 수단인 언어와 문자가 다른 외국을 적으로 하여 싸워야 하기 때문에 특수하게 훈련된 인원에 의해서만 심리전 수행이 가능하여 특수한 작전 개념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대로 따르다 보니 심리전은 중대전투교범이나 대대전투교범에 포함 일반 교리화가 되지 않고 일반참모 조직에서 배제되어 있습니다. 참모조직이 없으니 참모판단 및 건의를 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조직이 없으니 이에 대한 아무 개념도 대처도 없으며 문제를 제기하거나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부서가 없습니다. 참모판단을 하고 참모계획을 세워 군사령관님께 참모 보고하는 등 참모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나는 연설하듯이 주장했다. 사령관께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경청하시더니 "구체적 대안이 있으면 가져와 봐!" 했다.

나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군인으로서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과정의 의미, 나의 꿈, 내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하니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령관의 지시

며칠 후 나는 온 심혈을 다 쏟아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도록 그러나 아주 간결하게 현재의 정훈, 민사, 심리전 기능을 통합하여 일반 참모부를 구성하는 안을 만들어 보고 했다. 보고를 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하고 돌아서려 하자, 사령관은 "뭘 돌아가! 거기 앉아! 그리고 그것 이리 가지고 와!" 하고 브리핑했던 차트 위에 사인을 하며 "이대로 하라고 해!" 했다.

나는 사령관실을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 정신이 없었다.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감동에 북받쳐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정신전력 강화를 말로만이 아니고 참모업무로써 전담하여 수행하는 체제를 갖출 수 있게 되는 일대 개혁의 계기가 온 것이다.

사람들은 ‘전방부대도 아닌 2군에서 무슨 심리전이 필요하다고 민사 심리전 참모부를 설치하느냐?’고 빈정댔다. 그러나 이는 2군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군 전체의 문제였다.

관리참모가 위원장으로 한 '연구위원회'를 구성되어 심의를 거친 후 군사령관의 최종 결재를 얻었다. 사령관께서는 육군본부 회의에 참석하여 우리 2군에서는 이 안을 적용하겠음을 참모총장에게 간담회 식으로 보고하기 위해 비서실장이 준비하여 서울에 올라갔다.

그러나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 벌어졌다. 그날 사령관은 그만 전역 명령을 받았다. 잘되어간다 싶더니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이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난 그 안을 가지고 육군 본부의 관계 처장과 과장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했지만 모두 귀찮다는 표정 들이었다.

하지만 난 조금도 실망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라는 말을 확실히 믿고 있었다. 끊임없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 결과 훗날 내가 정훈감이 되어 마침내 기적처럼 뜻을 이루어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체험을 통해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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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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