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글쓰기... 남편 사랑 때문이죠"

[뉴스게릴라를 찾아서 ⑨] '아름답게 사는' 이야기 들려주는 이승숙 기자

등록 2006.10.24 04:44수정 2006.10.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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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승숙 시민기자가 방금 딴 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승숙 시민기자가 방금 딴 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김귀현

김승옥의 단편 소설 '무진기행'에서 '무진'은 아름다운 공간이다. 하지만 소설 속 서술자인 '나'에게 무진은 2박 3일로 족한 곳이다. 무진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무진은 꿈이지만 서울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름을 모두 잊게 해주는 유토피아와 같은 무진을 현실은 '잠시 머무를 만한 곳' 정도로 격하시킨다.


하지만 김승옥이 소설의 배경인 무진을 가상의 공간이 아닌 '강화'로 설정했다면, 그 내용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과 그 바람의 미동에 사뿐히 춤을 추는 너른 들판을 보았다면, 마리산(마니산의 강화 지역명) 자락에 뉘엿뉘엿 지는 석양의 고즈넉함을 보았다면, 소설의 주인공은 아예 이 땅에 눌러 앉아 살았을 것이다.

얼마 전 강화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사는 시민기자 이승숙(45)씨를 만나보았다. 도시 생활을 하다 강화로 온 지 7년째, 2박 3일짜리 무진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강화에 대한 예찬이 그의 첫 마디였다.

"강화는 산과 들이 많다. 바다는 1년 내내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지만,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과 들의 모습은 경이롭다. 연초록색, 누런색, 그리고 하얀색으로 항상 옷을 갈아입는다. 아침에 들판 위에 드리워진 물안개는 정말 혼자 보기 아깝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승숙 기자가 30대라는 젊은 나이에 도시를 떠나 이곳에 눌러 앉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의 글, 그 안에 '사랑' 있다


a 이승숙 시민기자

이승숙 시민기자 ⓒ 김귀현

2006년 3월에 처음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한 이승숙 기자는 사는이야기 전문기자다. 지금까지 쓴 약 50여 꼭지의 기사가 모두 사는이야기니 실로 그 뚝심이 대단하다. 다른 분야도 관심을 가질 만한데 온통 사는이야기뿐이다.

많은 시민기자들이 사는이야기 기사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쓰려면 어렵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다. 직업기자의 일반기사가 '남의 일'을 글로 담는 것이라면,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는 '나의 일'을 글로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승숙 기자는 '나의 일'을 기사로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 식상할 것 같은 '나' 속에서 수많은 소재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소재를 재미있게, 혹은 감동적으로 풀어내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특별한 비결이 있지 않을까?

"내 글의 원동력은 '사랑'이다. 나의 가족을 사랑하고, 주변의 자연을 사랑하고, 고향에서의 어릴 적 추억을 사랑하니 글은 저절로 나온다.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내가 사랑하는 강화도의 멋진 풍경을 보고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글이 술술 나온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물론 그 사랑의 마음이 변치 않는다."

정말 그 말이 딱 들어맞는 듯하다. 딸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이마를 드러내야 복이 들어오지>라는 기사처럼 아버지,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줄곧 기사에 담겨 있다. 기사의 주요 소재이며 이승숙 기자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 대한 사랑 또한 유별나다.

"99년 강화도에 오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계속 도시에 살다가 처음 시골로 이사를 오게 돼서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사를 와서 줄곧 섬을 둘러 봤지만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뒷산을 거닐던 중 전에는 보이지 않던 소소한 것들이 내 눈 안에 들어왔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고, 마음이 열리며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그 보이는 아름다움을 글로 담았다"

보이지 않던 소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글로 담은 것이 이승숙 기자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결국 강화도가 그를 지독한 글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나는 절대 글을 꾸며 쓰지 않는다. 보이는 그대로 쓴다. 보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나봐"

a 마당 모습, 야외 탁자가 놓여져 있다. 마당에서 바라보면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마당 모습, 야외 탁자가 놓여져 있다. 마당에서 바라보면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 김귀현

이승숙 기자는 99년부터 강화도에서 살았다. 38세라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궁금해졌다.

"강화에 오기 전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살았다. 남편은 수학 교사를 했고, 나는 그 당시 자격증을 취득하여 독서 지도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서 지도사 활동을 하면서 건강이 매우 나빠졌고 큰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수술 이후,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이 필요했고, 마침 남편이 강화도로 발령이 나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의 건강 상태를 묻자 예상대로 "지금은 매우 건강해졌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기자가 보기에도 이승숙 기자는 아주 건강해 보였다. 그의 강화도 예찬은 계속 이어졌다.

"강화도는 치유의 땅이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강화도에서는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한 낮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다. 강화도에 살면서 항상 자연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끊임없는 예찬을 들으며, 부러운 마음에 좀 얄궂은 질문을 했다. 강화도의 아름다움은 이승숙 기자만 갖고 있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냐고.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 옆집에 사셨다. 서울에서 귀농하신 분인데 한 번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나봐. 이곳에서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야'. 물론 나도 이 말에 동의를 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많으나 자식들의 교육문제 앞에서 종종 포기한다. 이승숙 기자 또한 딸(19)과 아들(17)을 둔 '수험생 엄마'다. 그는 교육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도시와 교육의 수준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원이 없는 시골로 이사 오면서 아이들은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또한 지역할당제, 농어촌특별전형 등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대입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이승숙 기자의 두 자녀의 성적은 매우 우수하다고 한다.

콩밥, 연못, 삽살개, 모두 그대로였네

a 이승숙 기자가 말린 고추를 보고 있다.

이승숙 기자가 말린 고추를 보고 있다. ⓒ 김귀현

분위기가 많이 달궈졌다. 이제 본격적인 기사 얘기를 할 순서. 그 전에 이승숙 기자는 취재를 하러 온 기자에게 밥을 차려주었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유기농 식단까지는 좋았는데, 밥이 나에게로 오는 순간 불현듯 이승숙 기자의 지난 기사가 생각났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밥은 '콩밥' 이었다. 함께 식사를 한 이승숙 기자의 남편은 '아직도 난 콩밥이 싫다'며 질색했다. <매일 콩밥 먹는 남편>

콩밥을 보니 이승숙 기자의 다른 기사 속 소재들도 궁금해졌다. 마당에는 예쁜 야외 탁자가 놓여져 있었고, 미꾸라지 저장고 연못에는 미꾸라지들이 춤추고 있었다. 토종 삽살개 '갑비'는 생각보다 몸집이 컸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그의 기사 속 소재들이 있어 마치 '현장답사'를 온 기분이었다. <토종이면 어떻고, 잡종이면 어떠리> 단, 해병대와 뱀을 찾기는 힘들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게 된 계기를 묻자, "남편 때문에 쓰게 되었다. 남편의 학교 교감 선생님이 시민기자로 활동 중인 전갑남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 때문에 <오마이뉴스>를 알게 되었고 기사를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족발을 잘 만드는 이승숙 기자의 남편은 기사가 나간 이후 학교에서 '요리사 김선생'으로 통한다고 한다. 인터뷰 막바지 무렵, 기사에도 자주 등장하는 남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였다.

"남편과는 대학교때 C.C(Campus Couple)였다. 군대시절 내가 보낸 장문의 편지를 보면서 내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남편 때문이다. 남편이 내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글을 쓴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게 된 것도 남편 때문이다. 나는 남편의 격려 속에 큰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말 속에 깊이 배인 듯했다. 그 말을 듣던 남편 또한 "아내의 글을 보는 것이 정말 좋다. 나중에 꼭 아내 이름의 책을 한 권을 내주는 것이 꿈"이라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밝혔다.

한참 이야기를 진행 하던 중 이승숙 기자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혹시 기사 자체 검열 같은 거 당해보았어요?" 무슨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 하자, "나는 기사를 쓰기 전 자체 검열을 받는다. 바로 남편이 '이건 좀 아니다'고 하면 출고를 시키지 못한다. 지금까지 2개의 기사가 검열 당했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 자체 검열이라니, 70년대도 아닌데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이에 대해 남편 김진원(46)씨는 "사는이야기 기사만 쓰는데, 정말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다 기사로 쓰는건 가족의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자제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이 입장을 밝히자, 잠깐동안 본기자를 앞에 두고 부부의 소박한 언쟁이 오갔다. 결국 논쟁은 '아내의 승리'로 돌아갔다. 패전한 남편은 "가족 얘기를 기사로 쓰는 것은 나도 정말 좋다. 하지만 소소한 부분까지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검열은 당분간 자제 하겠다"고 말했다. 역시 아내는 남편보다 강했다.

언쟁을 지켜본 본 기자의 소감은, '부부의 사랑이 깊다면 언쟁도 따뜻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언쟁임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말속에는 사랑이 넘쳐 흘렀다. 중년의 부부에서 어찌 저렇게 예쁜 말들만 나올까 의아할 정도였다. 아직도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3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끝났다. 인터뷰를 하기 전 많은 부담감이 있었다. 시민기자를 인터뷰하는 것이 처음이고 또한 연배차가 큰, 어머니뻘 되는 분과 부드럽게 인터뷰를 진행해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여느 때보다 준비도 많이 했고 질문지까지 출력해갔다.

하지만 질문지 문항은 하나도 채워지지 않았다. 마치 이모처럼 편히 대해주신 덕에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딱딱한 대화가 아닌, 진솔한 대화들만 3시간 동안 나눴다. 질문지의 답은 채워지지 않았지만 이승숙 기자의 진정성 있는 말들은 모두 담아냈다.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배운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특히 그의 마지막 말은 진한 여운을 남겼다.

"내가 20대일 때, 10대일 때보다 행복했고, 40대인 지금은 30대일 때보다 행복하다. 그리고 내가 60대가 되든 70대가 되든 그 때가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행복한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취재를 맡은 김귀현 시민기자는 누구?

ⓒ오마이뉴스 안홍기
2006년 7월 28일부터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김귀현 기자는 사회, 스포츠, 교육, 여행, 국제, 사는 이야기 등 다방면에 걸쳐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올해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로 활동하면서 20대의 톡톡 튀는 감성이 가득 담긴 기사를 선보였습니다. '우리 착한 부시 좀 그만 괴롭혀' '난, 여자에 대해 무식했다' '동방신기도 아쉬운 판에 노이즈라니' '차라리 성인용품 박람회라고 하지'가 이 기간 동안 나온 기사입니다.

최근에는 '라디오 스타' 김미화 김구라와 함께 한 찜질방 시사토크에 참여해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 9월의 뉴스게릴라상을 받았습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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