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학교 안가고 우리만 따라다녀요"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 여행 17] 희망의 교실에는 행복한 웃음이

등록 2006.10.24 14:06수정 2006.10.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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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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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로! 짤로! 스쿨! 스쿨!"

우리는 늘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가란 뜻으로 '스쿨 짤로'를 외쳤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봐도 웃기만 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지니와 나를 따라다녔다. 언덕에 가면 언덕으로, 집으로 가면 집으로 쫓아왔다. 들판 화장실에 가면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다시 쫄쫄 따라 나섰다. 아이들은 정말 지치지도 않았다.


"짤로!!! 짤로!!! 아이고 답답해."

더 크게 소리를 질러 봤지만 아이들은 무서워하기는커녕 재밌어 하는 듯했다. 빙글빙글 웃으며 우리를 잡아끄는 아이들 때문에 드디어 화가 났다. 결국 우리는 학교 일을 책임지고 있는 람에게 이 사실을 일러주었다.

"애들이 학교에 가질 않아요! 매일 우리만 따라다니고. '짤로 짤로' 소리 질러봤자 안 간다고요!"

이야기를 들은 람은 아이들과 똑같이 웃었다.

"하하하. '스쿨 짤로'는 학교 가자는 뜻이야. '짤로'는 같이 가자는 뜻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가라'고 할 땐 '짜오'라고 했어야지. 스쿨 짜오!"


아! 우리는 여태껏 학교에 같이 가자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우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쿨 짤로'라고 우기는 걸 중단하자 아이들은 학교에 잘만 갔다. 여기서 학교란 동네 사람들과 람, 후원자가 힘을 합쳐 만든 학교다. 물론 정부 학교도 있었지만 정부 학교의 수업은 이상하다. 시내로 가는 길에 있는 정부학교의 수업을 많이 봤었다. 커다란 운동장에 책상이 하나 있고 선생은 앉아서 언제나 신문만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책상 밑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가야 했다. 선생이 가르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인도의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시골 마을의 학교는 그랬다. 그에 비해 동네 학교는 모두의 진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동네 학교는 두르가 사원과 꼴로니 마을 이렇게 두 곳에 지어졌고 80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무케시는 두르가 사원 학교에 다녔다. 구멍 뚫린 부대 자루로 만든 가방을 들고 다녔지만 늘 열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흙바닥에 누워 있는 무케시를 보았다.

"어머나! 무케시,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무케시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였다. 나는 무케시 집에 가서 아버지인 순리 바이삽에게 물었다.

"무케시가 왜 그래요?"
"아침부터 열이 나고 아프다고 하네. 학교도 못 갔어. 걱정이야."

여기선 아프면 가만히 낫기만 기다린다. 지니가 무케시에게 가지고 있던 약을 먹였다. 몇 분 뒤 열이 가라앉자 무케시는 곧 터진 가방을 찾았다. 그리고 학교에 간다고 뛰어 나갔다.

저녁때 줄라(화덕) 앞에 앉아 불을 쬐고 있으면 무케시는 나에게 공책을 구경시켜줬다. 수줍게 내민 공책 속에는 집에서 뛰노는 닭과 염소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한 장 한 장 힌디, 수학 문제 같은 게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거기엔 '아빠, 조니'라는 시도 있었다. 이 시는 재미있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엄청 많았다.

jony jony yes papa(조니, 조니 우리 아빠)
eating sugar no papa(설탕은 먹지 마세요)
telling a lie no papa (거짓말도 하지 마세요)
open your mouth ha ha ha (입을 벌리고 하하하 웃으세요)


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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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학교는 꼴로니 마을 공터에 있었다. 사람들은 버려진 건물을 불법 점거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한 칸 짜리 좁은 건물에서 아무런 미래도 없이 살아야 하는 꼴로니는 빈민가였다.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아빠를 보거나 정글로 나무를 하러간 엄마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아니면 소똥을 줍거나 빨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곳 아이들에겐 '스쿨 짜오'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학교 가길 좋아했다.

이 학교에는 유난히 꼬맹이들이 많았다. 아침 일찍 언니, 오빠를 따라 아장아장 학교에 온 아기들이었다. 학교에 오기엔 너무 어리지만 아기들에게 학교는 심심하지 않은 곳이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작은 칠판을 가지고 놀거나 공책에 그림을 그렸다. 누군가 앞에 놓아준 땅콩을 까먹으면서. 종종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각국의 동요를 불러 주기도 했다. 아기들은 그게 또 신기했다.

예쁜 프랑스 언니가 불러주는 샹송, 일본인 형이 불러주는 귀여운 노래, 영국 아줌마가 들려주는 알파벳 송 그리고, 한국인들이 불러주는 솜사탕과 산토끼. 그렇지만 정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떨리게 만든 것은 따로 있다. 학교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가끔 가져오는 선물이었다. 사탕이나 과자 우유는 너무 달콤해서 봉지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언니 오빠들은 알파벳을 외우고 수학을 풀고 힌디를 써나갔다. 아기들은 옆에서 놀았다. 아이들에게 이건 공부라기보다는 충격이었다. 아주 신선한 충격. 게다가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는 건 아이들에게 진짜 신나는 충격이었다.

나는 교실 벽에 붙여진 아이들의 그림을 볼 때마다 감탄했다. 희망이라곤 없어 보이는 삶에도 웃음이 있었다. 교실로 불어온 바람에 그림이 흔들릴 때 삶이 언뜻 행복해 보이는 듯했다.

왕소희

왕소희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과 행복닷컴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미디어다음과 행복닷컴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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