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소희
"짤로! 짤로! 스쿨! 스쿨!"
우리는 늘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가란 뜻으로 '스쿨 짤로'를 외쳤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봐도 웃기만 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지니와 나를 따라다녔다. 언덕에 가면 언덕으로, 집으로 가면 집으로 쫓아왔다. 들판 화장실에 가면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다시 쫄쫄 따라 나섰다. 아이들은 정말 지치지도 않았다.
"짤로!!! 짤로!!! 아이고 답답해."
더 크게 소리를 질러 봤지만 아이들은 무서워하기는커녕 재밌어 하는 듯했다. 빙글빙글 웃으며 우리를 잡아끄는 아이들 때문에 드디어 화가 났다. 결국 우리는 학교 일을 책임지고 있는 람에게 이 사실을 일러주었다.
"애들이 학교에 가질 않아요! 매일 우리만 따라다니고. '짤로 짤로' 소리 질러봤자 안 간다고요!"
이야기를 들은 람은 아이들과 똑같이 웃었다.
"하하하. '스쿨 짤로'는 학교 가자는 뜻이야. '짤로'는 같이 가자는 뜻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가라'고 할 땐 '짜오'라고 했어야지. 스쿨 짜오!"
아! 우리는 여태껏 학교에 같이 가자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우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쿨 짤로'라고 우기는 걸 중단하자 아이들은 학교에 잘만 갔다. 여기서 학교란 동네 사람들과 람, 후원자가 힘을 합쳐 만든 학교다. 물론 정부 학교도 있었지만 정부 학교의 수업은 이상하다. 시내로 가는 길에 있는 정부학교의 수업을 많이 봤었다. 커다란 운동장에 책상이 하나 있고 선생은 앉아서 언제나 신문만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책상 밑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가야 했다. 선생이 가르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인도의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시골 마을의 학교는 그랬다. 그에 비해 동네 학교는 모두의 진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동네 학교는 두르가 사원과 꼴로니 마을 이렇게 두 곳에 지어졌고 80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무케시는 두르가 사원 학교에 다녔다. 구멍 뚫린 부대 자루로 만든 가방을 들고 다녔지만 늘 열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흙바닥에 누워 있는 무케시를 보았다.
"어머나! 무케시,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무케시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였다. 나는 무케시 집에 가서 아버지인 순리 바이삽에게 물었다.
"무케시가 왜 그래요?"
"아침부터 열이 나고 아프다고 하네. 학교도 못 갔어. 걱정이야."
여기선 아프면 가만히 낫기만 기다린다. 지니가 무케시에게 가지고 있던 약을 먹였다. 몇 분 뒤 열이 가라앉자 무케시는 곧 터진 가방을 찾았다. 그리고 학교에 간다고 뛰어 나갔다.
저녁때 줄라(화덕) 앞에 앉아 불을 쬐고 있으면 무케시는 나에게 공책을 구경시켜줬다. 수줍게 내민 공책 속에는 집에서 뛰노는 닭과 염소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한 장 한 장 힌디, 수학 문제 같은 게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거기엔 '아빠, 조니'라는 시도 있었다. 이 시는 재미있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엄청 많았다.
jony jony yes papa(조니, 조니 우리 아빠)
eating sugar no papa(설탕은 먹지 마세요)
telling a lie no papa (거짓말도 하지 마세요)
open your mouth ha ha ha (입을 벌리고 하하하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