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은 해모수의 드라마였나?

[주장] 다 '끝난' 드라마의 고무줄 편성을 보는 씁쓸함

등록 2006.10.31 11:30수정 2006.10.3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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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주몽> 제작진의 내분이 심각하다.

당초 60부 예정이던 것을 85회까지 늘리려는 과정에서 작가와 방송사, 외주제작사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다. 심지어 최완규 작가가 60회를 끝으로 손을 놓는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최완규 작가는 여러 이유를 들어 더 이상의 집필은 불가능함을 선언했다. 드라마가 중반 이후 심각한 소재 고갈에 시달려왔음을 아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달가울 게 없다.

그러나 정형수 작가 단독으로라도 내년까지 이어가겠다는 게 MBC의 방침이다. <주몽>의 시청률에 사활을 건 MBC로서는 아마 두 작가 모두 빠진다한들, 새로운 작가를 투입해서라도 어떻게든 <주몽>을 연장할 게 틀림없다.

현재 시청률 45%라는 ‘신화’를 쓰고 있는 <주몽>은 빈곤한 상상력과 느슨한 전개로 점차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고구려 건국 시점에서 종영하든, 소서노와 그 아들들의 이야기까지 더해 85회까지 끌고 가든, <주몽>은 이미 사실 상 ‘끝난’ 이야기다. 별다른 사건이나 줄거리 없이 매 회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드라마 <주몽>은 시청률과 상관없이 해모수(허준호 분)의 죽음과 함께 완성도 면에서는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초반에만 등장할 예정이던 해모수가 12회까지 출연하며 장장 20년을 더 살아남을 때부터 연장방영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해모수를 더 오래 등장시키기 위해 줄거리를 바꿀 때부터 <주몽>은 시청률에 따라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드라마임을 입증했다. 결과적으로 <주몽>은 해모수의 드라마였던 셈이다. <주몽>은 초반부터 고무줄 편성에 끌려 다닌 끝에 결국은 더 이상 보여줄 것도 없이 25회를 연장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과연 <주몽>은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주몽>의 하이라이트는 해모수의 죽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건국 신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근본을 알게 된 건국 영웅에게 남은 것은 가서 나라를 세우는 일 뿐이다. 고구려 동명성왕의 신화에서 건국 이후에도 남는 사건이 있다면 소서노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몽의 아들 유리의 이야기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 권력의 이양이야말로 건국 신화의 뼈대가 아닌가.


드라마 <주몽>은 부계 중심의 건국신화에 소서노라는 여걸을 등장시켜 변화를 주고자 했다. 그러나 소서노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될 때 건국신화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신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을 때는 적어도 확고한 대안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주몽>은 현재 작가도 연출자도 예측하지 못할 오리무중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주인공 주몽(송일국 분)이 2주간 완벽하게 실종됐을 때, 제작진은 심각한 플롯의 부재를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당장 오늘 방송분을 끝까지 볼 인내심이 부족한 상황이다. 두서없이 펼쳐질 80분의 지루함을, 보던 드라마를 계속 보는 ‘관성’으로 간신히 견디고 있음을 제작진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보낸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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