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타면 '없는 사람'? 똑똑한 알부자!

[관용차는 혈세로 굴러간다 16] 경차동호인들의 '경차 사랑'

등록 2006.11.01 17:00수정 2006.11.0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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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대전에서 개최된 천넷 전국모임에서 회원들이 경차를 이용해 단체로 이동하고 있다. ⓒ 천넷 제공

고위 공직자들의 대형 고급 전용차 경쟁이 국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가운데 경차로 고유가 파고를 넘으며 우애를 다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경차동호회' 회원들.

경차동호회는 지난 90년대 초 정부의 경차 제도 도입으로 등장한 배기량 800cc급의 티코와 마티즈(대우), 아토스(현대), 비스토(기아) 등을 애용하며 생업에 종사하는 보통사람들의 모임이다.

현재 국내에는 5~6곳의 경차동호회가 결성돼 있으며, 회원 수는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비교적 왕성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는 '1000cc.net'(이하 천넷)과 '내 사랑 티코'(이하 티코동호회) 회원들에게 '경차 사랑' 얘기를 들어봤다.

덩치는 작아도 실속 있다

'작은 차를 사랑하는 큰 사람들의 모임'이란 슬로건을 내건 천넷은 1999년 4월 컴퓨터프로그래머인 이동진(현 자동차동호회전국연합 대표)씨에 의해 결성됐다. 현재 3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모임으로 모든 경차 애호가들이 망라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천넷은 남원석(경남 창원 거주)씨가 대표를, 최초로 이 모임을 만들었던 이동진씨는 홈페이지 운영관리를 맡고 있다.

특히 천넷은 지난 2000년 서울시가 공영주차장의 경차 할인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적극적인 반대서명운동을 전개해 무산시킨 바 있다. 또 정부가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율을 축소하려 하자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를 상대로 설득 작업을 벌여 이를 막아내기도 했다.

현재 경차에 대한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주차장 이용료 50% 할인 혜택이 이들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천넷 최초 운영자인 이동진씨는 "경차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배기량 기준을 1000cc로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모임 이름을 '1000cc.net'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2008년부터 경차 기준을 1000cc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7년 전에 예견한 것이다.

컴퓨터디자인학원 강사인 유재욱씨가 대표로 있는 '티코동호회'는 말 그대로 순수 티코 소유자들의 모임. 회원 수가 1만여 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규모다. 지난 1991년 '국민차'로 불리는 티코가 첫 선을 보인 이후 티코를 애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1999년 10월 창립했다.

실속 추구하는 젊은이는 경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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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동호회 회원들이 지난해 정규모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티코동호회 제공

이들 경차동호회 구성원들은 개성과 실속을 추구하는 20~30대 중반의 젊은 층. 그들은 승용차를 신분 과시 수단이 아니라 생업과 취미생활을 위한 필수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이 경차를 당당하게 '애마'로 선택해 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차는 연료비가 중·소형 승용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휘발유 값이 리터당 평균 1600원 선을 돌파하고 있는 최근에도 연료비 걱정없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에너지 절약과 환경오염 저감, 도로파손 방지, 주차공간 절감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경차동호회는 1년에 1~2회 정도 오프라인에서 전국모임을 열어 회원들의 우애를 다지고 있다. 또 수시로 지역별 소모임을 갖고 토론과 함께 경차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동호회는 단순한 친목모임을 넘어 나름대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경차의 중요성을 인식 시키고, 잘못된 자동차 문화를 바로잡겠다는 '포부'를 모임의 주요 실천 목표로 삼고 있는 것. 이를 위해 동호회끼리는 물론 시민단체와 연대를 통해 경차 보급 확대 등 자동차 문화개선을 위한 캠페인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고유가 시대엔 뭐니뭐니 해도 경제성이 최고

그렇다면 이들은 왜 경차를 좋아할까. 경차동호인들은 경차를 선택하게 된 중요한 이유로 경제성과 주차·주행의 편의성, 정부 지원 혜택 등을 꼽았다.

13년 동안 티코를 애용해 온 티코동호회 대표 유재욱씨는 "자동차는 더 이상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경제적 여건에 맞는 자동차를 찾다 보니 경차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또 "경차를 타다보면 애착이 생겨 또다시 경차를 구입하게 된다"면서 "갈수록 치솟는 고유가 시대에 경차를 타는 것이야말로 기름값 부담도 덜고, 애국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혜택 가운데 많이 접하는 것은 고속도로와 공영주차장 이용료 50% 할인이다. 내 집 앞의 거주자우선주차에서도 우선순위로 적용되고 50% 요금할인까지 받는다. 세금도 1년에 4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차를 살 때 취득세와 등록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구청에 가서 등록 수수료 몇천원만 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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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회원들이 타고 온 티코들. ⓒ 티코동호회 제공

유씨는 경차를 타기 때문에 받는 각종 혜택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만큼 경제적 이익이 크다는 말이다. 그의 '경차 예찬' 속에는 '왜 경차인가'에 대한 해답이 잘 드러나 있다.

"정부 혜택말고도 경차의 장점은 작고 연비가 높아 유류비가 적게 들고, 고장이 적다. 티코는 최대 24km까지도 나온다. 또한 수리비용도 다른 차에 비해 저렴하다. 차체가 작기 때문에 시내 어디를 가도 주차하기가 편해서 좋다."

천넷 서울·경기 지역장을 맡고 있는 김태성(하나로텔레콤 교육강사)씨도 비슷한 이유로 경차 애호가가 됐다. 1998년부터 마티즈를 타고 있는 김씨는 "경차 구입은 경제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며 "출·퇴근과 주말 여가를 즐기는 데 경제적 부담이 훨씬 덜하다"고 설명했다.

천넷 회원인 유재구·김호상·김기남·신동희씨 등도 이구동성으로 경제성을 으뜸으로 내세웠다. 무엇보다 구입비용과 유지비가 적게 들어 좋다는 것. 일부는 깜찍하고 귀여운 외관도 경차를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단, 경차 동호인들은 내구성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경차를 꺼리는 이유는 경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경차를 타면 경제적으로 '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관공서 등을 출입하는 과정에서 차별과 무시를 당한 사례가 많다는 것. 이 때문에 경차를 타던 사람들이 일반 승용차로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동진씨는 "경차를 타는 사람들은 경제성과 실용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사실은 실속 있는 알부자들도 많다"면서 "차량의 크기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세태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많은 경차가 누빌 수 있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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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에 대한 각종 지원혜택 비교표. 경차를 타면 경제적이고, 실용적임을 잘 보여준다. ⓒ 자동차시민연합 제공

정부의 경차 지원정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유재욱씨는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영주차장과 거주자우선주차 이용요금의 경우 지역에 따라 할인이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이 있다"면서 "일관성 있는 지원정책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특히 유씨는 "경차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행 배기량과 규격에 대한 규제뿐만 아니라 연비와 안정성에 대한 규제정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3년 정부 공인기관의 연비조사 결과 일부 업체 차종 연비가 정부의 경차 공인연비 기준(1ℓ당 21.9km)보다 낮게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씨는 "연비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가 2008년 경차 규격을 1000cc로 확대하기 앞서 새로 개발되는 경차의 연비에 대한 규제와 안전성 확보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의 넓히고 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다양한 모델 개발과 가격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경차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 4월말 기준으로 5% 내외. 660cc 이하를 경차로 규정하고 있는 일본의 28%, 프랑스의 39%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경차동호인들은 소비자들이 큰 차를 선호하면서 업체들이 중·대형차 위주의 생산·판매에 주력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다 지난 1998년 티코, 2002년 아토즈, 2004년 비스토가 각각 단종된 이후 유일하게 GM대우의 마티즈만 생산되는 독점 구조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김태성씨는 "일본은 경차 규격을 660cc급으로 정하고 있지만, 20여 종의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도록 정부가 유도하면서 말 그대로 '경차왕국'이 됐다"면서 "우리나라도 저가형에서 고급형까지 경차 모델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차 이용자에 대한 각종 지원제도를 더욱 확대해 '경차를 이용하는 게 경제적, 실용적'이라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진씨는 "고유가 시절마다 경차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돼 왔다"면서 "그동안 정부가 취득세와 등록세 면제 등 경차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혜택을 주고 있지만 아직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차가 환경문제 개선과 에너지절약 등 사회적 이익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책임보험료 감면과 관공서의 경차 전용주차장 설치 등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경차 장려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넷은 조만간 시민단체와 연대해 경차의 안전성과 연비향상, 경차 지원혜택 확대 등을 위한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오는 11월 4일 속리산에서 전국모임을 갖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다.

"고위 공직자 전용차는 중형이면 충분"
경차동호인들이 말하는 관용차 문제

경차동호인들은 최근 정부 장·차관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며 대형 고급 전용차 경쟁에 나서고 있는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침체 등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관용차가 점점 대형화되고 있다는 것은 정부기관들이 앞장서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티코동호회 대표 유재욱씨의 따끔한 지적이다. 그는 "고위 공직자 관용차는 업무수행을 위해 편안하게 이동하라는 국민들의 배려인데, 현실적으로 연비가 높은 1500~2000cc급 중형 차량이면 충분하다"면서 "대형 고급 승용차는 연비가 낮아 예산만 낭비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관용차는 국민의 재산이므로 군대처럼 엄격하고 조심스럽게 오래오래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넷의 김태성씨는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의 월급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지나치게 고급스런 전용차를 구입해 타고 다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고위 공직자 전용차도 경차화해서 세금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고위 공직자 전용차량의 사용연한이 5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일부 경차동호인들은 "너무 짧다"면서 사용연한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천넷 회원인 함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는 "비교적 관리가 잘되는 관용차량을 5년 타고 버리는 것은 너무 아깝다"면서 "사용연한을 7년으로 늘리는 것이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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