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의 얼굴 지면에 담는 게 목표"

[지역언론 별곡153]'올해의 신문'으로 선정된 <포랄베르거 나흐리히텐>

등록 2006.11.02 17:14수정 2006.11.0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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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올해의 신문에 선정된 오스트리아 포랄베르거 나흐리히텐 신문사 전경

올해의 신문에 선정된 오스트리아 포랄베르거 나흐리히텐 신문사 전경 ⓒ 박주현

80살 넘은 노인이 젊은이들과 지역신문을 함께 보며 지역을 이야기하고, 시장과 경찰서장, 변호사가 자신의 실수를 지역신문에 고백하고, 시민들이 일상적인 의제를 지역신문 인터넷포럼에서 토론하며, 쌍방향 소통의 시민저널리즘에 주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지역.

그래서 강도도 사기꾼도 범죄도 그 어떤 곳보다 적은 지역. 신생아 85%를 포함해 지역주민 4명 중 1명이 신문에 실리며, 지역주민 70% 이상이 지역신문을 구독하며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지역. 이런 나라, 이런 지역이 과연 가능할까?

꿈도 아니고 소설도 전설도 아닌 '지역신문 천국'이 있다. 오스트리아 9개 주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는 포랄베르그(Vorarlberg)주 내 슈바르자흐(Schwarzach)시가 바로 그런 곳이다. 알프스산맥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절묘한 협곡 속에 감춰져 있는 곳이다.

지역신문, 주민 70%가 구독... 혁신과 형식파괴로 승부

a 포랄베르거 나흐리히텐 신문은 주중 또는 주말 섹션을 별도 발행해 지역화와 차별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포랄베르거 나흐리히텐 신문은 주중 또는 주말 섹션을 별도 발행해 지역화와 차별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 박주현

이노베이션 인터내셔널 미디어컨설팅그룹이 매년 세계신문협회(WAN)의 의뢰를 받아, 혁신적인 시도로 성공한 신문을 '올해의 신문'으로 선정해 오고 있다.

지난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 올해의 신문으로 선정된 신문은 오스트리아 <포랄베르거 나흐리히텐(Vorarlberger Nachrichten- 독일어로 뉴스라는 뜻)>. 이 신문사가 '올해의 신문'으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이다. 지역신문이라는 점에서 국내외 지역신문 업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 신문사를 벤치마킹하고 취재하기 위해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그곳에 다녀온 기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0여명에 불과한 지역신문 종사자들이 혁신적인 쌍방향저널리즘을 오랫동안 시도해 주민 38만여명 중 70% 이상이 신문을 구독하면서 뉴스생산 과정에 참여해 메이저신문으로 성장한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도, 첨단 시스템도, 거대한 자본도, 기이한 사상이나 철학도 아닌 철저한 시민저널리즘 구현으로 이렇듯 신문천국의 아비투스(habitus)를 창출한 그 지역신문은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런 결과는 독자들과의 끊임없는 쌍방향 소통, 지역뉴스 강화, 독립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국내 지역신문들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현상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이 곳 지역민들은 '올해의 신문'으로 선정된 신문이 자기 지역에 있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고 있었고, 지역신문에 대한 사랑 또한 대단했다.


신문사가 제공하는 시민포럼과 온·오프라인 토론광장엔 매번 3∼4천명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하여 지역현안의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공무원들은 더 없이 좋은 시책발굴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주민들이 너나없이 자발적으로 시민기자로 참여하여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과 미담소식들을 지역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송하거나 직접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들고 신문사를 방문하는 모습에선 감탄이 절로 흘러 나왔다. 국내 지역신문들의 보편적인 체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독자들과 톱니바퀴처럼 일체감 이루며 쌍방향 소통

a 시민기자가 방금 일어난 화재사건 기사를 인터넷신문 홈페이지에 송고하여 즉각 채택된 장면.

시민기자가 방금 일어난 화재사건 기사를 인터넷신문 홈페이지에 송고하여 즉각 채택된 장면. ⓒ 박주현

지역신문을 열정적으로 구독하며 삶의 중요한 도구로 여기고 있는 <포랄베르 나흐리히텐>에는 국내에서와 같이 지역 신문에 대해 거푸집을 쌓고 바라보는 편견 따윈 없어 보였다. '기쁨을 주고 사랑을 받겠다'는 나흐리히텐은 독자들과 톱니바퀴처럼 일체감을 이루며 소통채널을 활용하고 있었다.

각설하고, 국내 지역신문의 현주소를 반추해보자. 100여년의 세월 동안 중앙의 거대 주류매체들은 큰 견제 없이 자기 증식을 해오며 경쟁에만 매몰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런 사이에 지역신문의 설 땅은 더욱 비좁아져 기형적 시장구조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5%도 채 안 되는 지역신문 판매시장에서 전국지와 지역지가 뒤엉켜 '나는 너보다 낫다'는 이전투구식 경쟁에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기까지 한다.

아니나 다를까. 국내 언론 이미지에 관한 질문에 나흐리히텐의 한 간부는 한국언론의 엘리트주의적 아비투스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즉 정보를 주물럭거리는 직업적 속성에서 알게 모르게 굳어진 오만함과 자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책임에서 면피하려는 비겁함이 쌍방향 소통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존과 영향력 확대를 위해 무한경쟁과 불공정 행위를 일삼으면서도 타인의 세계를 모조리 천덕꾸러기 취급하지는 않는지, 그러면서 지배층에 편입되어 바른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승자가 옳은 것이란 허위의식을 등에 업고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내면에 새겨진 아비투스가 어떤 모양새인지, 그것이 어떤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를 성찰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이 정답이라고 남과 애써 구분 짓고 그 위에서 훈계나 일삼아서는 스스로 주변부로 밀려날 뿐이라는 사실. 그렇게 길들여진 언론은 결국 독자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교훈을 <포랄베르거 나흐니히텐> 성공사례에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크리스티안 오르트너(Dr. Christian Ortner) 편집국장과의 일문일답.

"무엇보다 지역 밀착화가 차별의 핵심이다"

a <포랄베르거 나흐리히텐> 편집국장인 크리스티안 오르트너와의 인터뷰 장면.

<포랄베르거 나흐리히텐> 편집국장인 크리스티안 오르트너와의 인터뷰 장면. ⓒ 박주현

- 어떻게 세계신문협회의 '올해의 신문'에 선정됐는지 궁금하다.
"우수한 기사, 혁신적인 힘, 멀티미디어 그리고 경제적인 힘이 선정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본다. 선정 과정에서 무엇보다 신문의 우수성을 본다. 혁신에 주안점을 두되, 멀티미디어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활용과 구독자와 광고주에게 얼마나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많이 평가한 것 같다.

우리 신문은 지역에서 주중에는 70%의 구독자와 토요일에는 80% 이상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물론 여러 차원의 시민의 소리를 들려주는 시민기자제도와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점, 언제나 시민의 등대 역할을 해낼 것이란 가능성에도 높은 배점이 주어진 것 같다."

- 언제부터 시민기자제도를 운영했고, 지금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기자로 참여하고 있는가.
"지난 1945년 11월 6일부터 구독자들이 활동성을 가지고 움직이게 했다. 시민기자와 전문기자, 프리랜서 기자로 나눠 운영하고 있지만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순 없다. 20만명의 정기 신문구독자와 30~40만명의 인터넷 접속자들은 모두 시민기자로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며 언제든지 자유롭게 기사를 송고할 수 있다."

- 시민기자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시민기자들이 올린 기사 중 참신성과 시의성이 뛰어난 기사는 즉각 인터넷신문에 반영하고 다음날 지면에도 반영한다. 이 경우 건당 20유로(2만5천여원)를 고료로 지불하고 있다."

- 전국지와의 차별성을 어떻게 구축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보다 지역 밀착화가 차별의 핵심이다. 탄생, 부음기사는 물론이고 모든 시민들의 생로병사 현황을 지면에 반영하고 있으며 모든 시민의 얼굴을 지면에 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를 위해 수요일과 목요일, 토요일은 별도의 섹션을 발행하여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이것을 인정해줘서 참으로 기쁘다. 이번 상은 오랫동안 수고한 시민들과 직원들에 대한 칭찬이며 자랑이다. 언제나 바른길로 가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다. 물론 더 좋고 더 많은 구독자, 더 많은 광고주들이 생겨난 것도 큰 성과로 볼 수 있다. 자만하지 않고, 진보를 지향하면서 발빠른 실천을 이뤄나가겠다."

덧붙이는 글 | 새전북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새전북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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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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