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좋아서 지리산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다는 이씨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조태용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길만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길은 여러 가지다. 인생도 그렇고 길도 그렇다. 더구나 산길이라는 것은 일반 도로나 마을을 연결하는 길보다 그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고 찾기도 어려운 법이다. 일반적인 길이 사람과 차가 다니는 것이라면 산길은 짐승도 가고, 풀도 가고, 산죽도 가고, 사람도 가기 때문이다.
중산리에서 라면에 배를 채운 우리는 중산리를 빠져 나와 동당리를 지나 산길로 내원사로 가기로 작정했다. 사실 이 길은 넘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도책에는 분명히 길이 표시되었기 때문에 나는 별 다른 고민 없이 산을 넘는 길을 선택했다.
중산리에서 동당리로 가느다란 산길이 이어진다. 아래쪽 계곡에 놀러온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계곡과 산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다. 길 옆으로는 무속인들의 집이 보였다. 그들에게 내원사로 넘어가는 길을 물으니 아는 이가 없다. 모두 지리산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산길을 모르는 것 같았다. 산길을 넘어가려면 산과 좀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가느다란 외줄기 산길을 더 깊이 들어갔다.
계곡 근처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이봉기라는 사람이었는데 밀짚모자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집은 진주라고 했다. 젊어서부터 산이 좋아 지리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찾고 찾다가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여기도 100%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고 60% 정도밖에 안 들지만 그래도 여기서 당분간은 적을 두고 진주와 지리산을 오가는 생활을 할 계획이란다.
그에게 내원사 넘어가는 길을 물으니 여기가 내천잠이고 조금 더 가면 외천잠이 있는데 거기서 넘어가는 산길이 있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는 새해 첫 날 해돋이를 내원사 넘어가는 산에서 한다면서 길이 있기는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일출이 천왕봉 일출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지리산이 좋아서 지리산 여기저기를 돌아보다 이제야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는 이씨는 얼굴 가득 행복해 보였다. 그는 한때 헬리콥터를 임대해서 지리산을 보고 싶을 정도였지만 돈이 없어 그렇게는 못하고 지리산 그 넓은 골짜기를 발로 걷고 걸어서 이 동네를 찾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고 싶은 곳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곳, 교육 서비스가 잘 되는 곳, 투자 가치가 높은 곳을 선택한다. 또한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행복한 선택보다는 명예, 권력, 부를 위한 삶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말로는 행복하고 싶고, 어디서 살고 싶다고 한다. 100번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욕심을 버리고 살고 싶은 곳에서 행복한 삶을 선택하면 될 일을 말이다.
내원사 가는 가파른 산길을 헤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