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간 물품 매매대금 청구소송과 관련된 자료들. 이 자료들에는 하이마트의 '몸집' 키우기를 위한 대우전자의 각종 지원 사례들이 드러나있다.오마이뉴스 이승욱
대리점의 예고된 패배였나, 자유경쟁 체제에서 불가피한 희생이었나?
이젠 이름마저 낯설어진 대우전자(현 대우일렉트로닉스).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1000여개 이상의 중·소형 대리점을 거느리던 굴지의 전자업체였다.
사라진 1000여 대우전자 대리점들
하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거품처럼 무너진 대우그룹 신화와 더불어, 대리점을 운영해왔던 점주들도 하나 둘 간판을 내려야했다. 그나마 2000년대 들어 근근히 명맥을 유지해오던 몇 안되는 대리점도 자취를 감췄다.
당시 대우전자 대리점을 운영했던 상인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대형 할인마트(양판점)인 '하이마트'의 등장을 꼽았다. 특히 저가 할인 공세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하이마트의 등장이 가격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중·소형 대리점의 도산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당시 대리점주들의 볼멘소리에 하이마트와 대우전자는 모두 시장경제·자유경쟁 체제에서 '희생자'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수 년이 흐른 지금, 대우전자의 빛 바랜 기억은 잊혀졌다.
'조용히' 끝난 대우전자 vs 하이마트 소송... 내막은?
| | | 대우전자-하이마트 물품대금 소송이란 | | | | 지난 2001년 12월 시작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간 법률 분쟁은 두 회사가 사실상 '완전히' 결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대우전자는 하이마트가 물품 대가로 지불해야할 대금 3590억여원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당시 분쟁 과정에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의 실질적인 관계가 속속 드러났다는 것. 대우전자는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하이마트가 물품대금을 갚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반면 하이마트는 사실상 계열사 관계를 내세워 대금 청구의 부당성을 주장한 것.
하이마트는 법원에 제출한 영업현황 문건(2000년 10월 2일 작성)에서 대우전자로 인해 오히려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하이마트는 부실채권 및 악성 재고로 인한 피해와 더불어 대우전자 직영점인 대우가전마트를 통폐합 하면서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결국 이 소송은 9개월여만인 이듬해 8월 하이마트가 대우전자에게 청구된 대금 중 3290억여원을 갚는다는 조건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대우전자와 하이마트는 이 소송에서 일반 대리점에 비해 가격 및 거래조건 등을 달리했다는 점과 함께 부동산 및 유가증권 매입분 지원 등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특히 이 소송은 단순히 물품 대금을 둘러싼 마찰 뿐만 아니라, 양 업체의 핵심 관계자들이 운영권을 놓고 상호 비난전을 벌이는 등 두 업체의 감정적인 골을 깊게 했다. | | | | |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오마이뉴스>는 대우전자가 지난 2001년 하이마트를 상대로 제기한 물품 매매대금 청구소송과 관련한 재판기록과 증거자료 등을 최근 입수했다.
그동안 이 소송은 세상에 좀체 알려지지 않았다. 소송 당사자였던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모두 '대외적인 공표를 하지 않는다'는데 합의해 법률 분쟁을 조정 절차로 마무리지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자료에는 대우전자와 하이마트의 관계와 하이마트가 대형 할인마트로 성장하는데 있어 대우전자의 역할 등을 비롯해 결과적으로 대리점이 '문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드러나있다.
그동안 세간에서는 하이마트가 대우전자의 위장 계열사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간에는 단순한 물품 공·수급업체를 뛰어넘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하이마트의 전신인 한신유통주식회사(이하 한신유통)가 대우전자의 점포와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데다 직원들의 구분도 사실상 무의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두 회사는 '계열사 관계였다'라는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정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도 같은 입장이다.
"대우전자 대표이사가 하이마트 기안용지 결제"
대우일렉트로닉스 최경아 홍보과장은 "과거 대우전자의 국내 영업부문을 하이마트가 완전히 맡은 상태"라면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별도의 회사로 계열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한 사무관도 "두 법인 간 임원의 중복도 없고 지분도 없어 계열사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 시점으로 보자면 이 말은 맞다. 그러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자료와 관계자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가 위장 계열사였다는 점은 두 회사의 핵심관계자들이 증언에서도 나타난다.
소송 당시 증인으로 출석했던 대우전자 방아무개 전 경영기획이사는 "대우전자 내부에서는 하이마트를 국내사업부와 해외사업부의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 정도로 생각했다"면서 "사실상 하이마트는 대우전자의 자회사이므로 회사(대우전자)가 방침을 정하는 자리에 하이마트는 참석만 할 뿐"이라고 증언했다.
하이마트 홍아무개 전 세무관제팀장도 "계속 결손이 발생하자 회사(대우전자)는 모회사로서 자회사가 부실해 지는 것을 볼 수가 없어 결손금 지원을 해왔다"면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사이는 주종 관계"라고 위장 계열사임을 자인했다.
뿐만 아니라 증거자료로 제출된 90년대 초 작성된 한신유통의 결재 서류들에는 대우전자 대표이사나 국내영업본부장이 최종 결재까지 했다. 또 대우전자는 하이마트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할 때도 매입분 478억원을 지원하고 유가증권 매입분 161억원도 지원했다.
결국 서류상으로만 본다면 지난 98년 대우전자는 하이마트에게 국내 영업부문을 넘겨줬고 2002년 양 회사가 소송을 끝내고 채권을 청산함에 따라 계열사 관계는 해소된 셈이다.
그렇다면 대우전자는 하이마트를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지원을 했을까. 대우전자 대리점에 직격탄을 날렸던 것은 '저가 전략'이었다. 이것은 대우전자의 전폭적인 가격 차별 지원과 독점판매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격차별·독점 판매권까지..."불공정 거래행위" VS "합리적 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