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가 놀았던 자리, 예서 술 한잔 어떨까?

작은 도시 포천에서 열린 창작소리극 공연

등록 2006.11.04 18:57수정 2006.11.0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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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경기민요 창작소리극 “영평팔경가” 공연 장면
박영실 경기민요 창작소리극 “영평팔경가” 공연 장면김영조
벌써 가을은 깊어간다. 가을은 남자가 슬퍼하는 계절이라는데 나는 포천에서 슬픈 가을을 날려 보낸다. 11월 3일 늦은 5시 포천 반월아트홀대극장에서 있었던 박영실 경기민요 창작소리극 “영평팔경가” 공연은 이 가을을 기쁜 가을로 만들어 주었다.

이 공연은 경기소리보존회 포천지부 제2회 공연작품으로 포천시청, 포천시의회, 경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포천예총지부, 포천문화원, 포천신문사 등의 후원을 받았는데 총기획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이수자인 박영실 경기소리보존회 포천지부장이 맡았고, 총예술감독엔 이무성, 작·연출엔 장두이, 작곡엔 이병욱 서원대 교수, 작시엔 이석구 포천문화사랑 편집주간, 해설은 이종훈 포천문화사랑 편집위원이 맡았다.


우리 음악에서 성악은 정가인 가곡, 가사, 시조와 민속악인 판소리, 잡가, 민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듣던 이 전통 성악이 아닌 창작소리극이란 무엇일까? 창작소리극은 단순히 소리만 하는 그런 성악이 아닌 악가무가 혼합된 총체극이다. 서양 장르로 보면 뮤지컬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박영실 경기민요 창작소리극 “영평팔경가” 안내책자 표지(왼쪽)와 해설을 하는 이종훈 포천문화사랑 편집위원
박영실 경기민요 창작소리극 “영평팔경가” 안내책자 표지(왼쪽)와 해설을 하는 이종훈 포천문화사랑 편집위원김영조

“영평팔경가” 공연의 반주를 맡은 김성운과 국악실내악단
“영평팔경가” 공연의 반주를 맡은 김성운과 국악실내악단김영조
박영실 총기획자는 단순히 소리로만 들려주기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소리극으로 만들어 청중들이 재미있게 들을 수 있게 배려한 것이라고 말한다.

경기도 포천엔 조선 선조 임금 때 영의정을 지낸 박순 선생이 노래했다는 ‘영평팔경(永平八景)’이 있다. 이 영평팔경은 한 여름에도 서리가 낄 정도의 서늘함을 자랑하는 선유담, 백로가 항상 노닐던 백로주, 청학이 울고 있다는 청학동, 바위로 된 웅장한 산 창옥병과 와룡암, 낙귀정지, 금수정, 화적연 같은 절경이다. 이 영평팔경은 양사헌, 한석봉, 이덕형, 서성 선생 같은 이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선녀가 놀았으니 선비도 놀았어라 / 몸담아 마음 씻고 한잔 술 마시고 나면 / 바로 그것이 신선놀음 아니런가...”

영평팔경 가운데 선유담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한 시구의 한 구절인데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한 포천의 절경을 잘 소개하고 있다.


주인공 장두이(박필동 선생역)와 소리여인 박영실이 바위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
주인공 장두이(박필동 선생역)와 소리여인 박영실이 바위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김영조

춤꾼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주인공
춤꾼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주인공김영조
하지만, 이런 절경을 포천 사람들만 즐길 일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얼마 전 세상을 뜬 전 포천 예총회장 김진동 선생을 비롯해 시인이며 포천문화사랑 편집주간인 이석구, 향토 사학자 이종훈 그리고 경기소리보존회 포천지부장인 박영실 같은 포천의 문화인들이 나서서 영평팔경을 경기소리로 표현하고자 노력해왔다고 한다.

그 결과로 지난해 명재상 박순의 영평팔경가를 국악을 서양음악에 접목시킨 선구자이며, 어울림 연주단을 이끌고 있는 서원대학교 이병욱 교수의 작곡을 바탕으로 제1회 공연을 한 바 있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오늘의 공연을 다시 탄생시킨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먼저 이종훈 포천문화사랑 편집위원이 영평팔경가 공연의 의미와 내용들을 상세히 소개한다. 그리곤 주인공 박필동 선생 역으로 인덕대 장두이 교수가 딸 배역과 함께 나와 영평팔경 구경을 시작한다. 그러자 꿈처럼 소리꾼들이 나와 “영평팔경가”를 노래한다. 그 중심엔 박영실 명인이 소리여인으로 출연한다.

이후 장면을 바꿔가며 선유담, 와룡암, 백로주, 낙귀정지, 청학동, 금수정, 창옥병, 화적연을 구경한다. 그 사이 사이 소리여인과 소리꾼들, 그리고 나귀와 용은 재미와 함께 맛깔스런 소리를 선사해준다. 그들은 혼신을 다해 영평팔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이 정자에서 주안상을 놓고 절경을 감상하는 옛 선인들을 바라보는 장면
주인공이 정자에서 주안상을 놓고 절경을 감상하는 옛 선인들을 바라보는 장면김영조

상여나가는 장면
상여나가는 장면김영조
최초의 시도, 창작소리극은 그렇게 올림을 들려주었다. 그동안 우리의 소리들은 훌륭함에도 많은 현대인들이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옛말로 된 사설과 함께 소리의 의미가 잘 전달되어지지 못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청중의 삶 속에 스며들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또 일제강점기 이후 천한 소리로 오해된 연유도 한 몫을 한다.

이런 때 이들의 시도는 정말 장하다. 더구나 작은 도시에서 피어난 꽃은 그래서 정말 탐스럽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리극은 소리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천의 절경, 영평팔경을 절절하게 담아내기에 지역 발전을 위한 주춧돌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해내는 것이다.

더더구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로 꾸린 공연이 아니라 지역의 일꾼들이 중심이 된 공연이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더욱 큰 손뼉을 쳐서 마땅할 일이다. 포천은 이제 전국에서 처음 시도된 이 소리극으로 문화도시임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있다.

다만 이 훌륭한 공연에도 옥에 티는 있다. 출연자들의 잘못이 아닌 기술적인 문제가 극의 흐름을 매끄럽지 못하게 한 것이다. 특히 영평팔경을 소개하는 자리이니 만치 총예술감독이 맘먹고 준비한 영상이 기술적인 문제로 상영이 되지못한 것은 정말 아쉬움이 남았다. 이 공연은 포천 사람들만이 아닌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져야할 것이기에 영상은 절실했던 것이다.

소리를 하는 소리여인(박영실, 가운데)과 소리꾼들
소리를 하는 소리여인(박영실, 가운데)과 소리꾼들김영조

소리여인 역을 열연하는 박영실 경기소리보존회 포천지부장
소리여인 역을 열연하는 박영실 경기소리보존회 포천지부장김영조
또 음향과 조명도 완벽하지 못해 소리극의 진수를 제대로 맛보게 하지 못했다고 청중들은 평했다. 박영실 총기획자와 소리꾼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그 아쉬움은 한층 컸을 것이라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포천시는 이번 공연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경기문화재단의 이사를 지낸 적이 있어 문화에 남다른 내공이 있는 박윤국 시장의 관심은 공연에 커다란 밑바탕이 되었다고 박영실 총기획자는 말했다. 또 뒤풀이까지 참여해준 황영철 부시장에게도 사람들은 고마움을 짙게 느끼고 있었다. 다만, 공연 예산을 늘려주고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번의 옥에 티는 없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포천은 이동막걸리와 갈비만의 고장이 아니다. 그 어떤 고장보다도 뛰어난 절경, 영평팔경을 가진 포천 시민들은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을 그들은 창작소리극 ‘영평팔경가“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내년엔 더욱 향상된 내용으로 보여줄 것이라 한다.

나는 깊어가는 가을밤, 온 산이 붉게 타들어가는 계절의 끝자락에서 포천의 소리로 즐거움을 흠뻑 맛본다. 그리곤 마음을 다해 그들에게 손뼉을 치고 있다.

포천의 "영평팔경"을 많은 이에게 알릴 터
[대담] "영평팔경가" 총기획자 박영실 경기소리보존회 포천지부장

▲ 공연 총기획자 박영실씨
ⓒ김영조
- 창작소리극 "영평팔경가"를 만든 계기는 .
"포천에 온 뒤로 나는 영평팔경에 흠뻑 빠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재주인 소리로 이를 알리는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이런 절경은 그냥 놔 둘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과 현지답사를 통해 창작소리극을 만들게 되었다."

-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이런 공연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예산이었다. 그저 소리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연출, 영상, 음향, 조명, 홍보 등 모든 게 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윤국 시장님을 비롯해 포천시의 적극적인 뒷받침과 포천문화인들의 한결같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오성과 한음 등의 자료를 더 보완해서 충실한 소리극으로 만들어 나가려 한다."

- 언제, 어떤 계기로 소리를 하게 되었고, 누구에게 배웠는지?
"어머니는 소리에 재주를 가진 분이었고, 어머니의 소리를 늘 들으면서 커왔기에 어릴 때부터 바탕은 되었던 듯하다. 무작정 소리가 좋았지만, 집안의 반대가 거세어 좀 어렵긴 했었다. 처음엔 임정란 선생님께 배웠고, 마무리는 묵계월 선생님께서 해주셨다."

현재 박영실씨는 백제예술대 전통공연예술과에 재학 중이다. 나이 먹어서도 그녀는 학구열에 불탄다. 그만큼 우리의 소리에, 전통문화에 애정이 있다는 증거이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좋은 소리를 들려주겠다는 각오가 대단한 소리꾼이다. 그녀의 미래에 더 큰 기대를 해본다. / 김영조

덧붙이는 글 | ※ 다음, 대자보, 뉴스프리즘에도 보냄

덧붙이는 글 ※ 다음, 대자보, 뉴스프리즘에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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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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