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스킨헤드 광기로 얼룩진 11월4일 러시아

[현장] 민족화합의 날, 1회 이어 2회 기념일도 극우시위 극성

등록 2006.11.05 14:53수정 2006.11.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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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물관앞 바리케이드 등장과 경찰의 2중, 3중 경비(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쥐 박물관 앞).

박물관앞 바리케이드 등장과 경찰의 2중, 3중 경비(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쥐 박물관 앞). ⓒ 정인고

올해로 2회째를 맞는 '민족화합의 날'(11월 4일). 이날은 지난해 러시아가 '10월 혁명'(11월 7일) 기념일을 폐지하고, 이를 대신해 새롭게 제정한 국경일이다. 그런데 이 신 국경일이 러시아 정부의 의도와 달리 주인 없는 버려진 국경일이 됐다.

공산당원들과 소련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중장년층들은 자신들의 축제일(1917년의 10월 혁명 기념일)을 잃어버려 갈 곳을 잃었다. 또 신 국경일이 어떻게 불리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는 일반 러시아인들과 노비 루스키(러시아 신흥 부자)들에게 '민족화합의 날'은 단지 달력에 명시된 휴무일일 뿐이다.

지난해 첫번째로 맞이한 '민족화합의 날'은 극우민족세력들의 잔치가 됐다. 극우민족주의자들은 '민족=러시아인'이라는 새로운 등식을 전파하며 정치적-이념적 색깔에 관계없이 '외국인 모멸'이라는 광의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여타 극우세력(스킨헤드, 나치주의자)들과 함께 파괴적 열정을 폭발시켰다.

올해 정부와 경찰은 행사일 전부터 모든 집회와 행진을 불허했으나 극우민족세력들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조직화되고 강화돼 극우민족세력들의 집회, 일명 '러시아 행진'을 강행하겠다고 맞섰다.

a 집회 장소의 시위 참여자와 대치하고 있는 경찰과 특공대(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성당 앞).

집회 장소의 시위 참여자와 대치하고 있는 경찰과 특공대(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성당 앞). ⓒ 정인고

행사 하루 전날 '러시아 행진' 주최 측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1만 명 집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고, 행사 당일인 11월 4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수도 모스크바, 그리고 극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모든 거리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스킨헤드와의 전쟁'을 선언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당국은 경찰특공대(오몬)와 중장비를 도심 곳곳에 배치했다.

a 경찰특수부대의 트럭 행렬. 준전시 체제가 되어버린 넵스키 대로.

경찰특수부대의 트럭 행렬. 준전시 체제가 되어버린 넵스키 대로. ⓒ fontanka.ru

당일 날 거리에 나선 필자가 본 현장은 흡사 준전시 체제의 모습이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의 예정된 집회 장소 주변의 지하철 역은 폐쇄되었고, 경찰특공대들이 이중 삼중으로 감시를 펼쳤다.

a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의 경찰특공대(오몬)의 강경진압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의 경찰특공대(오몬)의 강경진압 모습. ⓒ fontanka.ru

러시아 민영방송인 NTV에 따르면, 경찰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에 모인 시위인원은 200여 명이었다. 이들은 나치의 상징인 스와스티카가 새겨진 깃발과 안장을 차고 "러시아인을 위한 러시아" "러시아의 영광"을 외치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러시아 극우민족운동에 반대하는 '안타 파시스트' 단체 소속 40여 명의 학생이 극우시위대와 충돌하면서 양측 합산 120여 폭력시위자들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a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집회 모습(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집회 모습(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 ⓒ fontanka.ru

같은 시각, '러시아 행진' 집회의 중심인 모스크바 '문화공원' 지하철역 주변에는 약 2천여 명의 극우민족주의자들이 모였다. 영하 5도의 추위 속에 치러진 이날 집회에는 '러시아 행진'의 주창자인 국가두마위원 니콜라이 쿠리야노비치도 참석했다. 또 '불법이주자 반대운동' 지도자 알렉산드르 벨로프로는 트럭 위에 올라가 행진을 선동하며 시위대들을 이끌었다.


러시아 BBC 인터넷 뉴스는 한 사위참여자의 말을 통해 극우주의자들의 시위참여 이유를 소개했다.

"라트비아인·에스토니아인·그루지야인 이외에 이주민들이 지금 우리들(러시아인)을 분열시키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궤멸시키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분열시켜야 한다, 이것이 내가 오늘 집회에 참여한 이유이다."

시당국과 경찰의 철저한 봉쇄와 진압으로 다행히 최악의 시나리오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11월 4일 '민족화합의 날' 러시아는 어떤 화합도 어떤 단결로 이끌어 내지 못한 채 극우민족세력들의 광병에 시달렸다.

동일한 이데올로기 아래서 '탈민족 국가'를 형성했던 러시아. 하지만, 구소련연방국가들과 중국에서 밀려드는 이주자, 낮아지는 출생률, 그리고 소수민족들(체첸 지역)과 구소련연방국가들 간의 갈등·분쟁 등은 극우민족세력에게 광의적 민족주의와 파괴적 열정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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