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프레스센터 한국기자협회에서 열린 재독동포 이수길 박사 동백림사건 진상규명 및 언론 공정보도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수길 박사(오른쪽)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한국기자협회 정일용 회장.연합뉴스 한상균
1967년 김형욱(사망) 전 중앙정보부장이 자신의 재임 중 일어난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연루자 중 한 명에게 친필서한을 보내 직접 사과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재독교포인 이수길(78세) 박사는 6일 오전 한국기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백림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됐다"며 김형욱 중정부장이 자신에게 보낸 친필서한을 공개했다.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A4용지 3매에 달하는 이 편지에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해해 달라"는 등 표현을 쓰며 간접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수길 박사는 지난 195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전문의 학위를 딴 뒤 1966~67년 한국 간호사들을 독일로 파견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동백림 사건'이 터지자 중앙정보부는 이 박사를 납치해 국내로 데려온 뒤 모진 고문을 가했다. 중앙정보부는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20여일 만에 이 박사를 독일로 돌려보냈지만,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휠체어를 타야하는 처지가 됐다.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당시 이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중정으로서도 무리한 수사였다는 점을 인정했던 셈이다.
김형욱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날 공개된 편지에서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동백림 사건 조사 때문에)40일간이라는 보수를 받지 못하셨다니 본인으로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라며 "약소하나마 200불을 보냈으니 촌지로 생각해 받아 달라"고 밝혔다.
김 전 중정부장은 또 "이 박사의 굳은 의지와 국가를 위하는 애국의 정은 본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이 박사를) 부득이 소환하지 않을 수 없게끔 심증이 갔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니 이 박사가 이해해 달라"고 정중히 사과했다. 편지의 끝에는 '1967년 8월 22일 김형욱'이라는 서명도 나와 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동백림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피해보상 및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위(위원장 오충일 목사)는 동백림 사건 진상조사 결과발표를 통해 "동백림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과 장기 집권을 위해 기획한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또 정부가 고문 조작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청한 바 있지만 아직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이수길 박사는 국가를 상대로 조만간 피해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납치 과정에서 뺨을 때리고 몽둥이로 구타하고, 담뱃불로 얼굴을 지지려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며 "중정에 끌려가서도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말로만 듣던 온갖 고문을 다 이겨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곧 변호사들과 피해보상청구소송 가능 여부와 액수를 상의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독 광부·간호사 피땀, 정치적 이용 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