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조난당하면 어떻게 될까?

[서평] 쥘 베른의 <신비의 섬>

등록 2006.11.07 10:51수정 2006.11.0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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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섬>
<신비의 섬>열림원
'쥘 베른'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쥘 베른의 작품인 <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또는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의 작품은 누구나 한번쯤 접해보았을 것이다. 아니 굳이 직접 접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작품들이 꽤 유명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쥘 베른의 많은 작품들은 우리나라에서 마치 아동용 모험소설처럼 취급된 경향이 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이 어린시절을 사로잡는 모험과 신비한 여행에 관한 소재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그의 작품은 완역본이 아니라 아동용으로 짧게 편집되거나, 만화로 각색된 채 국내에 소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쥘 베른은 1828년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11살 때 인도를 여행하려고 하다가 아버지에게 들켜서 집으로 돌아온다. 쥘 베른은 아버지에게 "앞으로는 꿈속에서만 여행하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리고 암시적인 이 한마디 말처럼 쥘 베른은 이후에 수십 편의 모험소설을 써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낸다. 그리고 전세계 많은 독자들에게 모험의 꿈을 안겨주기도 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무인도 '링컨'

쥘 베른의 작품은 모험을 소재로 하지만 단순한 모험소설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모험소설이자 과학소설이고, 판타지 소설이면서 우화 소설이기도 하다. 작품의 영역도 다양하다. 바다 한 복판의 무인도, 지구 한 가운데, 북극의 얼음바다, 바다 속 깊은 곳 등이 쥘 베른 소설의 무대이다. '꿈속에서만 여행하겠다'라는 말처럼 쥘 베른은 자신의 상상력이 미치는 모든 공간을 소설의 무대로 사용하고 있다.


<신비의 섬>은 제목처럼 남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을 무대로 한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참이던 1865년 3월, 리치먼드에 갇힌 북군의 포로 5명은 리치먼드를 탈출하려고 기구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지만 강풍에 휘말려서 이 기구는 남태평양으로 내려오게 되고, 이름모를 섬에 떨어진다.

조난자들은 이 무인도에 '링컨'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링컨섬은 마치 북아메리카 대륙의 축소판 같다. 섬에는 비옥한 농토와 황무지, 화산과 울창한 숲이 공존하고 있다. 섬을 흐르는 강도 있고 호수도 있다. 해안가에는 조개와 굴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구워 먹을 수 있는 네발짐승도 얼마든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섬이다.


조난자들은 링컨섬이 무인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위 수천 km 이내에 대륙이 없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된다. 이것은 조난자들이 어떻게든 앞으로 이 섬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난자들은 이때부터 강인하고 낙천적인 자세로 섬을 개척해 나간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영국의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해 나갔던 것처럼.

조난자들을 도와주는 신비로운 도움의 정체는 뭘까?

조난자들의 섬생활은 출발부터 순조롭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섬에서 이들은 철광석을 이용해서 철을 제련해내고, 각종 도구를 만들고 벽돌을 구워낸다. 널찍한 바위 동굴은 이들을 위한 아파트로 사용되고, 섬에 있는 다양한 식물을 이용해서 시원한 음료수와 맥주를 만들기도 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시작하는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 대왕>에서는 무인도에서의 생활이 악몽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신비의 섬>은 유토피아 문학의 본보기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간다.

작품의 진행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떻게 섬을 개척하고 조난자들은 섬에서 얼마나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될까?'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신비의 섬>에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장치가 있다. 조난자들은 순조롭게 섬을 개척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알 수 없는 도움의 손길이 나타난다. 섬에 있는 누군가가 조난자들을 몰래 도와주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샅샅이 섬을 수색해 봐도 섬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은 없다. 그렇다면 이 신비로운 도움의 정체는 무얼까?

이상사회만을 꿈꾸는 '쥘 베른'의 소설

'무인도에 툭 던져진 문명인의 이야기'라는 것은 그동안 많은 작가들이 시도한 소재이기도 하다.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뿐 아니라,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스티븐 킹의 단편 <생존자>까지.

고립된 채 낯선 장소를 개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분명히 매력적인 소재이자 호기심이 당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에는 현대인이 꿈꾸는 모험과 낭만, 현실에서의 도피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쥘 베른의 많은 작품들이 전세계 수많은 독자를 열광시킨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쥘 베른도 비판을 피해갈수는 없었다. 쥘 베른은 작품속에서 이상사회를 꿈꾸고 있지만, 찰스 디킨스나 존 스타인벡처럼 현실사회의 모순을 직접 담아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커다란 스케일과 진행을 중시한 탓인지 인물 개개인의 형상화가 미흡하다. <신비의 섬>은 1000페이지 가까운 많은 분량이다. 이 긴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감정을 이입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도 쥘 베른의 작품은 재미있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낯선 장소에 대한 생생한 묘사, 용감하고 낙천적인 주인공들 그리고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이야기 전개 등은 위에서 말한 그런 비판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완역본을 읽다보면 '아동용 모험소설'이라는 선입관은 대번에 사라진다. 쥘 베른은 '전세계에서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 베스트 5'에 들어가는 작가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쥘 베른 지음 / 김석희 옮김. 열림원 펴냄.

덧붙이는 글 쥘 베른 지음 / 김석희 옮김. 열림원 펴냄.

신비의 섬 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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