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의 발바닥 위에 인도가 있다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 여행 19

등록 2006.11.07 13:08수정 2006.11.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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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희
왕소희
인도사람들의 발바닥은 그랬다. 두꺼운 얼굴을 가진 인간이 못하는 일이 없듯이 두꺼운 발바닥을 가진 인도인들의 발은 못가는 곳이 없고 못 밟는 것이 없었다. 특히 우리 마을 사람들 발은 소똥도 꾹꾹 밟고 구정물에도 첨벙 담그고 웬 만큼 뾰족한 것은 밟아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라즈나라는 소녀가 있었다. 어느 날 라즈나가 나무를 하다가 발바닥을 베었다. 동네 사람들은 조금 살펴보더니 상처위에 흙을 솔솔 뿌렸다.


"어머! 안돼! 더러워!"

깜짝 놀란 지니와 나는 소리쳤다.

"아, 괜찮아. 괜찮다고. 우린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다쳤는걸. 이렇게 하면 나아."
"안 된다구! 감염될지도 몰라"

괜찮다는 동네 사람들을 밀어내고 우리는 라즈나 발바닥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오기 전까지 그냥 상처에 흙을 뿌리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다루어진 발바닥은 모든 수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튼튼해져가는 것이다. 상처가 났지만 라즈나는 맨 발로 다녔다. 신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니, 끈이 떨어져서 못 신는 그 신발 있지? 그거 수리해서 라즈나에게 주는 게 어떨까?"
라즈나의 소식을 들은 람이 말했다.


"시내에 가면 2루피(60원)에 신발 끈을 고쳐주는 할아버지가 있어."
"그거 좋은 생각인데!"

당장에 지니는 먼지 쌓인 신발을 수리해서 라즈나에게 주었다.


"아! 고마워, 지니."

물방울이 그려진 분홍색 신발을 안고 라즈나는 너무 행복해했다. 그런데 다음날 우리는 그 신발이 다른 사람 발에 가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라즈나의 아버지! 그는 채 들어가지도 않는 딸의 작은 신발을 꿰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분홍색 신발을 꿰고 뒤뚱 뒤뚱 걸어 다니는 비정한 아버지! 그 덕분에 라즈나의 발은 다시 소똥을 밟고 뾰족한 가시밭을 지나고 부러진 나뭇가지에 찔려야할 신세가 되었다.

왕소희
지니와 내 발도 라즈니의 발처럼 변해갔다. 언덕 위에서 수상한 음악 쇼를 위한 공연장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을 때였다.

'언덕을 예쁘게 꾸며 놓으면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아 올 테고 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게 되겠지!'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마른 들풀을 베어내고 돌들을 골라내고 부대에 실어 날랐다. 그동안 우리 발바닥은 변해갔다. 처음엔 거칠거칠해지다가 갈라지고 피가 났다. 그러다가 결국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오늘은 걷지도 못하겠다. 너무 아파! "

발바닥이 그려진 연고를 바르고 하루를 누워 지냈다. 그 후 걸을 수는 있었다. 문제는 발이 늘 거지처럼 더러워 보인다는 거였다. 틈틈이 갈라져 버려서 이젠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얼마 뒤 우리는 동네에서 존경받는 어르신을 찾아가게 됐다. NGO(국제 비정부 기구)에서 일하시는 그 분께 도움을 받고자 간 것이다. 옥상 위에 돗자리를 펴고 모인 사람들이 한 참 열을 올려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킥킥 웃음소리가 났다. 살며시 고개를 돌려 보니 어르신의 며느리인 네팔 여인이었다. 대접할 짜이를 가지고 올라와서 내 뒤에 앉아있던 그녀였다.

"꾜?(왜요)"

나는 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으며 내 발바닥을 가리켰다. 지니와 나는 동시에 내 발을 바라봤다.

"큭큭… 크크."

누가 봐도 웃긴 발이었다. 이리저리 수염이 나고 구정물로 얼룩지고 여기 저기 갈라진데다가 온갖 색깔의 물감이 덕지덕지했다. 그 뒤 네팔 며느리는 우리를 친근하게 대했다. 자기들 발보다 더 더러운 그 발을 보니 정이 갔는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그 더러운 발바닥은 나에게 특별한 기분 한 가지를 알게 해줬다. 보드라운 발로 힌두교 사원에 갔을 때 그곳은 내게 늘 따분한 곳이었다. 그리고 신상(神像)을 볼 때 마다 속으로 그들을 얕보았었다.

'저게 뭐야. 너무 유치하잖아. 저렇게 유치한 장식에 왜 저렇게 매달리는 거야! 아유, 답답해. 우리 모두는 우주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하나의 신이야. 당신들이 매달리는 그 신도 실은 그런 힘을 형상화한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열심히 매달릴 필요 없어!'

하지만 걸레처럼 된 발바닥으로 사원에 들어갔을 때 나는 달라져 있었다. 갈라진 발바닥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닿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도 신에게 뭔가 말하고 싶어.'

똑바로 신상(神像)앞까지 걸어가 신을 향해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앉았다. 그리고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두가 손 위에 성수를 뿌려 주었다. 거기선 꽃향기가 났다. 내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졌다.

그날 더러운 발바닥은 나를 신에게로 데려갔다.

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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